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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희의 타로 에세이]무너진 공든 탑, '나도풍란'의 교훈…'16번 탑 카드'

등록 2021.10.09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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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 16번 탑 카드. (사진=조연희 작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타로 16번 탑 카드. (사진=조연희 작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그즈음 난 응모병에 걸려 있었다. 소설을 써서 이곳저곳에 디밀었다. 문학잡지에서 떨어지면 신춘문예에 응모했고, 신문에서 떨어지면 다시 잡지에 투고하는 식이었다. 여러 곳에 응모하다 보니 몇 개의 가명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다 재수 없으면 같은 심사위원이 중복 심사하기도 했다.

그중 모 일간지에 실린 심사평은 나를 절망에 빠트렸다. 내가 잡지에 응모했을 때 심사를 보았던 평론가가 신춘문예 심사도 보았던 모양이다. 그는 아주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채굴할 것이 없으면 광구를 폐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나. 

그 소설은 고쳐봐야 더는 나올 게 없다는 것인가? 아니면 작가로서 재능이 없으니 폐광을 하라는 의미일까?

내 한계가 여기까지란 말인가. 나는 마치 번개라도 맞은 기분이었다.

깨달음은 번개처럼

16번 카드의 제목은 ‘탑’이다. 번개가 탑에 내리 꽂혀 불이 났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번개가 탑 꼭대기의 왕관을 쳤다. 왕관으로 상징되는 탑의 뇌관을 친 것이다. 여기서 왕관이란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던 것, 옳다고 생각했던 것, 지고의 가치로 삼았던 것들의 상징이다.

타로 마스터들은 이 카드를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인해 그동안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붕괴되거나, 계획이 어긋나는 것 등으로 해석한다. 마라톤 선수가 경기 전 날 다리 골절을 당한 것을 계기로 전혀 다른 인생의 길을 걷게 된다던가 하는 것처럼, ‘외부의 영향력’에 의해 내가 움직이는 것이다.

삶이 어디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던가. 중요한 것은 붕괴되는 탑에서 서둘러 벗어나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소중히 쌓아 올린 것일지라도. 

“나도 귀하게 여겨주세요”

얼마 전 꽃집에서 ‘나도풍란’을 발견했다. 둥글납작한 돌멩이 위에서 맨발 같은 뿌리를 드러낸 채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는 모습이 마치 벼랑에서 암벽을 타는 듯 자못 위태하게 느껴졌다.

“‘나도풍란’이에요. 풍란의 일종인데 바람을 먹고 산다고 해 풍란이라고 불러요.”

그러면서 꽃집 아저씨는 덧붙였다. 뿌리를 드러낸 채 살아가는 기이한 생존 습벽 때문에 풍란을 키우는 것이 여간 까다롭지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꽃이 피면 그 향기나 모양이 견줄 바 없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인기가 높다나.

풍란과 비슷한 향기와 모양새로 마치 ‘나도, 풍란처럼 귀하게 여겨 달라’는 듯해 ‘나도풍란’이라 부른다고 했다.

이름이 기이해 찾아보니 ‘나도’ ‘너도’라는 접두사가 붙은 식물이 꽤 많았다.

나도바람꽃, 나도송이풀, 나도양지꽃, 나도옥잠화, 나도개감채, 나도개관중, 나도개피, 나도겨풀, 나도고사리삼, 나도공단풀, 나도냉이, 나도닭의덩굴, 나도물통이, 나도미꾸리낚시, 나도민들레, 나도바랭이, 나도범의귀, 나도사프란, 나도생강, 나도수영, 나도수정초, 나도승마, 나도씨눈란, 나도양지꽃, 나도여로, 나도제비란, 나도풍란, 나도하수오, 나도국수나무, 나도박달, 나도밤나무, 나도은조롱….

원래는 다른 분류군인데 모양이 비슷해서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도’의 삶, ‘너도’의 삶

갑자기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문청(文靑) 시절, 난 ‘작가’를 탑의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는 왕관 같은 것으로,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자격증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음을 모 평론가의 독설을 통해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

이후 난 시인으로 전향했지만, 아직도 ‘나도’ 또는 ‘너도’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람에 우수수 흔들리는 나뭇잎이 여기저기서 속삭이는 듯했다.

너도 밤나무니? 
나도 밤나무인데….

▲조연희 '야매 미장원에서' 시인 [email protected]

 ※이 글은 점술학에서 사용하는 타로 해석법과 다를 수 있으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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