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배우 박용수 "나 아직 괜찮은데 안 불러주니까 절실했죠"
800명 지원자 뚫고 국립극단 시즌 단원 합격
"70대까지 연기…남은 10년의 새 출발"
'이순재의 리어왕'서 '켄트 백작' 존재감…진중함과 귀여움 매력
'금조 이야기'·'세인트 죠운' 두편 출연
"늘 배우로…재미나는 연기면 충분해"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2022 국립극단 시즌단원으로 선발된 배우 박용수가 지난 18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2.01.22. [email protected]
40여년 연기의 길을 오롯이 걸어온 배우 박용수가 국립극단 시즌 단원에 지원한 이유는 명확했다. 45세라는 나이 제한이 폐지된 올해 그는 66세로 최고령 시즌단원이 됐다. 78세의 오영수, 88세의 이순재 등 노장 배우들의 활약이 더욱 주목받고 있는 요즘이다. 무대와 영상을 넘나들며 대중들에게 익숙한 얼굴의 중견배우이지만, 그에겐 무대가 필요했다.
지난 18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에서 만난 그는 "60세가 넘으면서 출연 의뢰가 굉장히 줄어들었다. '나 아직 괜찮은데 왜 이러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라며 "제가 열심히 해도 앞으로 75~76세가 최대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남은 10년을 국립극단 작품으로 출발하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800명 몰린 시즌단원…40년차 베테랑 배우도 오디션
"발버둥이죠. 아직 좋은 맛을 보여줄 수 있는데 점점 안 불러주니까 절실했어요. 이건 서글픔을 넘어 위기감이에요. 더 해야 하는데, 자꾸 잊혀 가는 것 같으니까 일을 찾아 나선 거죠. 요새는 기대되고, 꿈에 부풀어 있어요."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2022 국립극단 시즌단원으로 선발된 배우 박용수가 지난 18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2.01.22. [email protected]
"어떤 역할을 맡아도 안정적으로 맛을 내는 나이는 40부터가 아닌가 해요. 배우든 연출이든 작가든, 그때서야 맛이 나죠. 돌이켜보면 저도 50대에 가장 왕성하게 많은 작품을 했어요. 20~30대는 그 밑거름이죠."
800여명이 몰린 이번 시즌단원에는 22명이 최종 선발됐다. 이들은 1년간 국립극단의 다양한 제작 공연에서 활약한다. 올해 개편된 시즌단원제는 각 작품에 맞는 배우 선발을 골자로, 출연작이 정해져 있다. 박용수는 '왕서개 이야기' 등의 김도영 작가 신작으로 3월말 개막하는 '금조 이야기'와 10월에 선보이는 김광보 국립극단 예술감독의 3년 만 연출작 '세인트 죠운'에 출연한다.
'이순재의 리어왕'서 '켄트 백작' 존재감…진중함과 귀여움 매력
[서울=뉴시스]배우 박용수. 연극 '리어왕' 공연 사진. (사진=관악극회 제공) 2022.01.2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솔직히 '켄트 백작'은 과거 공연을 보고 인상이 깊게 남은 역은 아니었다. 연습 첫날, "켄트 백작은 재미없다. 그렇지만 열심히 해보겠다"고 말한 그는 무대에선 충신의 진중함과 하인으로 변장한 귀여움을 오가며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귀여움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에스트라 공'을 하면서 체득했다고 했다. 극단 산울림의 임영웅 연출이 다시 함께하자고 했을 때, 그는 '에스트라 공'을 하겠다고 답했다.
"20년 전에 했던 포조를 기대하신 것 같은데, '에스트라 공'을 하겠다고 했어요. 맨날 박용수는 점잖은 역만 하는데, 50대에 욕심을 낸 거죠. 놀란 눈으로 보더니 일주일 동안 답을 안 하시더라고요.(웃음) 그 많은 대사를 하면서 최대한 어떻게 귀여울 수 있을까 탐구했고, 성공했죠. 어릴 때부터 발산 못 시킨 제 속의 장난기를 마음껏 펼쳤어요."
'리어왕' 작품으로 박용수는 자신의 목소리에 대한 확신도 가졌다. 서울대 성악과 출신인 그는 연기 활동 초반엔 목소리가 오히려 방해된다고 생각했다. 성악 발성처럼 대사하는 게 부자연스럽다고 느꼈고, 이를 없애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서울=뉴시스]배우 박용수.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공연 사진. (사진=국립극단 제공) 2022.01.2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사단장' 전문 배우 벗어나고파…사투리 쓰고 애환 있는 역할 원해"
부산이 고향인 그가 사투리로 연기한 첫 작품이었다. "고향 말을 쓰니까 너무나 자유로워졌다. 내 속에서 더 많은 것들이 튀어나왔다"고 회상했다. 그가 처음 이 길에 섰을 땐 배우에게 표준어를 못 하는 건 허락되지 않았고, 사투리를 고치느라 무척 애를 썼다.
"그동안 많은 작품을 했지만, 역시 마음 밑바닥에서 열리지 않은 억눌린 부분이 있구나 깨달았죠. 그때 칭찬도 많이 들었고 상도 처음 탔어요. 그런데 지금도 사투리 쓰는 역할은 잘 안 줘요. 정말 더 훨훨 날아다닐 수 있는데 말이죠.(웃음)"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2022 국립극단 시즌단원으로 선발된 배우 박용수가 지난 18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2.01.22. [email protected]
1978년 극단 '연우무대'에 입단해 1980년대부터 무대와 영화, 방송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했다. 영화 '접속',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여고괴담', '효자동 이발사', '공공의 적2', '화려한 휴가' 등과 드라마 '토지', '대왕세종', '아테나 : 전쟁의 여신', '가면' 등 다수 작품에 출연했다.
앞으로의 10년을 더 기대하고 있는 그는 무대 위에서 관객들의 생생한 반응을 들을 때면 여전히 짜릿하다. "늘 배우로 살고 있구나 하는 정도면 된다"며 "이제 진짜 맛이 나오는데, 재미나게 연기할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서 속도감은 느려질 수 있지만, 더 섬세해져요. 묘한 맛을 음미해보는 재미가 점점 생기죠. 그래서 젊은 배우가 하나도 부럽지 않아요. 요새 연기가 훨씬 재미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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