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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에 내건 뜻, 현판을 만든 까닭은?

등록 2021.12.01 11: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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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현판 보고서 발간

[서울=뉴시스] 김정희와 완복의 글씨가 있는 선인도 현판, 조선, 19세기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2021.12.01.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정희와 완복의 글씨가 있는 선인도 현판, 조선, 19세기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2021.12.01.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글자나 그림을 새겨 건물에 다는 널빤지인 현판은 전통 건축의 중요한 부분일 뿐만 아니라, 글씨와 내용 안에 건물을 사용하는 이의 의지와 철학을 담은 종합예술품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일제강점기 이래 소장한 현판을 조사한 보고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현판'을 발간했다.

박물관은 일제강점기 조선 궁궐과 관청 건물이 훼철되면서 철거된 현판 82건 82점을 포함해, 조선 후기~광복 이후 만들어진 현판 104건 110점을 소장하고 있다.

박물관은 이 현판들을 전수조사하고, 현판 앞·뒤 고화질 사진을 촬영했으며 내용도 번역했다.

이번 보고서에 수록된 박물관 소장 현판에는 몇 가지 특징이 발견됐다. 

첫째, 궁궐과 관청에 실제 걸렸던 현판이 많다. 태원전, 훈련원처럼 건물 명칭을 적은 현판이나 전교같이 왕명을 새긴 현판이 여럿 있다.

특히 경연청, 문기수청 서리들의 명단이 기재된 좌목 현판 4점이 주목됐다. 이는 조선 후기 중간 계층의 동향을 알려주는 귀한 자료다.
 
개화기 관청 현판, 일제강점기 박람회장에 걸었던 현판 등 근대사 자료로서 가치가 높은 현판도 적지 않다.
[서울=뉴시스] 성친왕이 쓴 글씨로 만든 주련,청, 19~20세기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2021.12.01.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성친왕이 쓴 글씨로 만든 주련,청, 19~20세기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2021.12.01. [email protected]



둘째, 건물 기둥에 걸었던 현판의 일종인 주련이 많이 확인된다. 주련은 건물 처마 밑에 거는 편액과 달리 비바람에 더 노출되고, 건물을 고치거나 허물 때 편액보다 없어지기 쉽다.

박물관에 있는 주련은 모두 48점으로, 만든 형식이나 내용으로 보아 대부분 관청이나 궁궐 건물에 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셋째, 지금까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현판들이 있다. 철종대 좌의정이었던 박영원(1791~1854)의 별장인 녹천정의 편액, 집을 지은 사실을 기념해 적는 기문, 집의 대들보를 올릴 때 대들보 위에 쓰거나 안에 넣어 집의 안녕을 꾀하는 상량문 현판이 확인됐다.

김정희( 1786~1856)와 중국 청나라의 학자 완복(1801~1875)의 교류를 보여주는 '선인도' 현판과 청나라 명필의 글씨로 만든 현판들도 여럿 확인됐다.

그 가운데 기록으로만 알려졌던 원교 이광사(1705~1777)의 '연려실' 편액 실물이 확인됐다. 이는 이광사 특유의 서체가 잘 드러나는 작품인 동시에 18세기 조선 역사학을 대표하는 명저 '연려실기술'의 저작배경을 증언하는 사료다.

보고서에는 현판들의 사진, 자세한 설명과 함께 관내외 연구자들이 쓴 논고 6편이 같이 실렸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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