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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연배의 이야기와 함께하는 와인] 와인 범죄의 역사

등록 2022.05.28 06:00:00수정 2022.05.28 07:4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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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코로나19 여파로 홈술족이 늘어 와인 판매량이 큰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편의점 등 슬세권(슬리퍼를 신고 갈 수 있는 근거리 생활권)에서 와인을 쉽게 구매할 수 있어 와인 시장의 성장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2일 오전 서울의 한 대형 마트에서 다양한 와인이 판매되고 있다. 2022.03.02. bjko@newsis.com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코로나19 여파로 홈술족이 늘어 와인 판매량이 큰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편의점 등 슬세권(슬리퍼를 신고 갈 수 있는 근거리 생활권)에서 와인을 쉽게 구매할 수 있어 와인 시장의 성장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2일 오전 서울의 한 대형 마트에서 다양한 와인이 판매되고 있다. 2022.03.02.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인류가 와인과 함께 한지는 8000년이나 되었지만 인류의 범죄 역사는 그보다 훨씬 길다. 인류 최초의 범죄는 살인이었다. 400만년전 인류의 공통 조상으로 직립 보행을 했고 현생 인류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다른 유인원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증거가 발견되기도 했다. 스페인 북부 한 동굴에서는 43만년전 네안데르탈인이 둔기로 두개골을 맞아 살해당한 흔적이 발견됐다. 구약성서에도 아담의 아들 카인이 시기심으로 동생 아벨을 살해한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인류 최초의 살인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인류의 문명이 발전하고 법과 제도가 생기면서 온갖 종류의 범죄가 새로 탄생했다. 법이 있는 곳에 범죄가 있다. 범죄는 법률이 복잡해지고 인구가 늘어나는 것에 비례해 증가한다. 인류 문명의 상징이기도 한 와인을 마시기 시작한 이후에는 와인과 관련된 범죄도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와인과 관련된 범죄는 대체로 세 가지 종류로 나뉜다. 다음 회까지 이에 대해 살펴본다.

우선 가장 대표적인 유형은 가짜 와인을 만들어 유통하는 것이다. 와인 투자가들을 대상으로 한 선물거래 사기 사건도 가끔 일어나지만, 값싼 와인에 고급 와인 라벨을 붙여 비싼 값에 판매하는 단순한 사기 사건이 대다수이다. 가짜 와인을 만들면서 독극물을 섞어 사람이 사망하는 중범죄 사건도 종종 발생한다.

알코올 도수를 높이기 위해서 메틸 알코올을 사용하기도 하고, 당도를 높이기 위해서 납 아세테이트 등 독극물을 첨가하기도 한다. 1985년에는 오스트리아의 와인 생산업자가 화이트 와인의 당도를 높이기 위해 자동차 라디에이터에 넣는 부동액인 디에틸렌 글리콜을 첨가해 체포된 적도 있다. 와인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 이탈리아에서는 1986년 메틸 알코올을 섞은 와인을 마셔 23명이 사망하고 15명이 실명한 사건이 일어나 나라가 온통 뒤집혔다.

위험 물질이 아니더라도 와인에 첨가물을 넣는 것은 엄격히 규제 받는다. 예전에는 프랑스의 일부 보졸레 와인 생산자가 당도나 알코올 도수를 높이기 위해 설탕을 첨가하기도 했으나, 1973년부터는 불법이 됐다. 감미료나 계피 등 향신료를 섞기도 하는데 이 역시 불법이다. 그러나 포트 와인과 같이 주정을 섞은 강화 와인은 다른 종류의 와인으로 간주돼 허용된다.

한때 물을 섞는 것이 논란이 된 적도 있으나, 현재는 일부 물을 섞는 것은 와인 생산의 한 기술로 허용된다. 너무 익은 포도의 균형을 맞추거나 자연적인 탈수에 대한 수분 보충 또는 세금 문제 때문에 도수를 낮추기 위해서 물을 섞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희석하지 않은 와인을 마시는 것이 야만적이고 건강에 좋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방부제로 쓰이는 이산화황 등의 첨가물도 허용된다.

와인 사기는 역사가 오래됐다. 2000년전 로마에는 ‘팔레르니안(Falernian) 와인’이라 불리는 그 당시 최고급 와인의 가짜 와인이 바는 물론이고 중산층이나 가난한 가정집에까지 공급될 정도로 넘쳐났다. 그리스나 로마에서는 상한 와인을 ‘식 와인(sick wine)’이라 부르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 우유, 겨자, 재, 쐐기풀이나 심지어 납을 섞기도 했다

중세에도 가짜 와인이 범람했다. 런던에서는 와인을 서로 섞는 것을 막기 위해 프랑스산, 스페인산, 독일산 와인을 한 셀러에 보관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생겼다. 그리고 가짜 와인이나 상한 와인을 팔다 적발될 경우 이를 판매한 사람이 강제로 모두 마시게 했고, 심한 경우는 낙인을 찍거나 교수형에 처했다.

중세 이후 프랑스나 이탈리아산 고급 와인을 위조하는 경우가 많았고 위조 와인을 감별하는 ‘와인 의사(Wine doctor)’라는 직업이 생기기도 했다. 19세기 들어서는 유럽 전역에서 이슈가 될 정도로 가짜 와인 문제가 심각했다. 이에 따라 1860년 영국을 비롯해 1889년 프랑스, 1892년 독일, 1904년 이탈리아 정부가 와인을 법률적으로 정의하고 규제하는 법을 만들었다. 근래에는 2005년에 일어난 독일인 와인 판매업자 하디 로든스탁 사건과 2012년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인 루디 쿠니아완의 위조 사건이 유명하다. 이들은 모두 저급 와인에 ‘로마네 콩티’ 같은 고급 와인의 라벨을 붙여 수억 원에 이르는 고가에 판매했다.

와인 위조를 막기 위해 와인 병에 일련번호를 새기기도 하고 아이소토프 분석으로 불리는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인류가 계속 와인을 마시는 한 가짜 와인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와인 칼럼니스트·경영학 박사·우아한형제들 인사총괄 임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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