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김훈 "안중근 시대와 비교하면 지금의 동양은 더욱 절망적"(종합)

등록 2022.08.03 14:49:33수정 2022.08.03 15:02:43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인간 안중근' 다룬 장편소설 '하얼빈' 출간 간담회

"필생 동안 방치한 작품…70세 넘어 완성"

[서울=뉴시스] 소설가 김훈이 3일 마포구 한 카페에서 신작 '하얼빈' 출간을 맞아 기자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문학동네 제공) 2022.08.0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소설가 김훈이 3일 마포구 한 카페에서 신작 '하얼빈' 출간을 맞아 기자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문학동네 제공) 2022.08.0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신재우 기자 = "안중근과 우덕순이 두 청년이 이토 암살을 논의할 때의 나이가 20대 말, 30대 초였습니다. 청춘이라는 게 나이를 먹어서 완성된 기다림의 세월이 아니라 그 순간에 이미 완성돼서 폭발되는 에너지를 가진 거구나 생각하게 됐습니다."

3일 소설가 김훈(74)이 신작 장편소설 '하얼빈' 출간 간담회를 열고 "청년 시절부터 안중근의 생애를 소설로 쓰려고 했는데 젊은 시절은 밥벌이를 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고 이제 70대가 돼서야 이 책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뒤늦게 소설을 완성하게 된 건 "안중근에 대해 쓰는 일을 감당해내는 것이 자신이 없었다"고도 했다.

소설 '하얼빈'이 '김훈 작가의 필생의 과업'이라고 홍보한 출판사와 달리 김훈 작가는 "젊을 때부터 생각했지만 필생 동안 방치한 작품"이라고 정정했다.

[서울=뉴시스] 소설가 김훈이 3일 마포구 한 카페에서 신작 '하얼빈' 출간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문학동네 제공) 2022.08.0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소설가 김훈이 3일 마포구 한 카페에서 신작 '하얼빈' 출간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문학동네 제공) 2022.08.0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안중근'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건 우연한 기회였다. 일본에서 작성한 안중근 신문조서를 읽게 되면서다.

"대학에서 영문과를 다니며 본 글 중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이 안중근의 신문조서와 이순신의 난중일기였습니다. 그때 봤던 글들로 책('칼의 노래', '하얼빈')을 내게 됐으니 제 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죠. 저는 책을 읽으라고 강조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책이라는 것이 결국 인간의 생을 지배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김훈이 안중근의 신문조서를 통해 포착한 것은 '혁명의 주동력과 삶의 격정'이다.

"어둠 속에서 잠을 청하는 밤에, 안중근은 이토의 육신에 목숨이 붙어서 작동하고 있는 사태를 견딜 수 없어 하는 자신의 마음이 견디기 힘들었다. 이토의 목숨을 죽여서 없앤다기보다는, 이토가 살아서 이 세상을 휘젓고 돌아다니지 않도록 이토의 존재를 소거하는 것이 자신의 마음이 가리키는 바라고 안중근은 생각했다."(88~89쪽)

김훈은 "(안중근과 우덕순) 두 청년이 이토 암살을 논의할 때 시대에 대한 고민은 무거웠지만 그들의 처신은 바람처럼 가벼웠다"며 "혁명에 나서는 자들의 몸가짐은 이렇게 가벼운 것이구나 생각이 들었고 한참 후에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이지만 안중근의 일생을 담은 역사 소설은 아니다. '하얼빈'은 안중근의 일대기가 아닌 1909년 10월26일 그가 이토를 저격한 순간과 그 전후의 짧은 나날에 초점을 맞췄다. 안중근이 자신의 왼손 약지를 자른 '단지 동맹'에 대한 내용 조차 언급되지 않는다.

김훈은 "안중근이 의병투쟁에서 의열 투쟁으로 전환하는 부분부터 다루기 시작했다"며 홀로 혁명에 나서는 인간 안중근에 집중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서울=뉴시스] 김훈 신작 장편소설 '하얼빈' 출간 (사진=문학동네 제공) 2022.08.0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김훈 신작 장편소설 '하얼빈' 출간 (사진=문학동네 제공) 2022.08.0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저는 역사를 소재로 한 글을 많이 썼지만 제 소설 속 이순신은 역사 속 이순신이 아닙니다. 하등 관련이 없는 제가 만든 인물이죠. '남한산성'도 고립무원에 빠진 성에서 인간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묘사했고요. '하얼빈'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지만 안중근이라는 인간의 청춘과 그 내면을 그리려는 것이죠."

이번 소설도 '영웅 안중근'이 아닌 '인간 안중근'을 그리는 데 집중했다. "안중근이 얼마나 위대한 영웅인지는 수많은 책과 보고서에 이미 드러나 있어 안중근의 고민과 개인적인 모습을 그리려 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소설을 쓰기 전 하얼빈으로 향하는 안중근의 경로를 방문할 계획이었지만 건강과 코로나19사태로 무산됐다.

김훈은 "이번 소설을 쓰며 (이야기에 대한) 장악력이 전혀 없었다"며 "취재가 소설을 쓰는데 표현이나 묘사에 직접적인 도움이 안 된다고 하더라도 손바닥에 장악하는 느낌이 들면 자신 있게 글을 써낼 수 있는데 이번엔 그런 느낌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소설에 남은 "서두름의 자취"도 아쉬운 부분이다. 지난해 한 차례 크게 아픈 후 더 이상 '하얼빈' 집필을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올해 초부터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속도를 냈다.

집필 당시 가장 마음 힘들었던 대목은 안중근의 처자식에 관한 부분이다. 그는 "황해도에 있던 안중근의 처자식이 하얼빈에 도착한 것이 이토 저격 다음 날인 10월27일"이라며 "그제야 전날 남편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게 된 것인데 '나 같으면 참 괴롭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안중근을 그의 시대 안에 가두어놓을 수는 없다. '무직'이며 '포수'인 안중근은 약육강식하는 인간세의 운명을 향해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고 있다. 안중근은 말하고 또 말한다. 안중근의 총은 그의 말과 다르지 않다." ('작가의 말' 중에서)

"안중근을 그의 시대 안에 가두어놓을 수 는 없다"고 말한 그는 "나에게 굉장히 중요한 문장"이라며 "안중근이 자기 시대에 이토를 자신의 적으로 생각해 쏴 죽이고 그 시대의 사명을 다했다고 볼 수 없는 것이고 동양 평화의 명분은 지금도 살아있는 것"이라고 했다.

"초야에서 뒹구는 한 글쟁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안중근 시대의 동양과 비교하면 지금의 동양은 더욱 절망적이죠. 중국은 세계 최강대국으로 미국과 쌍벽을 이루고 있고 북한은 핵으로 무장하고...안중근 시대보다 더 어려운 동양의 평화가 위기에 처한 모습을 보며 안중근 의사를 그 시대에 가둬놓고 그 시대 문제로 국한된 것이라 생각할 수 없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