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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K팝 톺아보기①]'yeonseupseng'·'까리하다'…돌민정음 아시나요?

등록 2022.05.07 01:02:00수정 2022.05.07 10:2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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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엔 K팝 사전 '돌민정음'(아이돌+훈민정음)

방탄소년단 아미 주축 '아민정음'(아미+훈민정음)도 통용

[서울=뉴시스] '깻잎논쟁' 종결자로 통하는 방탄소년단 진 밈(meme). 2022.05.06. (사진 = 위버스 캡처)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깻잎논쟁' 종결자로 통하는 방탄소년단 진 밈(meme). 2022.05.06. (사진 = 위버스 캡처)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우리나라 말인데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가 많다. K팝 세계화 속 영어인지 국어인지 헛갈리는 가사들도 많다. 반면 해외 가수가 한글로 노래를 발표하기도 한다. K팝 노래로 한국어 배우기 열기가 뜨겁지만 정작 우리도 모르는 노랫말과 우리말이 왜 중요한지, 해외 팝시장에서 우리말의 위상은 어떠한지 K팝으로 톱아보는 '우리말' 시리즈를 연재한다.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깻잎논쟁', 이거 어떻게 번역을 해야 하나요? 깻잎이 무엇인지, 깻잎은 어떻게 먹는 건지, 왜 떼어줘야 하는지, 자신의 연인이 다른 이성의 깻잎을 떼어주면 왜 화를 내야 하는지도 설명해야 하는데…?"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아미(방탄소년단 팬덤), 엑소엘(엑소 팬덤), 몬베베(몬스타엑스 팬덤), 모아(투모로우바이투게더 팬덤), 러비티(크래비티) 등 K팝 팬덤의 '번역계'가 분주해졌다.

최근 국내 각계각층에서 벌어진 '깻잎논쟁'이 K팝 아이돌 문화에도 양념을 더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돌이 우리 팬덤의 깻잎 떼주기' VS '우리 팬덤이 다른 아이돌 깻잎 떼주기' 같은 '밸런스 게임 질문'에 당황하는 아이돌을 국내 K팝 팬들이야 흥미진진하게 바라볼 수 있지만, 깻잎을 모르는 외국 팬들에겐 당혹스런 풍경일 수 있다.

번역계들은 가수 노사연·이무송 부부로부터 촉발된 '깻잎논쟁'의 기원부터 '깻잎'을 '페릴라 리프(perilla leaf)'라 부르는 게 맞는지, '세서미 리프(Sesame leaf)'라 부르는 것이 맞는지 등의 격론을 거쳐 해외 K팝 팬덤에게 해당 논쟁의 맥락과 뉘앙스를 전달 중이다.

글로벌 커뮤니티 플랫폼 '위버스'엔 방탄소년단 멤버 진이 젓가락과 자신의 입술만을 사용해 깻잎을 떼어내는 밈(Meme)이 유행하면서 그가 '깻잎논쟁' 종결자로 등극하기도 했다.

번역계는 K팝 아이돌 그룹 팬들이 트위터·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에 노랫말은 물론 아이돌의 웹 예능 발언, 평소 말 한마디와 뉘앙스까지 일일이 번역해 다른 나라 언어로 올려주는 계정을 가리킨다.

진의 '깻잎논쟁' 종결자 같은 밈이 최근 유행하면서 세세한 문화적 맥락까지 전달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밈은 온라인 상에서 재미난 댓글, 영상 속 한 장면을 패러디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미 온라인 상에는 K팝 용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K팝 사전 '돌민정음'(아이돌+훈민정음)이 있다. 특히 '돌민정음'에서도 방탄소년단 팬덤 아미를 주축으로 한 K팝 팬들 사이에서 통하는 '아민정음'(아미+훈민정음)이 가장 방대하다.

[서울=뉴시스] 추상철 기자 = 8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방탄소년단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 콘서트와 연계한 한국관광 홍보 부스가 운영되고 있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제공) 2022.04.0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추상철 기자 = 8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방탄소년단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 콘서트와 연계한 한국관광 홍보 부스가 운영되고 있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제공) 2022.04.0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한글은 자음과 모음을 조합,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는 '음소문자'로 통한다. 이에 따라 돌민정음은 한국에서 통용되는 뉘앙스를 모두 살려 외국어로 번역하기 어려운 경우에 'yeonseupseng'(연습생)처럼 영어 알파벳을 빌려 한국어 발음을 옮겨 적기도 한다.

K팝 실시간 음반·음원 판매량 집계 사이트인 '한터차트'도 글로벌 팬을 대상으로, K팝 용어들을 소개하는 중이다. 'K팝 딥-다이브 딕셔너리'라는 타이틀로 '까리하다' 같은 말들을 소개한다.

'까리하다'는 '멋지다'의 경상도 방언인데 K팝 팬들 사이에서 "쿨하다" 등의 뜻으로 자주 사용된다. K팝이 우리말 방언까지 세계에 알리는 힘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201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아이돌들이 우리말을 먼저 적극 알리는 편이었다. 방탄소년단이 미국 빌보드의 표지를 촬영하면서 글로벌 팬들을 위한 짧은 한국어 레슨을 유튜브에 공개한 것이 예다. 전 세계 아미들이 자신들의 콘서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공연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를 공개했다.

"모두 뛰어"를 "Mo-du Twi-uh"로 적고 '에브리바디 점프(everybody jump)'로, "소리-질러"를 "So-ri Jil-luh"로 적고 '메이크 섬 노이즈(make some noise)'로 해석하는 식이었다. 평소 한국 사람들이 쓰는 사투리인 "밥 문나?"(Bap Moon-Na?·Have you eaten?)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이젠 해외 팬들이 적극적으로 먼저 공부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1970~80년대 '굿모닝팝스'를 들으며 영어 공부를 하고 1980~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드라마·J팝을 들으며 일본어를 공부한 것처럼, 이젠 세계 팬들이 K팝을 들으며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특히 K팝의 세계적 위상이 하루가 남다르게 커지면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레 늘고 있다. 이번 깻잎논쟁 이후 "깻잎 김치를 처음 먹어봤다"는 해외 팬들이 한둘이 아니다. 

[서울=AP/뉴시스] 한국어 플래카드를 들고 방탄소년단을 응원하는 해외 아미들.

[서울=AP/뉴시스] 한국어 플래카드를 들고 방탄소년단을 응원하는 해외 아미들.

이처럼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적극 소비하고 알리는 해외 K팝 팬을 아미들은 '사랑둥이'를 변형, '외랑둥이'라고 부른다. 이들 외국 팬은 방탄소년단 팬덤으로 유입되는 동시에 한국문화 전반에 대한 흥미를 품게 된다.

K팝이 일종의 '세계 음악적 모국어'가 되고 있는 셈이다. 위로와 희망을 주는 방탄소년단의 노래로 공통된 정체성을 형성한 아미들이 '문화언어 공동체'가 됐고 그 중심엔 K팝을 구성하는 한국어가 있다는 분석이다.

방탄소년단이 '다이너마이트' 같은 영어 곡뿐만 아니라 한국어 노래인 '라이프 고스 온'을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 1위에 올릴 수 있었던 이유다. 게다가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UN총회장에서 연설을 할 때도 한국어를 사용했다. 

그간 한국어는 각지고, 딱딱한 어감으로 인해 세계인이 함께 부르는 노래 가사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박한 평도 일부 있었다. 하지만 K팝의 세계적 인기와 함께 한국어 위상도 동반 상승하면서 평가도 확연히 달라졌다. 미국의 권위 있는 음악잡지 롤링스톤은 한국어 노래에 대해 "가사를 찾아보기 전까지 오히려 더 신비하게 느껴지며, 방탄소년단이 전하는 메시지는 정말 아름답다"는 팬들의 인터뷰를 게재하기도 했다.

이전까지 K팝은 마니아적인 문화였다. 방탄소년단을 중심으로, 이제 해외의 젊은 세대에게 쿨하고 힙하며 젊은 감수성을 대변하는 '힙한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 얼리전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방탄소년단의 콘서트에서 '한국어 떼창'이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풍경인 이유다.

해외 진출 겨냥한 신인 아이돌을 제작 중인 중견기획사 관계자는 "예전엔 해외 팬들과 좀 더 수월한 소통을 위해 노랫말에 어떻게든 영어를 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제 해외 팬들이 적극 한국어를 공부할 수 있게 어려운 말들도 가감없이 넣는다"면서 "이런 흐름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봤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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