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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렸어"...노동자의 폐기된 육신 다룬 연극 '괴물B'

등록 2021.07.30 13:3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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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연극 '괴물B'. 2021.07.30. (사진 = 극단 코끼리만보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연극 '괴물B'. 2021.07.30. (사진 = 극단 코끼리만보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끼였어" "치였어" "깔렸어"

차가운 금속성이 배인 음악이 스산하다. 흐느적거리는 몸짓의 인물들은 유령 같다. 하나 같이 불편한 몸들이다. 끼이고 치이고 깔려서 상했다.

극단 코끼리만보가 최근 개막한 신작 연극 '괴물B'는 산업재해로 손실된 노동자의 폐기된 육신을 다룬다. 제목의 'B'는 정상적인 존재 'A'에 뒤쳐진 존재들을 대변하는 덩어리다.

극의 주인공 B의 몸은 노동현장에서 망가진 신체들로 엮여 있다. 공장 기계에 절단된 손, 불길에 휩싸인 몸뚱이가 덕지덕지 엮여 있다. 근대 이후 각종 노동의 참사 현장이 B의 몸에 새겨져 있다.

B가 항상 고통에 휩싸여 있는 이유다. 통조림 폐공장에서 몸을 숨기며 사는 그는 '아픔의 시간'을 끝내고 싶어한다.

폐공장은 젊은 배달노동자 '연아'의 아지트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신이 원할 때만 달린다'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회사에서 주체적으로 일을 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띵동' 배달 알람에 쫓기는 연아의 삶도 고된 노동의 연속이다. 연아의 부친은 과거에 투쟁하는 동료들을 뒤로 하고 공장으로 돌아갔으나 실종됐다. 

'괴물B'는 노동문제가 과거나 지금이나 예외적인 사건이 아님을 보여준다. 한 두 번의 죽음은 '사고'일지 모른다. 하지만 역사에서 그것이 반복되면, '사회적 학살'과 같다.

[서울=뉴시스] 연극 '괴물B'. 2021.07.30. (사진 = 극단 코끼리만보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연극 '괴물B'. 2021.07.30. (사진 = 극단 코끼리만보 제공) [email protected]

여전히 유령 취급을 받으며 몸을 혹사시키는 노동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올해만 해도 300㎏ 무게의 개방형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죽은 청년 노동자가 있었지만, 그는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했다.

'괴물B'는 노동자들의 절망을 안쓰럽게 보듬는다. 신발 공장 화재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할머니는 훼손된 노동자의 몸을 갖고 괴로워하는 또 다른 B의 몸을 어루만진다.

B는 단수가 아니다. 수많은 복수의 B가 존재한다. B의 몸은 우리 근대 노동역사의 상처를 의인화했다. 연극 '괴물B'는 세찬 분노와 쓸쓸한 슬픔이 뒤엉켜 있는 불온한 몸의 정서들을 기꺼이 껴안는다.

이 연극은 참혹한 노동을 말하지 않는다. 참혹한 노동이 이 연극을 내놓았다. 노동자의 죽음을 일반화하지 않고, 구체적인 목소리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이 연극은 귀하다. 

한현주 작가는 미국 드라마 '6백만 달러의 사나이'와 '소머즈',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 등 훼손된 신체가 상징적으로 활용된 작품들을 다양한 의미로 변주했다. 손원정 연출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속에서도 온기를 발견한다. 배우 이영주, 오대석, 정선철 등이 출연한다. 오는 8월1일까지 대학로 알과핵 소극장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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