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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희의 타로 에세이]그러니 계속 춤을 추어라…21번 ‘월드’ 카드

등록 2021.12.18 06:00:00수정 2021.12.18 08: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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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 21번 '월드' 카드. (사진=조연희 작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타로 21번 '월드' 카드. (사진=조연희 작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얼마 전 김아타 작가의 갤러리 아르테논에서 ‘아이스 붓다’라는 작품을 보았다. 2011년 뉴욕의 루빈 미술관 로비에 전시한 작품이었는데 얼음을 조각하는 것부터 녹아들어 가는 것까지 전 과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둔 것이었다. 

참선 자세로 앉아 있는 붓다는 처음엔 형체를 다 갖추고 있었다. 조명이 아이스 붓다에 투영된 모습은 영롱하고 신성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스 붓다는 녹아내리며 어깨는 왜소해지고 얼굴은 조막만해져 갔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간신히 지탱하고 있던 목이 뚝 부러지며 머리가 미술관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대리석 바닥에 날카롭게 파열음을 내며 떨어진 얼음덩어리는 영상임에도 내 뇌리를 강타했다. 내가 본 것은 무엇이고 사라진 것은 무엇이며, 머리 속에 남은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 순간 난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을 알아버린 기분이었다.

그대, 통하는 자

‘완성’이란 이름의 이 타로는 메이저의 마지막 카드이다. 바보가 온갖 역경을 거쳐 도달한 자아의 모습이기도 하다. 바보와 여신은 하나였다. 그 사이에 21개의 여정이 놓여 있었다. 세상 밖으로 나온 바보가 비로소 자신만의 자아를 구축했기에 카드 이름이 ‘The World’다.

그런데 자신의 세상을 구축했다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왜 그것을 여인이 춤추는 모습으로 표현했을까.

여인은 마치 황홀경을 느끼는 표정으로 춤추고 있다. 그것도 알몸으로.

한자 ‘舞(춤출 무)’는 하늘과 땅 사이에서 춤을 추는 사람을 의미한다. ‘巫(무당 무)’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춤에는 리듬이 있다. 리듬이란 자연의 힘이 인간의 에너지와 감응하면서 터져 나오는 파동이며 몸의 해방이다. 춤은 자연과 나, 그리고 세상과 ‘통’한 상태이다. 리듬과 ‘통’하고 음악과 ‘통’하고 내 몸과 같이 춤추는 이들과 ‘통’하고 하늘과 바람과 이 모든 것들과 ‘통’한 상태.

자신의 세계를 갖는다는 것은 이처럼 경계가 사라지고 ‘통’하는 상태가 된다는 의미일까. 

바보는 여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춤추는 자가 된다.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놓여나며 온전히 자신이 주인이 된다. 그래서 월드 카드는 완성, 통합 등의 의미로 해석한다. 또한 한 챕터를 끝낸 후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간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끝내고 새로운 프로젝트에 돌입하듯 완성 뒤의 새로운 출발이란 의미까지 내포하고 있다.
 

얼음의 전생은 물

얼음의 전생은 물이다. 붓다가 되었다고 물의 본질이 바뀐 것은 아니다. 얼음덩어리로, 아이스 붓다로 현상만 바뀌었을 뿐이다. 김아타 작가는 ‘얼음의 열반은 얼음이 녹을 때’라고 했다.

물의 시간을 끝내고 얼음덩어리가 되는 것, 얼음덩어리의 시간을 끝내고 아이스 붓다가 되는 것. 아이스 붓다의 시간을 끝내고 다시 물이 되는 것. 그 여정 속에서 우리는 물로써 얼음덩어리로써 아이스 붓다로써 각각의 완성과 탈피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깨달음이란 얼음이 물이 되는 지점, 물이 수증기가 되는 지점. 그 경계가 허물어지는 지점.

0에서 여행을 시작한 바보는 월계수 화환으로 만든 0 속으로 들어가며 여행을 맺는다. 바보의 고된 여행은 무수한 비움과 채움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비움에서 채움을 발견하고, 채움에서 비움을 발견하고. 버리지 않으면 채울 수도 없으니! 이것이야 말로 공즉시색 색즉시공이 아닐까. 타로 카드의 주인공 바보의 여정이나 물이 붓다가 되는 여정이나 같은 의미였던 것이다.

얼마 전 첫 산문집을 출간했다. 성장 에세이였는데 서문에서 ‘이 글은 지나간 내 청춘에 대한 고백이고 그 백발의 청춘에 대한 장례’라고 적었다.

어쩌면 내 안에서 케케묵어가던 숙변 같은 조금은 부끄러운 이야기였다. 그러나 변비를 오래 두면 분변 매복이나 치질이 되는 것처럼. 이 글을 내보내야 새로운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인연도 마찬가지다. 인연이 수명을 다하면 악연이 된다. 그러니 사랑해서, 미워해서, 그런 이유로 그 누구든, 너무 오래 붙잡지 마시길.

이런저런 이유로 책은 8년 만에 나왔다. 그중 2년은 편집자의 책상 속에서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반응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흉작이었지만 마음만은 마치 빈 그릇이 된 것처럼 가벼웠다. 백발이 다 되도록 놓지 못했던 청춘의 기억을 방생하고 나니 비로소 왜소증에 걸렸던 내가 나이를 되찾은 기분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이처럼 나를 비우고 채우는 일일까. 난 어디만큼 온 것일까.

내게 붓다는 아직 요원한 길이다. 아직 난 한 동이의 물. 다음에는 붓다를 조각할 만큼의 단단한 얼음덩어리가 되어 만나면 좋으련만.

이번 21번 월드 카드로 타로 에세이 연재를 일단락하려 한다. 그동안 타로 에세이를 찾아 읽어주신 분께 감사하단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

▲조연희 '야매 미장원에서' 시인·'흐르는 눈물은 닦지마라' 작가 [email protected]

※이번 화로 ‘조연희의 타로 에세이’는 연재가 종료됩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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