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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최전선, 강대국들 결정에 좌우되는 불안한 삶"-AP르포

등록 2022.01.27 08:3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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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국경과 돈바스 분쟁지역 우크라이나 사람들 상황

"눈덮인 참호속에서 모스크바 워싱턴 런던 파리 소식에 주목"

"우크라인들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없어"

[키이브(우크라이나)=AP/뉴시스]우크라이나 국토방위군 대원들이 한 공원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2022.01.27.

[키이브(우크라이나)=AP/뉴시스]우크라이나 국토방위군 대원들이 한 공원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2022.01.27.

[키예프( 우크라이나)=AP/뉴시스] 차미례 기자 = 우크라이나 국경지대의 눈과 검은 그을음이 덮인 참호 속에서 우크라이나 병사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먼 외국들의 뉴스를 찾아 듣느라 휴대전화가 통하는 지역을 찾아 다니고 있다.

모스크바, 워싱턴, 런던, 파리, 베를린,  빈, 어떤 때는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의 소식을 듣지만 그것도 가끔 뿐이다.

이 곳 국경의 우크라이나 인들은 아일랜드 해역으로 해군 훈련을 떠나는 러시아 전함들,  발틱해로 밀려 들어오고 있는 미국제 전투기 편대들,  지중해에서 항시 대기 중인 거대한 미 항공모함에 대한 뉴스도 모른다.

키예프에는 서방국가들이 보내주는 수송기들에 가득찬 갖가지 무기들이 도착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모두가 자신들의 현지 생활과 삶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는 외국인들의 (전쟁) 결정만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분쟁지역인 동부 러시아와의 접경지대에는 수 만명의 러시아 군대가 매일 추가로 투입되어 조 바이든 미국대통령이 말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침략위기"가 고조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친러 분리주의자들의 내란으로 오랜 분쟁을 겪어온 동부 돈바스 지역의 졸로테 4 마을에 있는 우크라 군대는 여러 해 동안 러시아군의 침략에 대비해 수비를 맡고 있다.  졸로테 마을은 여러 개의 마을이 줄로 서 있는 지역으로 졸로테 1에서 5까지 번호가 매겨져있다.

졸로테4의 우크라이나 군은 친 러시아 반군부대로부터 불과 몇 백 미터 거리를 두고 있으며 반군은 아무도 마음대로 통과할 수 없는 이곳의 한 검문소 반대 쪽에 주둔해 있다.  우크라이나 병사들은 아직 맞닥뜨린 적은 없지만 그 곳에 적군의 저격수들이 매복해 있다고 알고 있다.

"3일 동안 전혀 사격이 없다가  갑자기 저 쪽에서 수류탄 자동발사기와 각종 화기들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박격포탄 한 개가  머리 위로 날아와 바로 우리 뒤의 들판에 떨어졌다.  우리 초소와 다음 초소 사이에 두 발이 더 떨어졌다.  그리고 15분 뒤에는 모든게 잠잠해졌다.  왜일까?  무슨 목적일까? 아무도 모른다.  이 곳 상황은 언제나 이런 상태이다"라고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무력점령시 그 곳에서 탈출했던 우크라이나 병사 올레흐 수르호프는 말했다 

그는 아내와 자녀들, 손주들을 우크라이나 서부지역으로 피란시킨 뒤 자신은 다시 국경의 전투부대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졸로테1에서 5까지의 마을 이름은 수 십년 전 구 소련시대에 붙여진 것으로 그 뜻은 "황금"이다.  당시 이 지역 석탄광 채굴작업을 할 때 작업조 이름에서 따왔다.  지금은 1에서 4까지가 우크라이나에 있고 졸로테 5는 국경관문에서 1km도 안되는 곳에 따로 떨어져 있다.

남들의 결정을 기다리는 운명은 8년간의 내전으로 포탄에 부서진 이웃 카테리니프카 마을도 마찬가지였다.  이 곳에는 나중에 생긴 참호들에서 장작 스토브 등으로 난방을 하고 있어서,  군인들만큼이나 많은 개와 고양이 떼들이 함께 모여 살고 있다.  가장 운이 좋은 참호 속 고양이들은 근무가 끝나고 전선을 떠나는 군인들의 품에 안겨 돌아가는 고양이들이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끝까지  죽지 않는 것은 희망 뿐이라는 농담을 한다.  우리는 모두 평화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나 손주들도 우리를 만나러 오지 못한다"고 류보프라는 첫 이름만 알려준 한 지역 여성 주민은 말했다.  매일 전화로 가족들과 통화하는 게 전부이고,  빨리 평화가 오기를 기다리자고 말한다는 것이다.

평화대신 전쟁이 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전투는 친 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이 2014년 이후로 점령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먼저 시작될 것 같지는 않다.  러시아 국경에는 현재 10만명이 넘는 러시아군이 파견되어 있으며 우크라이나 북부 벨라루스 국경부근에 추가로 수천명씩이 전투 배치되어 있다고 러시아 측은 밝혔다.

러시아 정부는 침공계획을 부인하고 있지만 미국과 나토 동맹국들은 전쟁 가능성에 대비하면서 발틱해에서  무력을 과시한다.   미국은 8500명의 병력을 유럽에 파견하기 위해 비상대기 시켜놓고 있다. 

미국과 영국이 보낸 여러 대의 군용 수송기들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한 가득 내려놓았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원조를 받으면서도 자신들은 고위급 외교를 통해 여러 차례 돌파구를 찾으려 했지만 아직 성공한 적이 없다.  앤터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 달 초 외교회담에서 " 우크라이나 없이 우크라이나에 관한 전략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볼로도미르 젤렌스킨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주 바이든 대통령이 " 소규모의 침략"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언급한데 대해 분노의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 우리는 강대국들에게 경고한다.  침략에는 작은 나라,  작은 규모의 침략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소규모의 사상자,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을 때 작은 슬픔이 있을 수 없는 거나 같다"고 젤렌스키는 썼다.

백악관은 24일 유럽국가 정상들과 나토 사무총장 등을 화상회담에 초청해 우크라이나 사태와 러시아의 요구에 대응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지만 우크라이나는 여기에 초청하지 않았다.  다만 미 국무부는 우크라이나의 반응 역시 서방국가들의 대응방식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대표단은  26일 파리에서 만나 2015년 프랑스와 독일의 중재로 우크라이나 동부 내전을 종식시킨 평화회담의 교착상태를 풀고 회담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이 날 회의는 예상보다 길게 계속되었고 결국은 베를린에서 다시 만나기로 합의하고 끝났다.

우크라이나의 국민들은 동부 돈바스 지역등 분쟁지역을 비롯한 우크라이나의 운명이 다른 나라들간의 협의에 따라 결정된다는 불편한 진실을 모두 알고 있는 듯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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