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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귀가 안 들려"…'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이 공연Pick]

등록 2022.02.13 10:59:31수정 2022.02.13 11:4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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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공연 사진. (사진=노네임씨어터컴퍼니 제공) 2022.02.13.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공연 사진. (사진=노네임씨어터컴퍼니 제공) 2022.02.13.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강진아 기자 = 가족이라는 이름의 울타리는 단단해 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 들어가면 때때로 당장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단단하지 못한 면모가 드러난다.

2014년 초연 이후 8년 만에 돌아온 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은 문화, 언어를 공유하는 한 부족(部族)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것은 바로 가족이다.

영국 극작가 니나 레인의 연극이 원작인 이 작품의 원제는 부족, 종족, 집단의 의미를 가진 'Tribes'로, 국내 제목은 그 의도를 좀더 쉽게 전하고자 했다. 작가는 "곧 태어날 아이가 청각 장애인으로 태어나길 바란다"는 한 청각 장애인 부부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가족이란 그 구성원들이 믿는 것, 그들의 문화, 언어를 전수하고 공유하고 싶어 하는 하나의 부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사람들이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해? 다들 귀가 안 들려. 우리는 그중 한 사람일 뿐이야."
[서울=뉴시스]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공연 사진. (사진=노네임씨어터컴퍼니 제공) 2022.02.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공연 사진. (사진=노네임씨어터컴퍼니 제공) 2022.02.1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소통에 있어 '언어'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작품 속 가족도 끊임없이 말을 한다.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이야기하고 뱉어내는 말속에, 고성도 오간다. 이들은 그걸 '논쟁'이라고 명명한다. 하지만 이 가족의 논쟁은 대화가 아니다. 비판과 비난이 난무하고, 서로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전혀 귀 기울이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은, 다른 이의 말과 충돌하면서 허공을 맴돌고 사라진다.

소통과 거리가 먼 이 가족은 아이러니하게 언어와 특별하게 얽혀있다. 편견과 고압적인 태도로 언어에 집착하는 학술 비평가 아버지 '크리스토퍼'를 비롯해 추리 소설 작가인 엄마 '베스', 언어를 주제로 논문을 쓰며 우울증을 갖고 있는 형 '다니엘', 오페라 가수를 꿈꾸는 누나 '루스' 그리고 막내 빌리가 있다.
[서울=뉴시스]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공연 사진. (사진=노네임씨어터컴퍼니 제공) 2022.02.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공연 사진. (사진=노네임씨어터컴퍼니 제공) 2022.02.1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그중 빌리는 청각 장애인이다. 거실 식탁 위에서 빠르게 쏟아지는 언어 속에 그는 홀로 고요하다. 이 시끄러움 속에 가족들의 이야기에 유일하게 귀를 기울이는 존재다. 입 모양으로 말을 알아듣는 그는 가족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재차 묻고 대화하려 하지만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는 이는 없다.

가족들은 빌리에게 '수화'를 가르치지 않고 그들의 언어에 적응하며 살도록 키워왔다. 그를 사랑한다고 했지만, 수화를 인정하지 않고 이 무리를 벗어나는 걸 원치 않으며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대로만 사랑을 줬다.

빌리는 청각장애 부모를 두고 있고 청력을 잃어가고 있는 수화통역사 '실비아'를 만나면서 변화한다. 청각장애인 모임에 나가고, 새로운 직업도 찾으며 세계를 열어간다. 반대하는 가족들에게 수화를 쓰겠다고도 선언한다. 그는 가족들이 실비아와 대화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작 자신을 사랑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자신과 대화도 제대로 하지 않고 수화를 배우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울분을 토해내며 이 부족의 울타리를 벗어난다.
[서울=뉴시스]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공연 사진. (사진=노네임씨어터컴퍼니 제공) 2022.02.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공연 사진. (사진=노네임씨어터컴퍼니 제공) 2022.02.1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진정한 소통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이 작품은 우리 모두에게 유효하다. 나를 둘러싼 가족은 물론, 내가 속한 집단과 작은 사회의 부족 속에서 언제든 만날 수 있는 문제다. 같은 언어를 쓴다고 해도 소통이 되지 않을 수 있고, 말만이 소통의 유일한 도구도 아니다. 현실 속에서 우리가 진실로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가족들이 빌리에게 돌아오라고 설득하는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다. 가족들은 속에 있는 진짜 마음을 감춘 채 다른 말을 그에게 건넨다. 무대 벽면에 속마음이 글자로 고스란히 적히는 무대 연출이 시선을 끄는데, 내뱉는 말과의 괴리로 소통의 부재를 겪는 현실 속 우리와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배우 남명렬, 오대석, 정재은, 김정영, 안재영, 오정택, 임찬민, 이재균, 강승호, 박정원이 출연한다. 오는 27일까지 서울 국립정동극장에서 공연.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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