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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기준 임금피크제는 무효" 파장…현장 혼란 불가피

등록 2022.05.26 15:18:33수정 2022.05.26 15:4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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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합리적 이유 없는 임금피크제는 연령 차별"

임금피크제 사실상 제동…도입 사업장 혼란 불가피

하급심 진행 임금피크제 관련 소송 영향 미칠 수도

'모든 임금피크제=무효' 아냐…영향 제한 가능성도

[서울=뉴시스] 조수정 기자 = 지난 1월12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구직 희망자들이 구인게시판을 살피고 있다. 2022.01.12.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 조수정 기자 = 지난 1월12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구직 희망자들이 구인게시판을 살피고 있다. 2022.01.12.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강지은 김지현 기자 =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만을 이유로 직원의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현행법에 어긋나 무효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오면서 산업 현장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린다.

현재 임금피크제를 도입 중인 사업장이 적지 않은 데다 노사 간 합의를 거친 곳도 많아 현장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이날 퇴직자 A씨가 자신이 재직했던 B연구원을 상대로 낸 임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앞서 B연구원은 2009년 노조와 합의를 통해 정년을 61세로 유지하면서 55세 이상 직원에 대해서는 성과에 따라 임금을 차등 지급하는 내용의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A씨는 2011년부터 적용 대상이 됐다.

그러나 A씨는 임금피크제 때문에 자신의 임금이 낮아졌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특히 A씨는 55세 이상 직원에 대해 성과를 기준으로 임금을 차등 지급하는 것은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는데, 대법원이 A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재판부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고령자고용법 4조의4 1항은 강행규정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며 "이 사건 임금피크제를 전후로 A씨에게 부여된 목표 수준이나 업무 내용에 차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적용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다른 조치의 도입 여부 및 적정성 등을 합리적 이유의 판단 기준으로 제시했다.

이는 임금피크제 효력에 관한 판단 기준을 최초로 제시한 판결로, 사실상 임금피크제에 제동을 건 것이다.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서울 서초구 대법원 모습. 2018.07.31. bjko@newsis.com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서울 서초구 대법원 모습. 2018.07.31. [email protected]

노동 생산성을 높이고 청년 일자리를 확대해 세대 간 상생을 촉진한다는 취지로 2000년대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도입된 임금피크제는 '60세 정년 의무화' 등 정부의 장려과 맞물려 2016년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다.

공공기관 대부분은 2015년말 도입을 완료했으며, 300인 이상 민간기업도 속속 시행에 나섰다. 그 결과 현재 정년제를 실시하는 사업장 가운데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곳은 35만4000곳에 이른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 판결로 임금피크제를 도입 중인 이들 사업장의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 정부에서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법정 정년 연장과 연계해 임금피크제를 접목한 바도 있고, 이미 임금피크제가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는 상황이라 이번 판결에 따른 상당한 혼란이 예상된다"고 했다.

대법원이 임금피크제의 효력을 판단하기 위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함에 따라 임금피크제를 도입 중인 노사는 임금피크제의 시행 방법, 대응 조치 등을 놓고 다시 논의하거나 협상해야 하는 상황이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도 "사업장별로 도입 절차나 요건, 방법이 제각기 다른 상황에서 이번 판결이 가져올 파장은 적지 않다고 본다"며 "임금피크제를 조건으로 정년을 연장한 경우 고용 불안이 야기될 우려도 있다"고 했다.

특히 재판부는 노사가 합의했더라도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에 따라 임금을 삭감하는 것은 무효라고 보면서 노사 합의 등의 절차를 거친 사업장의 혼란이 예상된다. 하급심에서 진행 중인 임금피크제 관련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서울=뉴시스] 권창회 기자 = 지난 2월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인근에서 설 연휴를 마친 직장인들이 출근을 하고 있다. 2022.02.03. kch0523@newsis.com

[서울=뉴시스] 권창회 기자 = 지난 2월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인근에서 설 연휴를 마친 직장인들이 출근을 하고 있다.  2022.02.03. [email protected]


다만 이번 판결이 '모든 임금피크제=무효'라는 것은 아니다.

임금피크제는 크게 정년을 유지하면서 임금을 삭감하는 '정년유지형'과 정년을 연장하는 조건으로 임금을 삭감하는 '정년연장형' 등으로 나뉜다.

이번 판결은 정년연장 없이 임금만 삭감한 정년유지형 사례로, 산업 현장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얘기다.

권 교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정년 연장이나 근로시간 조정, 직무 변경 등 타당한 대응 조치를 한 경우에는 이번 판결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 관계자도 "현재 다른 기업에서 시행 중인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나 하급심에 진행 중인 사건 관련 개별 기업들이 시행하는 임금피크제의 효력의 인정 여부는 도입 목적의 정당성 등 기준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한편 노동계는 이날 대법원 판결에 환영하면서도 임금피크제 전면 폐지를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임금피크제 자체를 무효로 선언하지 않고 임금 삭감에 대한 조치 등을 도입한 경우 유효가 될 여지를 남겨뒀다"고 우려했다. 한국노총은 "노조 차원에서 임금피크제 무효화 및 폐지에 나설 것을 독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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