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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지옥]②제도권 밖 환자돌봄…간병인도 보호자도 "내가 을"

등록 2022.06.24 08:00:00수정 2022.06.24 08: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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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지원, 재난적 의료비 등 정부 혜택서 제외

일정 자격 없어…석션 등 의료 행위 대신하기도

간병인 대상법적 보호 미비…인격 모독 등 빈번

"간병 제도 공백 처해…제도화 생각해 봐야 해"

[도쿄=AP/뉴시스]지난 2020년 11월22일 일본 도쿄 남서부 시즈오카에서 마스크를 쓴 한 남성이 석양 하늘을 배경으로 방파제를 거닐면서 휠체어 탄 여성을 밀고 있다. 2020.11.23.

[도쿄=AP/뉴시스]지난 2020년 11월22일 일본 도쿄 남서부 시즈오카에서 마스크를 쓴 한 남성이 석양 하늘을 배경으로 방파제를 거닐면서 휠체어 탄 여성을 밀고 있다. 2020.11.23.


[서울=뉴시스] 구무서 기자 =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의료시스템이 잘 돼있다고 하는데 간병인을 써보지 않은 사람들의 얘기입니다. 간병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어요."

24일 뉴시스와 통화한 최승일(가명)씨는 의료비를 지원해 주는 복지 사업을 신청하려고 했지만 신청서조차 내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의료비 지원 대상에 포함되는 항목에 간병비는 제외돼있기 때문이다.

일정한 자격을 갖추고 노인장기요양등급 판정에 따라 건강보험 체계 내에서 활동하는 요양보호사가 있지만 노인장기요양등급을 받는 기준은 65세 이상 또는 노인성 질환자다.

노인장기요양등급을 받더라도 시설급여가 지원되는 등급을 받지 못하면 시간제 지원에 그치고, 시설급여에 해당하는 등급을 받더라도 환자가 요양 시설 입소를 꺼려 하면 제도권 밖에 있는 간병인을 찾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정부에서 제공하는 각종 혜택에서 간병 행위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게 긴급 지원, 재난적 의료비, 의료비 본인 부담 상한제와 같은 재정 지원이다. 정부는 과도한 의료비 지출로 인한 가계 경제 파탄을 막고 적절한 치료 지원을 위해 각종 의료비 지원 사업을 시행하고 있지만 사적 간병 비용은 일절 포함하지 않는다.

긴급 복지에 간병비가 포함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의료비 지원은 병원에서 청구하는 의료비만 지원하게 돼 있다"며 "간병비까지 확대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건강보험 체계 내에서 급여도, 비급여도 아니어서 비급여를 보장해 주는 민간 실비보험에서도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간병 비용을 보장하는 별도의 보험이나 특약에 가입해야만 한다.

법적 테두리 밖에 있는 간병인의 이용료는 주로 이용자와 간병인의 개인 현금 거래로 이뤄지기 때문에 지출로 잡히지가 않아 결제 행위를 통한 소득·세액 공제나 포인트 적립 등 각종 혜택에서도 제외된다.

보건사회연구원 학술지 '보건경제와 정책연구'에 실린 '사적 간병비 규모 추계와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정책적 시사점' 논문에 따르면 연간 사적 간병비 규모가 2018년 기준 최대 8조원에 달한다.

일정한 근무 기준이나 자격이 없는 점도 문제점 중 하나다.

가래를 뽑아내는 석션이나 식사 보조, 이동 보조, 체위 변경 등 의료인이 해야 할 업무를 간병인이 대신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제도적으로 정립된 게 아니고 어깨너머로 배우거나 간호인력에게 간단히 요령만 익히다 보니 간병인마다 행위 가능 유무와 숙련도 등이 제각각이다.

간병인이 제도 밖에 있다보니 이들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외국인 간병인을 향한 환자나 보호자의 폭언, 인격 모독 등이 대표적이다. 자신을 중국 하얼빈에서 왔다고 밝힌 한 간병인은 "침대에 똥오줌을 싸고 나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면서도 내가 조선족이라는 이유로 무시하는 환자가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근무 환경 역시 열악하다. 일당 12만원을 받더라도 환자와 24시간 붙어있는 점을 고려하면 야근수당 없이 시급 5000원을 받는 셈이다. 근무의 연속성이나 기본 급여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돌보던 환자의 퇴원 시기가 다가오면 간병인이 없는 다른 환자나 보호자에게 간병인을 쓰라고 영업을 하기도 한다.

지난 16일부터 간병인을 포함한 가사근로자들을 법적으로 보호하고, 제공하는 서비스의 품질을 보증하는 가사근로자법이 시행됐지만 시행 초기여서 여전히 대부분의 간병인은 '협회'라고 불리는 용역업체를 통해 환자와 연결이 된다.

이 같은 상황이 맞물리면서 진입 장벽이 낮은 일자리를 찾는 특정 계층이 주로 유입되는 쏠림 현상도 나타난다. 온라인 간병인 매칭 플랫폼 '케어네이션'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 간병인(케어메이트) 77%가 여성이고 73.4%가 50대 이상이다.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간병인을 채용해 환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도 있지만 비용 문제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한 요양병원 관계자는 "비용이란 게 수혜자가 부담을 하는 게 맞는데, 간병인은 제도권 내에 없어서 이 비용을 환자에게 부과할 수 없다"며 "간병인을 오로지 병원 재정으로만 채용하려고 하면 비용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박시영 간병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 연대 활동가는 "지금은 65세 이상, 노인성 질환이 아닌 환자는 모두 간병 제도의 공백에 처해있다고 봐야 한다"며 "간병인의 명확한 정의, 기준, 자격 등 제도화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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