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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신저 "러에 영토 일부 넘겨야 전쟁 끝나"…우크라 "절대 불가"

등록 2022.05.25 11:5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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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전 상태 복귀가 이상적…두 달 내 협상 재개돼야"

NYT도 19일 사설에서 "고통스러운 영토 결정 내려야"

우크라 반발…국민 82% "차라리 전쟁 장기화가 낫다"

우크라 협상단 대표 "주권도 영토도 거래 대상 아니다"

[바흐무트(우크라이나)=AP/뉴시스]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바흐무트의 파괴된 건물 주변에서 주민들이 널빤지를 옮기고 있다. 2022.05.25.

[바흐무트(우크라이나)=AP/뉴시스]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바흐무트의 파괴된 건물 주변에서 주민들이 널빤지를 옮기고 있다. 2022.05.25.


[서울=뉴시스] 이혜원 기자 =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부 장관(98)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영토를 일부 넘겨야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크라이나는 영토는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반발에 나섰다.

24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에 따르면 키신저 전 장관은 전날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이같이 밝혔다.

키신저 장관은 "쉽게 극복할 수 없는 격변과 긴장이 조성되기 전, 앞으로 두 달 내 협상이 재개돼야 한다"며 "(영토 상황을) 전쟁 전 상태로 복귀시키는 게 이상적"이라고 평가했다. 그 이상을 추구할 경우 러시아와 새로운 전쟁을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쟁 전 상태는 러시아가 크름반도(러시아식 표기 크림반도)를 공식 점령하고,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와 도네츠크 돈바스 지역을 비공식적으로 지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키신저 전 장관은 미국과 서방이 러시아의 수치스러운 패배를 추구해선 안 된다며, 이 경우 유럽의 장기 안정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가 유럽에 갖는 중요성을 서방 국가가 기억해야 한다며,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선 안 된다고도 지적했다. 우크라이나가 전쟁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압박해야 한다고도 충고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리처드 닉슨 및 제럴드 포드 전 미국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을 지낸 인물로, 국제관계에서 현실주의적 접근법을 취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워싱턴=AP/뉴시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2019년 11월7일(현지시간) 아나톨리 안토노프 주미 러시아 대사와 만나고 있다. 2022.05.25.

[워싱턴=AP/뉴시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2019년 11월7일(현지시간) 아나톨리 안토노프 주미 러시아 대사와 만나고 있다. 2022.05.25.


키신저 전 장관 발언은 앞서 뉴욕타임스(NYT)가 사설을 통해 "우크라이나는 평화를 위해 고통스러운 영토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평가한 가운데 나왔다.

NYT는 지난 19일자 사설에서 "결국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하는 건 우크라이나인들이다"라며 "싸우고, 죽고, 집을 잃는 건 우크라이나인들이며, 전쟁의 끝이 어떻게 될지 결정하는 것도 그들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분쟁이 진정한 협상으로 이어지게 된다면, 어떤 타협이 요구되더라도 고통스러운 영토 결정을 내려야 할 사람은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 지도자들은 이와 달리 일제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질서 전체가 위기에 놓였다고 규탄하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다보스 포럼에서 "이번 전쟁은 우크라이나 생존이나 유럽 안보 문제일 뿐만 아니라, 지구촌 전체를 위한 과제"라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파괴적 분노"를 보이고 있다고 규탄했다.

다만 "러시아는 우리 이웃"이라며 "민주주의, 법의 지배, 국제 규칙에 기초한 질서 존중으로 돌아가면 언젠가 유럽에서 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보스(스위스)=AP/뉴시스]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화상으로 연설하고 있다. 2022.5.25.

[다보스(스위스)=AP/뉴시스]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화상으로 연설하고 있다. 2022.5.25.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영토를 넘기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그간 평화 회담 협상 조건으로 침공 전 국경 회복이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해왔으며, 우크라이나인 대다수도 젤렌스키 대통령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키이우 국제사회학연구소가 지난 13일부터 18일까지 우크라이나 시민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82%가 전쟁이 장기화하더라도 우크라이나 영토를 포기할 수 없다는 데 동의했다.

러시아 침공을 끝낼 수 있다면 영토를 양도할 가치가 있다고 답한 시민은 10%에 불과했다. 8%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다만 이번 조사 대상에는 크름반도, 세바스토폴, 도네츠크·루한스크 일부 지역 등 러시아 침공 전 우크라이나가 점령하지 않았던 지역 주민은 제외됐다.
[서울=뉴시스] 우크라이나 협상단 대표를 맡은 미하일로 포돌랴크 대통령실 비서관이 24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발언을 비판하고 있다. (사진=포돌랴크 비서관 트위터 갈무리) 2022.05.25.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우크라이나 협상단 대표를 맡은 미하일로 포돌랴크 대통령실 비서관이 24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발언을 비판하고 있다. (사진=포돌랴크 비서관 트위터 갈무리) 2022.05.25. *재판매 및 DB 금지


협상단 대표를 맡고 있는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보좌관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키신저는 우크라이나 일부를 주는 것처럼, 폴란드나 리투아니아를 빼앗기는 것도 허용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키신저 전 장관이 과거 푸틴 대통령과 만나 악수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도 올리며 비꼬았다.

포돌랴크 보좌관은 지난 21일엔 NYT 사설에 대해서도 "러시아에 영토를 양보하는 건 평화가 아닌 수년간의 전쟁 장기화로 가는 길"이라며 "우크라이나는 주권도 영토도 거래하지 않는다"고 반발했었다.

인나 소브순 우크라이나 의원은 "정말 수치스럽다"며 "전직 미국 국무장관이 주권 영토 일부 포기가 평화로 가는 길이라고 믿는 건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비난했다.

안드리 예르막 우크라이나 대통령 비서실장도 지난 22일 "전쟁은 우크라이나 영토 보전과 완전한 주권 회복으로 끝나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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