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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보는 K아트&책]이어령 '눈물 한 방울'...BTS RM·'산' 유영국

등록 2022.07.01 05:00:00수정 2022.07.02 13: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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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RM이 유영국 전시를 관람, 그림 앞에서 인증샷을 남겼다.사진 = RM인스타그램

[서울=뉴시스]RM이 유영국 전시를 관람, 그림 앞에서 인증샷을 남겼다.사진 = RM인스타그램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그림이 없었다면/ 사방의 벽은/ 벽의 공허는/ 무엇으로 채우나./그림이 없었다면/ 화가의 마음은/ 마음의 공허는 무엇으로 채우나.'/

'시대의 지성' 이어령이 죽음을 독대하며 써 내려간 미공개 육필 원고가 '눈물 한 방울'로 남았다. 2017년 간암 판정을 받은 뒤 항암 치료를 거부한 채 집필에 몰두했다.영면에 들기 한 달 전인 2022년 1월까지 그는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펜을 놓지않고 생명과 죽음을 성찰했다. 지난 2월 26일 별세한 후 내면의 목소리를 기록 중인 별도의 노트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최근 그 마지막 노트가 묶여 묵직한 '눈물 한 방울' 책이 됐다. 사멸해가는 운명을 온 몸으로 받아들인 그의 흔적이 글과 어우러진 '손 그림'으로 담겼다.

병마와 싸우던 2019년 12월1일 그는 '마음의 공허'로 '그림'을 알았다. /그림은 그리다에서 나온 말인가 본데/...(중략) 시간의 공허는/ 무엇으로 채우나. /오늘 그 공허로 하여/ 그림을 그린다./ 모든 것들 그리워한다./ 그리다는 그림이고 그리움이다.'라며 '글씨를 쓰다 그림을 그린다'고 육필로 남겼다.

그는 "인간을 이해한다는 건 인간이 흘리는 눈물을 이해한다는 것이다"며 2022년 1월 마지막 명문을 남겼다. '피와 땀을 붙여주는 눈물 한 방울. '쓸 수 없을 때 쓰는 마지막 '눈물 한 방울'이라며 살아서 흘리는 눈물방울의 흔적을 '생명의 정수'로 전한다.
[서울=뉴시스]이어령의 마지막 노트 '눈물 한 방울' 책.

[서울=뉴시스]이어령의 마지막 노트 '눈물 한 방울' 책.




'피 땀 눈물'은 '희망의 씨앗'이 됐다. 방탄소년단 RM은 '마음의 공허'를 그림으로 채웠다. 미국과 유럽 투어를 다니면서 빈 시간이 많이 생겼다. 처음엔 호텔에서 유튜브, 넷플릭스를 보며 지루하게 보냈다. '시간의 공허'는 그림에 눈뜨게 했다. “2018년 미국 시카고미술관에서 모네, 피카소 등 거장의 작품을 보고 전율에 휩싸였다. 한국 작가에 대해 공부하고 미술관을 찾아다녔다.” 'RM 미술 투어' 현상까지 일으킨 그는 이제 '벽의 공허'를 채울 계획도 밝혔다. "소장한 미술품을 보여줄 작은 공간을 만들 계획이다." 첫 작품으로 구매한 건 '과수원' 그림으로 유명한 고 이대원(1921~2005)의 '산(山·1976년)'이라고 했다.

'산 그림' 최고봉은 한국추상미술 선구자로 불리는 유영국(1916~2002)화백이다. (RM은 최근 유영국 20주기 기념전(국제갤러리)을 찾아 인증샷을 올리기도 했다.)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어록을 남긴 그는 그림의 허기'를 색으로 풀어냈다. 1977년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심장박동기를 달았다. 10여 차례 수술 등 생사의 문턱을 넘나들었지만 붓을 놓지 않았다. 그때 최고의 색채가 나왔다. 삶에 대한 밝은 희망과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가 녹아있다. 1970년대 후반 작품들은 환상적이고 원초적이고 웅장하다. 산인 듯 아닌 듯 미묘한 색채 변주가 돋보이는 비정형 추상화로 죽음을 마주하고 그려나간 그림은 평화롭고 서정적이다. '점·선·면·형·색' 등 우주 만물의 모든 요소가 다 담겨 있다. 지금 봐도 획기적인 색채 감각이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작고 20주년 기념 기념전 'Colors of Yoo Youngkuk'이 국제갤러리에서 8월 21일까지 열린다. 2022.06.09.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작고 20주년 기념 기념전 'Colors of Yoo Youngkuk'이 국제갤러리에서 8월 21일까지 열린다. 2022.06.09. [email protected]



생전 그는 "색채란 써보면 참 재미있는 거요. 옆에 어떤 색을 가져와야 이 색도 살고, 또 이 색도 살고 또 그림이란 게 그래요"라고 했다. '유영국 20주기' 전시를 연 아들 유진 유영국문화재단 이사장은 "부친이 지금 살아 계셨다면 아마 'BTS'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색에는 인류에 대한 희망과 미래의 꿈이 담겨 있으니까요."

지금의 화가도 흉내 낼 수 없는 40~50년 앞선 감각, 한국 추상미술의 가능성을 연 그림이 여전히 울림을 전하는 이유다. 마지막 일기에서 '맞춤법 스트레스 벗어났다'는 이어령처럼 유영국도 구상이냐 추상이냐 구분도 넘어섰다. 숭고하고 장엄한 색의 풍경을 남긴 '유영국 그림'은 우리에게 풍경 없이 풍경을 볼 수 있게 한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껏 떠오른 얼굴~.' 그림은 '영혼의 허기'를 채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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