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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목숨 살린 전화 한 통…주요 역사 속 KT통신 있었다"

등록 2022.08.16 13: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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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한성전보총국 시초…전신은 1982년 한국전기통신공사

韓 첫 전화로 고종 황제 1897년 김구 선생 사형 집행 막아

4대 스포츠 이벤트 통신 서비스 담당…전세계와 소통

군사 요충지·남북 통신망 연결 등에서도 역할

[서울=뉴시스] KT는 원주 통신사료박물관에서 주요 역사 현장 속 통신의 역할에 대해 소개했다. 사진은 1890년대 후반 덕수궁에 설치됐던 덕률풍(전화). (사진=KT 제공) 2022.8.16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KT는 원주 통신사료박물관에서 주요 역사 현장 속 통신의 역할에 대해 소개했다. 사진은 1890년대 후반 덕수궁에 설치됐던 덕률풍(전화). (사진=KT 제공) 2022.8.16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심지혜 기자 = 백범 김구 선생의 사형을 막은 건 대한민국 최초의 전화였다.

명성황후 시해 이듬해인 1897년 원수를 갚겠다는 일념으로 일본군 장교를 살해한 김구 선생은 인천감옥에 투옥되고 사형 선고를 받는다. 그의 죄목이 '국모보수(國母報讐)'라는 것을 알게 된 고종이 즉시 어전회의를 열었고 사형을 중지하기로 했다. 이 사실은 1987년 7월 사형 집행 당일에 고종이 인천감리에게 전화를 걸면서 전해졌다.

서울-인천 간 전화 개통은 김구 선생의 사형 집행 사흘 전에 이뤄졌고 고종이 전화를 건 것은 사형 집행일이었다. 전화 개통이 며칠만 늦어졌다면 그의 목숨은 구할 수 없었을 것이다.

KT는 16일 원주 통신사료관에서 민영화 20주년을 기념해 대한민국의 주요 역사 현장 속 KT의 통신 역할에 대해 소개했다.

KT는 1885년 한성전보총국 개국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통신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고 자부한다. KT의 모태는 1982년 체신부의 통신사업 분리로 설립된 한국전기통신공사다. 지금의 KT는 2002년 한국통신의 민영화로 이뤄졌다. 이에 국가의 주요 행사 때마다 KT는 통신 인프라로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다.

허건 KT 팀장은 "1980년 초 통신 불모지에서 출범한 KT(당시 한국전기통신공사)는 2002년 민영화를 거치며 국가 ICT 발전에 기여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전화 첫 독립은 1970년 6월 2일 충청남도 금산에 위성통신지구국을 세우면서다. 이전에는 일본을 거쳐야만 했는데 이 지구국을 통해 태평양 통신위성에 접속해 태평얀 연안의 국가와 국제통신망을 구축할 수 있게 됐다.

이인학 정보통신연구소장은 "금산 위성통신지구국이 설립되면서 한국에서 대서양 상공의 위성을 통해 세계 각국으로 직접 통화가 가능해졌다"며 "정보통신의 독립"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무역도 활발해질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시스] 88서울올림픽 한국전기통신공사(現 KT) 뱃지. (사진=KT 제공) 2022.8.16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88서울올림픽 한국전기통신공사(現 KT) 뱃지. (사진=KT 제공) 2022.8.16 *재판매 및 DB 금지


굵직한 국제 스포츠행사 담당하며 韓 통신 위상 높여

국제 스포츠 행사를 치르는 것은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기회다. 원활한 대회 운영을 위해 경기 진행과 TV중계에 필요한 전산망, 통신망 등 ICT 기술이 필수다.

1981년 제24회 올림픽 개최지로 서울이 결정되면서 정부는 올림픽통신대책위원회를 발족해 경기장과 선수촌, 방송센터 등을 연결하는 통신망을 구축했다. 이같은 노력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 먼저 역할을 했다. 대회지원 통신운용회선 규모는 총 1만6755회선에 이르렀다.

[서울=뉴시스] 88올림픽 영업센터 민원창구. (사진=KT 제공) 2022.8.16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88올림픽 영업센터 민원창구. (사진=KT 제공) 2022.8.16 *재판매 및 DB 금지


86아시안게임을 성공리에 치른 KT의 기술력은 88서울 올림픽에서도 빛을 발했다. 또 당시에는 국내 통신기술 수준을 세계 각국에 알리고자 국산 전자 교환기(TDX)를 이용해 한강조정경기장에 3000회선 규모로 컨테이너 타입의 이동전화 시설을 공급하기도 했다.

올림픽 기간 총 3만9405 통신 회선을 공급하고, 각종 단말기 4만6854대를 운영했다. 국내 TV중계는 총 181회선을 운용, 3만여 시간을 이용했으며 국제 TV중계는 총 27회선을 운용해 9200시간으로 중계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다. 그 결과 당시 187억원의 국부를 창출하는 동시에 서울올림픽은 선진적인 한국의 ICT기술을 전세계에 알릴 수 있었다.

우리 대표팀 4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룬 2002년 월드컵에서도 KT는 통신총괄 주관기관으로서 통신 지원을 차질 없이 수행했다. 또 3G 서비스를 국내에 처음 선보인 때이기도 하다. 연인원 410억명이 시청한 TV 중계를 위해 각 경기장과 방송센터(IBC)의 광케이블 이원화, 위성 기반 방송중계망을 구축했다.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도 KT는 통신주관사업자였다. 경기장과 선수촌 등 주요 시설에 3G(WCDMA), 와이브로(Wibro), 와이파이(WiFi)가 모두 이용 가능하도록 네트워크 환경을 마련했다. 특히 한국에서 미국까지 상황을 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 0.3초를 줄이기 위해 총 60억원을 들여 경기장 설비를 개선하고 구리 케이블을 광케이블로 교체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세계 최초 5G 시범서비스를 진행했다. 이에 따라 KT는 우리나라에서 열린 1988년 서울 올림픽, 2002년 한일월드컵, 2011년 대구 육상선수권대회에 이어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4대 스포츠 이벤트의 통신 서비스를 책임진 통신사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서울=뉴시스] KT가 2005년 7월 문산지점과 북한의 개성전화국 광케이블을 서로 연결했다. (사진=KT 제공) 2022.8.16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KT가 2005년 7월 문산지점과 북한의 개성전화국 광케이블을 서로 연결했다. (사진=KT 제공) 2022.8.16 *재판매 및 DB 금지



군사 요충지에 KT…남북 협력 자리서도 역할

국토의 최동단인 독도와 최서단인 격렬비열도, 최북서단인 백령도 등 군사 주요 요충지에도 KT 통신 인프라가 있다. 특히 독도에는 통신사 중에서는 유일하게 1991년부터 유선전화를 시작으로 2005년 인공위성을 통한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19년에는 독도와 울릉도, 남쪽 마라도에 이어 북쪽 최극단인 비무장지대(DMZ) 내 유일한 마을인 대성동에 통신사 중 처음으로 5G 기지국을 설치했다.

KT 인프라는 남북 화해와 협력을 위한 자리에도 있었다. 2005년까지만 해도 남북 간 통신망은 1948년 소련군에 의해 인위적으로 끊어진 이후 60년간 연결되지 못한 상태였다. KT는 2004년부터 개성공단 사업의 일환으로 북한의 조선체신회사와 남북 간 통신망 연결을 위한 협상을 시도했다. 그러다 같은 해 12월 기본합의서를 체결하는 쾌거를 거뒀다. 이는 60년 분단 처음으로 직접 남북통신교류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KT는 본격적인 2005년 8∙15 화상상봉을 위해 전담반을 구성했다. 광화문 사옥 8층에 사무실과 직통전화를 개통하고 전송망 및 인터넷망 구축, 화상단말기 시험 등을 진행해 나갔다.

2005년 12월에는 남북한 직접 통신망을 개통하는 동시에 개성공단에 KT지사를 설립했다. 이로써 개성공단 입주 업체들의 통신 환경이 크게 개선됐을 뿐만 아니라, 남북 통신 협력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도 KT가 역할을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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