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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대 자포리자 원전 주민들…"폭발로 모두 죽을까 겁에 질려"

등록 2022.08.10 11:47:27수정 2022.08.10 13: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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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주변 전투 가열되면서 방사능 유출 위험

점령 러 당국 통제강화하며 합병 주민투표 발표

"우크라 탈환 작전 기대 걸지만 다들 지쳐가는 중"

[서울=뉴시스] 4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최대 원자력발전소인 자포리자 원전 포격 모습. (사진=우크라이나 전략통신정보보안센터 텔레그램 갈무리) 2022.03.04.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4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최대 원자력발전소인 자포리자 원전 포격 모습. (사진=우크라이나 전략통신정보보안센터 텔레그램 갈무리) 2022.03.04.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유럽 최대의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우크라이나 남부 자포리자주 에네르호다르시는 원전 근로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곳이다. 자포리자 원전을 둘러싼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 사이의 전투가 빈발하면서 이 곳 주민들이 핵재앙을 우려해 창문을 테이프로 막는 등 겁에 질려 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러시아군이 5개월 넘게 점령하고 있는 자포리자 원전은 러시아군 수백명이 지키고 있다. 이들은 또 몇 km 떨어진 우크라이나군을 공격하고 있다.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가 최근 발생한 원전 공격이 상대방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가운데 아직까지 원자로가 직접 공격당한 적은 없으며 방사능 유출도 없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원전 근로자들이 지난 주말 원자로에 고전압을 공급하는 전력선이 끊어져 원자로 가동을 중단했고 방사능 유출 감시 모니터 3대가 파손됐다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7일 연설에서 "일어나선 안될 일이 정해져 있다. 방사능 오염이 바람을 타고 퍼지는 걸 막을 순 없다"고 했다.

에네르호다르는 전쟁 전 주민수가 5만3000명에 달했다. 에네르호다르라는 이름이 "에너지를 주는 곳"이라는 뜻이지만 식품 공급이 차단되고 우크라이나 통화인 흐리우냐 대신 러시아 루블이 유통되고 있다.

에네르호다르 주민 출신 자동차 세일즈맨인 안드리(36)는 점령군이 주민들에게 발전소 주변에 지뢰가 매장돼 있으며 집속탄 불발탄이 터질 수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그는 전화통화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발전소를 폭격하고 있어 창문을 스카치테이프로 고정해 방사능 폐기물 창고가 공격당해 나오는 방사능과 낙진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라고 당국이 말한다"고 전했다. "첫날이 가장 위험하니까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말한다. 모두가 발전소에서 일이 터질까봐 걱정한다"고 했다.

그는 발전소 주변에 포진한 러시아군이 드니프로 강 건너 니코폴에 주둔한 우크라이나군 부대를 포격하고 있다고 전했다. 밤마다 러시아군 방공포가 발전소 부지에서 발사하는 예광탄을 목격하고 있다고 했다.

에네르호다르 주민들과의 통화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점령 당국이 통제를 강화하면서 주민들이 겁을 먹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전화가 도청될 것을 우려한다. 러시아는 또 점차적으로 우크라이나 전화회사를 차단하고 러시아 전화회사가 진출하도록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주요 통신사의 심카드는 더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군 점령 직전 탈출한 드미트로 오를로우 에네르호다르 시장은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한다. 유럽 최대 원전의 근로자들이 교대근무를 할 수 있을 지 알지 못한 채 출근하고 있다. 또 집에 돌아올 때까지 가족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했다.

60대의 한 에네르호다르 여성 주민이 최근 에네르호다르에 대한 폭격이 심해졌다고 말했다. 트럭과 장갑차가 발전소로 정기적으로 오가는 걸 본다고도 했다. 다른 여성이 수퍼마켓의 상품 가격이 너무 비싸서 주민들이 마을 시장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러시아 루블화가 갈수록 더 많이 쓰이면서 우크라이나 흐리우냐는 없어지고 있다고도 했다.

사람들이 공개장소에서 말하는 것도 꺼린다고도 했다. 누구라도 점령당국에 밀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쟁 전 마을 의회 의원이던 아들이 우크라이나 점령지로 탈출하지 못해 숨어지낸다고 했다. 친구 집 차고와 지하실에서 지내면서 러시아 당국의 감시와 계속되는 폭격을 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지 주민 유리는 "대부분 사람들이 의견을 입밖에 내길 꺼린다. 말을 듣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벌일 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러시아 임명 당국자들과 비밀 요원들이 민간 복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주민들이 말실수를 할까봐 걱정한다고 덧붙였다.

오를로우 시장은 "갑자기 사람들이 사라지는 일도 있다. 말실수를 한 때문일 것이다"라면서 주민 수백명이 납치돼 구금된 상태며 몇 달 째 소식을 모르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지난 3월초 러시아군이 이 곳을 점령했을 때 안드리와 유리 등 현지 주민들이 시위를 벌이면서 러시아군을 향해 "우크라이나"와 "돌아가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시위는 지난 4월 2일 벌어진 것이 마지막이었다. 러시아군이 강제해산했고 이후 러시아가 친러 당국자들을 임명하면서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이 빠르게 없어졌다고 한다.

에네르호다르가 속한 자포리자주의 러시아 지명 책임자가 지난 8일 러시아와 합병을 위한 주민투표를 실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안드리는 경찰이 돌아다니면서 주민투표에 반대하는 전단과 포스터를 단속하고 있으며 배포자를 추적하고 있다고 전했다.

60대의 여성은 주변 지역에서 전투가 심해지면서 방사능 유출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발전소 근처에 사는 게 무섭다. 보관창고가 이미 파괴돼 방사능이 유출되고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우린 전혀 모른다. 원전이 폭발하면 우리 모두 죽을 것이라고 걱정들 한다"고 했다.

그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우크라이나 남부 탈환작전을 벌이는 우크라이나군이 에네르호다르를 해방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점령군이 대비를 강화한다고 걱정했다.

그는 "대부분 사람이 우크라이나 편인 것같은 느낌이다. 그렇지만 너무 오래 기다려 지쳐가고 있다"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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