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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임자, 보았소? '이건희 컬렉션'을

등록 2021.07.20 1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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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큐레이터, 국립근대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 공동간사)

[서울=뉴시스] '이건희 컬렉션' 이중섭, 흰 소, 1950년대, 종이에 유채, 30.5x41.5cm.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서울=뉴시스] '이건희 컬렉션' 이중섭, 흰 소, 1950년대, 종이에 유채, 30.5x41.5cm.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서울=뉴시스]  지난 4월 28일 삼성가는 “국보 등 지정문화재가 다수 포함된 고미술품과 세계적 서양화 작품, 국내 유명 작가 근대미술품 등 1만 1000여건, 2만 3000여점을 국립기관 등에 기증”하고 감염병 전담병원 건립과 관련 연구에 7천억원, 소아암·희귀질환 등 어린이 환자 지원에 3천억원 등 1조원을 의료공헌을 위해 기부한다”고 밝혔다.

모두 귀하고 선한 일이라 박수를 보냈고 “역시 대한민국의 대표 기업 답다.”고 환호했다. 하지만 곧 대규모 의료공헌은 문화재·미술품기증에 묻혔고 언론도 국민도 온통 “문화재 미술품 기증”에만 매몰되었다.

이번 기증은 물론 그럴만 했다. 유족들의 기증은 문화재·미술품 수집을 백안시하던 일부 국민을 머쓱하게 했다. 역시 문화재·미술품은 공공재며, 혹여 욕을 들어가며 수집했을망정 컬렉터들의 수집품은 끝내 국민의 품에 돌아가고 컬렉터들은 자기 돈을 써가며 수집해 보존하다 국민에게 되돌려주는 선 한 관리자 역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너나 할 것 없이 조금 과하다 할 정도로 흥분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국민과 언론은 그렇다 치더라도 기증받은 전문기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은 차분해야 했다. 그리고 1만 1천 건에 달하는 기증품들을 천천히 그리고 세세히 헤아려 낱낱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실체와 ‘활용’ ‘보존·관리’ 향후 ‘확대방안’을 연구하고 검토해 내놓아야 했다.

그런데 되려 문화부가 흥분해 “이건희 컬렉션의 기증”을 유족이 아닌 “자신들이 기증한 듯” 나섰고 두 기관은 장관발표 때마다 병풍 노릇을 했다. 특히 정책부서인 문체부가 나서 두 기관을 제쳐두고, 행정관료들이 ‘활용방안’을 논의하고 이를 발표한 것은 국가를 대표하는 양 기관의 존재를 하찮게 만들었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일의 선후가 바뀐 것이다. 기증을 받자마자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은 기증품에 대한 기초적 데이터작성이었다. 예컨대 기증품의 가장 기본적인 정보 즉 제작시기, 재료와 크기 그리고 오염도와 컨디션을 체크하고, 기증품의 장르별 지역별 재질별로 분류를 해야 했다. 그후 작품의 진위, 수복이력 등을 가리는 조사가 뒤따라야 했다. 시간과 품이 드는 일이다. 그런데 먼저 할 일은 미루고, 집 짓고 내보일 궁리만 한 것은 큰 잘못이다.

[서울=뉴시스] 이건희 기증품 특별전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 전경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2021.07.20.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이건희  기증품 특별전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 전경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2021.07.20. [email protected]


왜 이리 서두르는지 모르겠으나 문체부는 독해력에 크게 문제가 있음을 스스로 드러냈다. 유족들이 “아무 조건 없이 기증했다.”지만 실제로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지방 5개소와 1개 대학미술관에 기증한 것은 각각 전문기관으로서의 또 기증작들과 연고를 고려한 것으로 이는 가장 중요하고 일차적인 ‘기증의 조건’이다. 그런데 이를 곡해해 ‘통합기증관’을 검토하고 결론에 이른 것은 기증조건을 위배한 것이다.

두 번째 “이 회장의 미술품 기증 정신을 잘 살려 국민들이 좋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별도의 전시실을 마련하거나 특별관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말을 새로운 기관을 설립해 새로이 건물을 지으라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기증받은 기관이 전시장 내에 “다른 기증실에 비해 두어 배 큰” 전시실을 설치하라는 취지를 새로운 건물을 짓고 새로운 기관을 설립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은 의도적인 결론을 가지고 내린 해석이다.

세 번째, 이건희 회장 사후에 문화예술계에서 컬렉션이 흩어져 선 안 된다고 했던 말은 각각 낱개로 팔려나가 개개인의 수중에 들어갈 것과 외국작품들의 경우 국외로 반출될 것을 염려한 것이지, 크게 시대, 유형에 따라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분리 소장되는 것을 염려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를 통합전시관의 명분으로 삼는 것은 누가 보아도 자의적이다.

언론을 통해 문체부는 대단한 컬렉션이라고 열을 냈지만, 실제로 누구도 그 실체는 모른다. 그저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국보(14점)와 보물(46점)등 총 60여점과 일부 도자, 청동기 등등 많아야 80여점,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모네, 르느와르, 피사로, 고갱, 샤갈, 미로, 달리의 작품 각 1점 씩 총 7점과 피카소의 도자기 112점 외에 이상범, 나혜석, 이중섭, 김환기, 유영국 등등 20여점으로 우리에게 이미지와 함께 정보가 공개된 것, 알려진 것은 100여점에 불과하다. 또 기증품중 전적류(서적)이 전체의 반이 넘는 54.2%에 달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언론을 통해 도판으로나마 본 작품은 전체 기증작의 0.01%도 되지 않는다. 물론 그것은 대단한 작품들이다. 그렇다고 1만 점 2만 건 모두가 다 국보 보물급이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뭘까.

그리고 전문가들의 기증품을 보는 미학적, 미술사적 관점과 유명작가의 유명작품 만 좋아하는 관객들과의 ‘보는 눈의 차이’와 그 ‘결과’는 어떻게 설명할까. 전문가라는 사람의 말 만 믿고 환호하며 달려갔다가 실재 작품을 보고 실망하는 이들이 나온다면?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20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에서 열린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 언론공개회에 참석한 기자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제216호) 그림을 살펴보고 있다. 전시는 내일부터 9월 26일까지. 2021.07.20.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20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에서 열린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 언론공개회에 참석한 기자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제216호) 그림을 살펴보고 있다. 전시는 내일부터 9월 26일까지. 2021.07.20. [email protected]


일반적으로 문화재, 미술품 1천 점이 있다면 그중 매우 뛰어난 작품은 100점을 넘지 않는다 한다. 그리고 그 100점이 총 작품가의 90%를 차지하고, 나머지 900점 가격이 총가격의 10%를 차지한다는 말은 더 이상의 비밀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 900점의 가치가 없는 것일까 아니다. 문화재·미술시장에서는 가치가 없을지 모르지만, 박물관과 미술관에서는 미술사적 맥락이란 면에서 매우 귀하고, 전시에서는 스토리 라인(Story Line)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이 이들을 두고 중요하고 좋은 작품이라고 하는 것이다.

아무튼 지금까지 발표를 보면 기증품에 대한 기초조사도 없이 활용방안만 논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코끼리를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코끼리 구경을 시켜 돈 벌 궁리만 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게다가 코끼리가 하루에 얼마나 먹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고, 사육비가 얼마 들지, 앞으로 얼마나 클지도 모르면서 ‘우리’만 짓겠다고 나선 꼴이다.

사실 환호하고 박수를 보내는 국민도 마찬가지였다. 문체부와 언론 그리고 일부 전문가들의 말에 모두 흥분했다. 우리 중 이건희 컬렉션의 총 규모와 가치에 대해 듣기는 했지만 이를 본 사람은 없다.

언론도 1만 1천 건, 2만 3천 점의 실체는 커녕 목록도 확인한 바 없다. 설사 그 목록을 본다 해도 그것의 양과 질을 따져보면 컬렉션의 실체를 가늠해 낼 전문가가 많지 않다. 설혹 있다 해도 두어 달 만에 활용방안을 내놓았다면 그는 필시 전문가가 아닐 것이다.

게다가 더욱 눈물나는 일은 사진조차 본 적 없는 코끼리의 우리를, 자기 마을에 지어야 한다고 나선 지방의 목민관들의 뜨거운 동네 사랑(?)이다. 그 사랑을 우선 자신의 동네에 있는 미술관·박물관 돌 보는 데 썼으면 한다.
[서울=뉴시스] 정준모(큐레이터, 국립근대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 공동간사)

[서울=뉴시스] 정준모(큐레이터, 국립근대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 공동간사)

성급하게 내린 결론을 주워 담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이건희 컬렉션을 생각 해보자. 전문인들이 낸 국립근대미술관 설립을 통해 이건희 가족의 기증 정신을 기리는 방안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자.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시간을 좀 주도록 하자. 박물관도 미술관도 아닌 그래서 ‘MUSEM’이라 하지만 21C 대한민국이 세워 자손만대에 물려줄 중차대한 일을 어디 우물가에서 숭늉 구하듯 해서 되겠는가.

글 정준모(큐레이터, 국립근대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 공동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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