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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인자부터 토끼 안 할라요"...'수궁가' 그 후 이야기 '귀토' 폭소

등록 2022.08.13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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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만에 돌아온 국립창극단 '귀토'…31일 개막

고선웅 연출 "속도감 살려…우리 시대 현실"

[서울=뉴시스]국립창극단 '귀토' 연습 사진. (왼쪽부터) '토자' 역의 김준수, '자라' 역의 유태평양. (사진=국립창극단 제공) 2022.08.1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국립창극단 '귀토' 연습 사진. (왼쪽부터) '토자' 역의 김준수, '자라' 역의 유태평양. (사진=국립창극단 제공) 2022.08.1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강진아 기자 = "하늘도 싫소 땅도 싫소. 난 인자부터 토끼 안 할라요."

하늘에서 날아온 독수리가 용궁에서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아비를 채가고, 땅에선 컹컹 짖는 사냥개와 사냥꾼 총에 어미를 잃고 천애고아가 된 토자. 망연자실한 채 다른 토끼들의 만류에도 홀연히 산중을 떠난다. 정처 없이 떠난 토자 앞엔 하늘도, 땅도 아닌 처음 보는 바다가 펼쳐진다.

지난 10일 서울 중구 국립창극단 연습실. 삼삼오오 목을 풀던 단원들 사이로 꽹과리와 북소리가 흥겹게 울려 퍼진다. 창극단 간판스타 김준수와 유태평양을 비롯해 50여명 단원들이 어깨춤을 살랑살랑 추고 장단을 맞추며 신명 나는 한마당이 벌어진다. 이어 객석 방향으로 큰절을 올리고 토끼와 자라가 티격태격하며 등장한다. 옆으로 물러난 단원들 틈에선 "아이고 재밌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한판 신나게 놀며 시작하는 창극 '귀토'다.

판소리 '수궁가'를 재창작한 '귀토'가 지난해 초연한지 1년 만에 돌아왔다. 부산, 고양을 거쳐 오는 31일부터 9월4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공연한다. 흔히 알고 있는 '수궁가'의 이야기가 끝나는 지점부터 시작되는 일종의 후일담이다. 자라에게 속아 수궁에 갔으나 꾀를 내 탈출한 토끼(토부)의 아들 토자가 주인공이다.

토자는 뭍에서 토끼가 겪는 8가지 고난과 재앙을 뜻하는 '삼재팔란(三災八難)'이 싫다며 자라와 함께 스스로 용궁으로 향한다. 하지만 고단한 생활을 피해 꿈꿨던 평화로운 삶은 이곳에도 없다는 걸 곧 깨닫는다. 자기 간을 취하려는 음흉한 눈빛을 마주하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돌아온다. 제목인 '귀토'는 '거북과 토끼' 의미와 함께 '땅으로 돌아간다'는 뜻도 있다.
[서울=뉴시스]국립창극단 '귀토' 연습 사진. (사진=국립창극단 제공) 2022.08.1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국립창극단 '귀토' 연습 사진. (사진=국립창극단 제공) 2022.08.1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특유의 재치와 해학 넘치는 연출로 이름난 고선웅이 극본과 연출을 맡아 그 실력을 어김없이 발휘한다. 연습을 마친 후 만난 고 연출은 "느낌이 딱 왔다. 감동적이었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연습을 지켜보며 크게 박수치고 웃던 그는 "제가 신나서 그런 것"이라며 "배우들이 지칠 수 있으니까 관객으로서 응원해준 것"이라고 미소 지었다.

이번 공연은 대본과 음악을 다듬어 초연보다 더 밀도 있다고 자신했다. 초연 당시 반년 넘게 걸려 대본을 쓴 그는 "'수궁가'의 놀라운 상상력에 무릎을 쳤다"며 "초연 땐 욕심이 많다 보니 군살도 있었는데, 이번에 냉정하게 걷어냈다. 뺄 건 빼고 속도감을 살렸다. 창극단 배우들은 신명과 동심을 갖고 있어서 연기할 때 귀엽고 사랑스럽다. 이번에 역할에 더 이입했고, 연주자도 더 깊이 있게 연주한다"고 말했다.

"'수궁가'를 바탕으로 하니까 호랑이가 나오는 '범 내려온다', 별주부가 토끼를 업고 용궁에 가는 '범피중류' 등 관객들이 기대하는 대목이 있어요. 그 부분을 넣을 때도 앞뒤를 바꾸거나 예상을 뒤엎어 재미를 주는 거죠. 토끼가 살아 돌아와서 자라에게 호통치는 '수궁가'의 끝부분이 이 작품의 첫 대목이 됐을 때 가장 짜릿했죠."

작창은 유수정 전 국립창극단 예술감독과 소리꾼 한승석이 맡았다. 한승석은 작곡·음악감독을 겸해 '수궁가' 주요 곡조를 살리면서 각색된 흐름에 맞게 소리를 짰다. 총 60여곡 중 원전에서 가져온 7~8개 곡을 제외한 나머지를 새로 썼고, 중모리·자진모리·엇모리·휘모리 등 다양한 장단으로 구성했다. 가야금, 거문고, 아쟁, 해금, 피리 등 15인조 연주단이 함께한다.
[서울=뉴시스]국립창극단 '귀토' 극본 및 연출을 맡은 고선웅. (사진=국립창극단 제공) 2022.08.1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국립창극단 '귀토' 극본 및 연출을 맡은 고선웅. (사진=국립창극단 제공) 2022.08.1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토자는 물론 용궁에 함께가는 토녀도 새로운 캐릭터다. 깡충깡충 뛰는 토끼들과 등짝이 뒤집히는 자라 그리고 능글맞은 남생이, 산중의 왕 호랑이, 반골 기질의 병마사 주꾸미와 미끌미끌한 형집행관 전기뱀장어 등 동물과 물고기들 특징을 잡아낸 몸짓도 웃음 포인트다.

"자라하고 토끼 두 마리만 나오면 재미가 없잖아요. 여성 캐릭터인 토녀를 새롭게 넣었고, 용궁에 갈 때도 셋이 움직여서 그림이 더 예쁘죠. 용왕도 토끼 간이 두 개가 생기니까 더 좋죠.(웃음) 동물 캐릭터는 자연스러운 연기로 표현되길 바랐어요. 무명옷의 의상으로 소리에 집중하도록 했고, 상상으로 충분히 채울 수 있는 토끼와 자라가 됐으면 했죠."

용궁에서 토자가 위기를 피하기 위해 추위, 화재, 사냥 등 삼재팔란을 하나씩 읊자, 물고기들이 너도나도 공감하는 대목은 하이라이트다. 고 연출은 "여덟 대목을 쓴다는 게 쉽지 않았다. 서사를 계속 이어가면 지루하니까 어머니 죽음과 연결되는, 용왕이 탑상을 탕탕 두드리는 대목으로 중간에 분위기를 전환한다. 춘향전 한 대목도 가져왔고, 이를 풀어내는 게 저한테 짜릿하면서도 숙제였다"고 말했다.

처용가부터 공무도하가, 오르페우스 신화 등 다양한 소재도 녹아있고, '대박'이나 말줄임 등 지금 시대 언어의 맛도 넣었다.
[서울=뉴시스]국립창극단 '귀토' 연습 사진. (사진=국립창극단 제공) 2022.08.1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국립창극단 '귀토' 연습 사진. (사진=국립창극단 제공) 2022.08.1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작품은 '바람을 피할 것이 아니라, 바람 속에서 흔들리며 춤추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시 돌아와 터전의 소중함을 깨닫고 성숙해지는 토자처럼, 꿈꾸는 이상향은 어디에도 없으며 유연하게 현실을 즐기는 법을 배우자는 것. 고 연출은 "'수궁가' 속 삼재팔란 대목이 유독 의미 있게 다가왔다"며 "원작의 이야기를 더 선명하게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우리 현실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일들이죠. 어떤 정권이든, 국민들의 삶은 팔란살이가 계속돼요. 물난리, 코로나, 집값 문제 등 지금의 우리 시대와 맞닿아있죠. '수궁가'로 익숙하면서 살짝 다른 이야기로,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에요. 웃음과 활력을 주는 '귀토'로 고단한 삶에 잠깐이라도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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