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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우의 작가만세]시인 문보영 "창작 매진하려 리스본으로 떠납니다"

등록 2022.06.1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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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인

EBS 라디오 '문보영의 시, 사전' 진행

시집, 산문집, 소설집 등 출간하며 활동

[서울=뉴시스] 문보영 시인 (사진=문보영 제공) 2022.06.1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문보영 시인 (사진=문보영 제공) 2022.06.1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신재우 기자 = "제 핵심은 시에요. 다른 글을 아무리 많이 써도, 에세이집을 여러 번 내고 소설집을 내도 시를 쓰지 못할 때 자책감이 가장 심해요."

시인 문보영(30)은 자책감에 시달려왔다. 그는 시집 '책기둥'으로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고, 소설집을 출간하기도 했으며 최근엔 SF소설을 발표했다. 일기를 직접 구독자에게 우편으로 발송하고 이를 모아 '일기시대'를 펴냈다. 지난달에는 EBS 라디오 '문보영의 시, 사전'을 시작했다. 그런데 2019년 시집 '배틀그라운드'를 출간한 이후 아직 새 시집을 내지 못했다.

문보영은 그는 창작에 집중하기 위해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한 달 살기를 택했다. 코로나19 기간 중 가장 꿈꿔왔던 일이다.

[서울=뉴시스] 문보영 저서 (사진=민음사, 알마 제공) 2022.06.1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문보영 저서 (사진=민음사, 알마 제공) 2022.06.1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창작은 시작은 '일기', "매일 하는 숨쉬기 같아"

"일기는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선한 면을 가지고 있어서 누군가의 일기를 읽으면 그 사람을 완전히 미워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나의 영혼은 상대의 영혼과 미묘하게 뒤섞이면서 나는 약간 내가 아니게 되고, 상대도 그 자신이 아니게 된다. 그렇게 일기를 쓰는 동안 나는 여러 명이 된다." ('일기시대' 중에서)

문보영이 매일 쓰는 일기는 창작의 근간이다. 일기로만 남는 경우도 있지만 이후 시가 되거나 소설이 되기도 한다. 마치 하나의 커다란 메모장 같다.

첫 소설집 '하품의 언덕'은 산문에서 시작해 소설이 됐다. 산문처럼 쓴 글을 모았는데 출판사에서 "이건 소설이야"라는 말을 들었다. 소설이라는 정확한 자의식 없이 쓴 글은 하나로 모여 소설집이 됐다.

"자유로운 글쓰기가 어느새 소설이 돼 있었어요."

계속되는 글쓰기에 지칠 법도 하지만 문 시인은 힘들지 않아 했다.

"글쓰기는 저에게 유일하게 재미있는 일이에요."

일기쓰기는 그에게 창작 활동이자 휴식이다. 그에게 일기는 "매일 하는 숨 쉬기 같은 것"이고 글을 쓸 때 "소파 위에 누워있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의무감 없이 매일 일상을 가벼운 마음으로 기록하는 것이 비결이다.

물론 자신만의 일기와 '구독자를 위한' 일기 쓰기는 다르다. 그는 2018년 진행했던 일기 배달 서비스 '일기 딜리버리'를 지난 5월에 다시 시작했다.

"예전에는 왜 부담이 없었는지 모를 정도로 요즘은 부담을 많이 느끼고 있어요."

독자를 상정한 글쓰기는 그의 글을 다르게 만들었다.  일기 딜리버리를 하며 기승전결과 교훈에 신경써야 한다는 압박이 생겨버렸다. 그가 리스본으로 떠나 자유로운 글쓰기를 하려는 이유다.

[서울=뉴시스] 초월하는 세계의 사랑 (사진=허블 제공) 2022.06.1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초월하는 세계의 사랑 (사진=허블 제공) 2022.06.1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다양한 창작과 활동…"SF소설 좋아하는 것과 쓰는 것 너무 달랐어요"

문보영은 1992년 제주에서 태어나 고려대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시집 '책기둥'으로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고 시집 '배틀그라운드', 산문집 '준최선의 롱런', '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 소설집 '하품의 언덕' 등을 출간했다. 최근 SF 소설집 '초월하는 세계의 사랑'에 참여했다.

EBS 라디오 진행부터 북토크, 시수업까지. 등단 이후 문보영은 창작과 더불어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그가 하는 활동들은 모두 자신의 창작과 관련된 일이다. 최근 진행하는 EBS 라디오도 '시 사전'이라는 컨셉으로 시를 읽고 시어에 대해 생각하는 방송이다.

"사실 시를 써서 나오는 수익은 커피값 정도에요."

돈을 위해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행사 등을 통한 부수입은 그가 한국 사회에서 전업 시인으로 활동할 수 있게 했다. 독자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등단 이전까지 과외를 하며 생활비를 모아야 했던 그는 이제 넉넉하지는 않지만 시를 쓰고 시에 대해 말하며 살 수 있게 됐다.

지난 4월 출간된 '초월하는 세계의 사랑'에 '슬프지 않은 기억칩'이라는 SF소설로 참여한 그는 새로운 어려움을 마주했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미래를 상상하는 건 그와 잘 맞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과학을 싫어한다.

"SF소설을 좋아하는 것과 쓰는 건 전혀 다르더라고요."

"그러나 감쇠기 때문에 로봇의 기억은 인간의 것과 같이 마모되고 변형되며 흐릿해지기 때문에 사라-17은 메모를 했다. 겪어보지 않은 과거에 관해, 내 것이 아닌, 타인의 과거에 관해. 그건 자기 안에 사는 낯선 존재를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과 같았다. 남의 기억을 마음속에 너무 오래 품으면 그 기억은 누구의 기억도 아니게 된다. 혹은 모두의 기억이 되거나." ('슬프지 않은 기억칩' 중에서)
[서울=뉴시스] 문보영 시인 (사진=문보영 제공) 2022.06.1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문보영 시인 (사진=문보영 제공) 2022.06.1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가짜 일기 쓰며 상상한 리스본, 한 달 살기 떠난다

"내가 빠져 있었던 건 가짜 일기 쓰기였다. 리스본에 가고 싶은데 현실이 따라주지 않아서 리스본 가이드북을 쌓아놓고 읽었다. 구글 맵을 켜놓고 거리뷰를 보며 일기를 썼다. 리스본에 관한 진짜 기억이 있는 사람처럼 굴었다. 리스본의 언덕을 올라본 척했고 과자 가게와 노란 전차를 실제로 본 척했다." ('초월하는 세계의 사랑'의 '작가노트' 중에서)

등단 6년 차. 시집 2권과 에세이 4권, 소설집까지. 스물 넷이라는 이른 나이에 등단해 다작한 그는 이제 작품 발표보다 창작에 집중하고 싶다.

"제 자신에 대해 더이상 할 말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많은 책을 발표하며 그는 일종의 탈진 상태가 됐다. 리스본에서는 다음 시집에 실을 시 쓰기에 매진하려고 한다. 평소 즐겨하지 않는 산책도 리스본에서는 많이 해볼 계획이다.

인터뷰를 마친 다음날, 문보영은 리스본으로 떠났다. 리스본에 도착한 그는 상상했던 그곳에 만족하고 있었다.

"해가 늦게 지고 정말 좋네요."

문보영은 한국과 8시간의 시차가 나는 곳에서 산책을 하며 다음 시를 구상하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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