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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인천의 탑골공원' 동인천역, 갈곳없는 노인들로 북적

등록 2022.01.23 15: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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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위한 여가공간 없는 현실

다리 불편한 노인에겐 버스정류장이 휴식처

노인들, 북광장 공간마저 사라질까 걱정

[인천=뉴시스] 이루비 기자 = 23일 오전 11시께 동인천역 북광장에 노인들이 모여 있다. 2022.01.23. ruby@newsis.com

[인천=뉴시스] 이루비 기자 = 23일 오전 11시께 동인천역 북광장에 노인들이 모여 있다. 2022.01.23. [email protected]


[인천=뉴시스] 이루비 기자 = 추위가 한풀 꺾인 23일 오전 11시께 인천 동구 송현동 동인천역 북광장. 20여명에 달하는 노인들이 한곳에 모여 선 채 담소를 나누고 있다. 주변에 4~5명씩 뿔뿔이 흩어져 모인 노인들까지 합치면 50명은 돼 보였다. 휑한 분위기에서도 감출 수 없는 무리의 모습은 서울 종로의 탑골공원을 연상케 했다.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50대 여성 A씨는 "언제부턴지 모르지만, 동인천역은 노인들이 많이 모이기로 유명하다"며 "연세 드신 분들이 갈 곳이 없으니 전부 다 저 넓은 광장에 모여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북광장에 식당은 많지만, 노인들이 앉아서 대화를 나누거나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은 없어 보였다. 경로당과 달리 코로나19에도 문을 닫지 않고 카페나 식당처럼 QR코드로 출입인증을 하지 않아도 되는 노인들 만의 여가 공간은 근방에서 이곳이 유일했다.

갈 곳 없는 수십명의 노인들은 서로 이름과 나이도 정확히 모르고 사는 곳도 인천뿐만 아니라 서울, 경기 고양, 의정부 등으로 다양했다. 그러나 갈 곳 없는 외로운 처지라는 공통점 하나로 이들은 친구가 됐고, 서로의 외로움과 서글픔을 공유했다.

 동인천역 북광장을 자주 찾는다는 이모(74)씨는 “이곳에 모이는 형님, 아우들은 말친구이자 인생친구들이다”며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니 잠깐이라도 이렇게 나온다"고 했다.

서울에서 왔다는 또 다른 노인 B(73)씨도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종점 부근인 이곳에 내려 바람 쐬고 돌아가면 하루가 다 지난다"며 "특히 오늘은 오후에 이곳에서 무료 급식이 있어 노인들이 더 많다"고 전했다.

노인 중 몇 안 되는 여성인 C(88)씨는 "나도 젊을 때는 열심히 일하고 국가에 세금도 많이 냈다"며 "우리처럼 나이 먹은 사람들이 잠깐 쉴 곳조차도 없는 현실이 슬프다"고 했다.
[인천=뉴시스] 이루비 기자 = 23일 낮 동인천역 북광장의 버스정류장에서 노인들이 쉬고 있다. 2022.01.23. ruby@newsis.com

[인천=뉴시스] 이루비 기자 = 23일 낮 동인천역 북광장의 버스정류장에서 노인들이 쉬고 있다.  2022.01.23. [email protected]


그러나 동인천역 북광장도 갈 곳 없는 이 노인들을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다. 잠깐 앉아서 쉴 공간도 없어 노인들은 대부분 서 있어야 했다. 일부는 얇은 스티로폼이나 작은 돗자리를 차가운 바닥에 깔고 앉았다. 다리가 불편한 노인들은 북광장 내 두 곳의 버스정류장 의자에 모여 앉아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버럭 화를 내며 "이곳에서 찍은 사진과 인터뷰 내용이 기사로 나가면 안 된다"는 노인도 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노인이 "거리두기를 하지 않았다고 방역수칙 위반으로 누군가 신고하지 않겠느냐"며 "그럼 더 이상 우리는 이곳에 모일 수도 없고, 무료 급식마저 먹을 수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노인을 위한 여가 공간을 국가에 요구하기는커녕 제대로 앉을 곳 하나 없는 동인천역 북광장마저 잃게 될까 두려워하는 노인들의 모습은 대한민국이 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현실을 실감케 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날이 추운데 코로나19로 경로당은 열지 않는 등 사회에서 배제된 채로 살아가는 노인들의 상황이 안타깝다"면서 "대면접촉이 힘들수록 과거보다 취약계층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지금 우리 사회는 노인들에게 더 무관심해졌고 정책과 지원도 악화됐다"며 "어렵겠지만 지자체와 공무원들이 노인들을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돌봄을 실천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시스]서울 종로구는 탑골공원 전면 개방에 맞춰 몽골텐트, 대형 난방기 등 다양한 방한 시설을 설치했다. 2021.11.19. (사진 = 종로구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서울 종로구는 탑골공원 전면 개방에 맞춰 몽골텐트, 대형 난방기 등 다양한 방한 시설을 설치했다. 2021.11.19. (사진 = 종로구 제공) [email protected]


한편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는 몽골텐트와 바람을 막아줄 사방 투명가림막, 야외 대형 난방기를 설치해 무료급식 노인들을 위한 대기 공간을 조성했다. 또 노인들의 한랭 질환 예방뿐 아니라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방역도 꼼꼼히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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