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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침공까지 긴박했던 4개월…美, 우크라·동맹국 설득 어떻게 실패했나

등록 2022.08.17 12:2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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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P, 지난해 10월 미 러의 우크라 침공 확신 판단부터

2월23일 밤 침공 시작까지의 미 정부 설득 노력 상세 공개

[뮌헨=AP/뉴시스] 지난 19일 독일 뮌헨에서 뮌헨안보회의가 열리는 가운데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연설하고 있다. 2022.02.21

[뮌헨=AP/뉴시스] 지난 19일 독일 뮌헨에서 뮌헨안보회의가 열리는 가운데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연설하고 있다. 2022.02.21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미국이 지난해 10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의도를 확인하는 결정적 정보를 입수한 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유럽 동맹국들을 상대로 러시아의 침공이 확정적임을 납득시키려했으나 실패했다고 미 워싱턴포스트(WP)가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10월의 화창한 날 아침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 미 정보 책임자들과 군 및 외교 책임자들이 모여 바이든 대통령과 긴급회의를 했다. 최근 입수한 인공위성 영상과 도청 및 인적 자원 정보 등을 분석한 특급비밀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려는 계획을 담은 정보들이었다.

이후 몇 달 동안 미 정부 당국자들이 푸틴이 10여만 병력과 탱크 미사일 등을 우크라이나 접경에 집결시키는 것을 우려스럽게 지켜봤다. 여름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관련 정보를 축적해온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이날 회의를 소집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는 자신의 생각이 바뀌었음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지난해 가을 이런 회의가 여러차례 열렸지만 이날 회의에서 처음 상세한 정보 사항들이 제시됐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마크 밀리 합참의장과 미 중앙정보국(CIA)를 비롯한 여러 정보기관 국장들이 참석했다.

러시아의 의도를 종합적으로 정리한 설리번의 요청에 따라 참석자들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푸틴의 작전 계획을 설명했고 우크라이나 접경 병력 집결 등이 대규모 공격이 임박했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미 정보당국은 러시아 정치 지도자들과 첩보기관 및 군대의 고위직부터 최전선 하위직까지 여러 정보 소스를 확보한 상태였다.

2014년 크름 반도 합병 때보다 훨씬 과격한 푸틴의 공격계획에 따르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대부분을 점령할 예정이었다.

대통령 책상 앞에 놓인 이젤에 지도를 펼친 밀리 합참의장이 러시아군의 배치와 각 부대가 공격할 우크라이나 지역을 설명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동쪽 지역에 대한 믿기 어려울 정도로 뻔뻔한 공격 계획이었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안보질서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소련에서 분리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부패했고 미국과 동맹국들은 러시아가 침공한 초기에 대응을 두고 의견이 갈렸다. 침공이 시작되면 우크라이나는 막대한 신무기가 있어야 방어할 수 있었다. 무기 지원이 적으면 러시아가 승리할 것이 뻔했다. 그러나 너무 많이 지원하면 나토가 직접 핵무장 러시아와 교전하게 될 위험이 있었다.

이날 회의에서는 미국의 신뢰도를 높여 동맹국들에게 비밀을 유출하지 않으면서도 진실을 설득하고 세계 최강의 군사동맹이 직접 총 한발도 발포하지 않으면서 불완전한 민주주의 국가가 러시아를 물리치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논의했다.

밀리 합참의장은 회의에서 러시아군의 배치를 설명한 뒤 참석자들이 푸틴의 의도를 종합했다. 밀리 의장이 "우리 모두 러시아가 여러 방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것으로 평가한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하면서 "러시아식 '충격과 공포' 작전"이라고 강조했다.

정보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북쪽에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좌우 양측을 공격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 체르니히우를 통과한 부대는 동쪽에서, 벨라루스에서 체르노빌 원전 지역과 습지를 통과한 부대는 서쪽에서 공격한다는 것이었다. 공격은 땅이 녹지 않아 탱크 이동이 쉬운 겨울에 시작될 것이었다. 러시아군은 키이우를 협공해 3, 4일만에 점령할 계획이었다. 러시아군 특수부대 '스페츠나츠'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암살하고 친러 괴뢰정부를 세울 예정이었다.

이와는 별도로 동부에서 침공하는 러시아군은 드네프르강까지 서진하고 크름반도에서 진입하는 러시아군은 남부 해안지대를 점령할 예정이었다. 이같은 러시아군의 초기 작전은 몇 주가 걸릴 것으로 작전계획에 담겨 있었다.

이후 잠시 쉬면서 부대를 재편성하고 재무장한 뒤 몰도바에서 벨라루스 서부로 연결하는 북부-남부 선까지 진격함으로써 푸틴 표현대로 러시아 공포증에 사로잡힌 골수 네오나치 주민이 다수인 서부 지역에 명목상의 우크라이나 국가만 남겨 두는 계획이었다.

에이브릴 헤인즈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뒤에 당시 미국이 "매우 상세한" 러시아의 비밀 작전 계획을 입수했지만 러시아가 이를 계속 부인했다고 밝혔다. 작전계획에는 러시아군의 주둔 지역과 무기 배치 지역, 작전 전략은 물론 푸틴이 "팬데믹 대응 등 다른 시급한 사안들 예산을 줄이고 이례적으로 큰 폭으로 비상 군사작전 및 예비병력 구축 예산을 증액"했다는 점도 포함돼 있었다. 지난해 4월 푸틴이 대규모로 우크라이나 접경에 군대를 집결시켜 우크라이나를 위협하면서도 공격하지 않았던 겁주기 훈련과는 차원이 달랐다.

회의 참석자 일부가 푸틴의 야망이 어디까지일 지에 대해 끝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한 참석자는 "합리적 국가가 벌일 수 있는 범위를 넘는다"고 지적했다. 면적이 60만 평방km가 넘고 인구가 4500만에 달하는 우크라이나에는 반러 정서가 강한 사람들이 많기에 푸틴이 우크라이나 정부를 전복시키더라도 반란이 발생할 위험이 컸다. 그러나 러시아는 계속해서 전면 공격 준비를 가속화하고 있었다. 탄약, 식량 등 핵심 보급물자들을 러시아 주둔지에 비축하고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참석자들에게 물었다. 푸틴이 이번에는 정말 침공할 것으로 보는가?

모두가 맞다고 답했다. 이번에는 진짜였다. 이후에도 미 정부는 몇 달 동안 푸틴이 침공을 최종 결정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10월 회의 참석자들은 이미 푸틴이 방아쇠를 당길 것으로 확신했다.

주러대사를 지내 푸틴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윌리엄 번스 CIA 국장이 푸틴이 우크라이나에 꽂혀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우크라이나 지배는 러시아 정체성과 권위와 동의어라는 것이다. 전쟁 계획의 상세 내용과 우크라이나 합병에 대한 푸틴의 확신을 감안할 때 침공할 것이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정보에는 푸틴이 해왔던 말들도 포함돼 있었다. 3개월 전 푸틴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역사적 일체성"이라는 7000단어의 글을 발표했다. 그는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이 혈연관계의 "한 민족"이며 러시아는 서방의 음모로 영토를 "강탈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글을 발표하기 몇 주 전 바이든과 푸틴이 6월16일 만나 회담이 "건설적"이라고 발표했었다. 당시 우크라이나가 우려됐지만 백악관 당국자들은 잘 처리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뒤에 푸틴이 발표한 글이 "크게 주목을 끌었다"고 설리번 보좌관이 밝혔다. 그때부터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푸틴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전 경고용으로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6000만달러 규모의 무기 지원을 승인했다.

여름 말미에 푸틴을 오래도록 관찰해온 분석가들이 푸틴이 기회의 창이 닫히고 있다는 생각을 굳히는 것으로 평가했다.

비록 나토나 유럽연합(EU) 회원국은 아니지만 우크라이나는 줄기차게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서구화하고 있었다. 이같은 상황이 푸틴이 제국을 상실했다는 분노를 키웠다.

참석자들은 69살인 푸틴이 유럽대륙에서 러시아의 지배적 위상을 굳힌 위대한 지도자로서 유산을 굳힐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평가했다.

분석가들은 푸틴이 서방의 반발이 실제로는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철수 문제가 급급해 새로운 전쟁을 피하려할 것이며 사실상 유럽 지도자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물러날 예정이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재선 선거에서 고전하고 영국은 브렉시트로 인한 경제난에 시달릴 것이었다. 유럽 국가들 다수가 러시아의 석유와 천연가스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푸틴은 서방 동맹에 틈새를 박아넣을 수 있다고 계산했다. 수천억 달러를 현찰로 비축해 러시아 경제가 제재를 견딜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이날 회의 뒤 바이든 대통령은 두가지 조치를 취했다. 우선 푸틴을 막기 위해 "푸틴을 직접 만나 '침공하면 대가가 클 것'을 직접 경고하도록 하는 일이었다. 번스 CIA국장이 이 일을 담당했다. 둘째는 동맹국들에 미국의 정보를 설명해 미국의 러시아 제재 주도에 적극 동참하도록 하고 나토 방위태세와 우크라이나 지원을 강화하는 일이었다. 헤인즈 DNI 국장이 나토 본부를 방문해 이 일을 주도했다.

몇 달 뒤까지 밀리 합참의장은 10월 회의에서 논의된 미국의 이익과 전략 목표가 담긴 다음과 같은 문답지를 서류가방에 넣어 다녔다.

과제: 핵능력이 막강한 국가를 상대로 어떻게 하면 3차 세계대전을 벌이지 않고도 규칙에 입각한 국제질서를 유지할 수 있나?

1번: 미군과 나토군이 러시아와 직접 충돌하지 않는다. 2번: 우크라이나 영토 내로 전장을 제한한다. 3번: 나토 단결을 강화한다. 4번: 우크라이나를 붇돋우고 싸울 수단을 제공한다.

백악관 보좌관들이 우크라이나가 맞서 싸울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미국, 영국, 기타 나토 회원국들이 우크라이나군을 몇 년 동안 훈련시켜 보다 조직화된 전문 군대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훈련은 러시아가 점령한 뒤 내부 반란을 일으키는 것과 러시아의 전면 침공을 차단하는 것 모두에 같은 비중을 두고 실시됐다. 서방이 지원한 무기는 기본적으로 화력이 약한 방어무기였다. 서방이 도발하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보좌관들은 젊은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냉혈한 푸틴에게는 맞상대가 되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다.

우크라이나가 유리하지 않았다. 러시아가 병력도, 탱크도, 대포도, 전투기도, 유도 미사일도 많았고 많은 민간인을 희생시켜가며 약한 상대를 힘으로 굴복시킨 전력도 많았다.

러시아가 예상한 만큼 빠르진 않더라도 우크라이나 정부가 결국은 붕괴할 것으로 봤다.

번스 국장이 크렘린궁 사무실에서 팬데믹을 피해 소치로 가 있는 푸틴과 통화했다. 푸틴은 늘 그래왔듯이 나토의 팽창이 러시아 안보를 위협한다고 비난하고 우크라이나 정부가 정당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푸틴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크게 무시했다"고 번스 국장이 말했다.

번스 국장이 다음과 같이 강하게 말했다. 미국이 당신 생각을 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큰 대가를 치를 것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이 큰 대가를 치를 것임을 확언하는 바이든 친서를 가져왔다고 했다.

푸틴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임을 밝히는 정보를 부정하지 않았다.

번스 국장은 러시아 안보위원회 의장 니콜라이 파트루쉐프도 만났다. 그는 번스 국장이 푸틴과 바이든 간 차기 회담 문제를 논의하려고 왔다고 생각했다가 번스 국장이 우크라이나 문제를 경고하자 크게 놀랐다.

그는 푸틴이 한 말을 거의 똑같이 되풀이했다.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번스 국장은 푸틴과 소수 측근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도록 한 것으로 판단했다. 푸틴이 침공을 최종 결정하진 않았으나 우크라이나에 대한 생각이 강경해졌고 위험을 감수하려는 생각이 커졌으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번스 국장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우려가 줄기는 커녕 더 커졌다"고 보고했다.

블링컨 국무장관은 당시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계획을 상세히 설명했다. 뒤에 "말이 잘 안 통했다"고 했다.

전에도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는 블링컨 장관이 솔직하게 말하면 통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당신 나라가 침략 당할 것이라고 납득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는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경청하면서도 반신반의했다. 보좌관들에게 알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과거에도 러시아가 공갈친 적이 여러번"이라고 했다. 러시아 침공설이 우크라이나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을 우려했다.

미국은 설득하고 상대는 반신반의하는 상황이 몇 달 동안 이어졌다.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첩보를 부정하지 못하면서도 추측일 뿐이라고 했다.

젤렌스키는 뒤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몇 번이고 '곧 침공당할 것'이라고 말하는데, 좋다 그럼 전투기나 대공무기를 줄건가라고 물으면 "나토 회원국이 아니라서 안된다"고 한다. 그런데 왜 그런 말을 하나?"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은 침공 5일 전까지 미국이 세부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 정보당국은 우크라이나 정보기관 안에 러시아 첩자들이 많아 세부정보를 제공하면 정보원이 노출될 것을 꺼렸다. 또 러시아군 배치 상세 정보를 제공하면 우크라이나군이 선제 공격할 우려도 있었다.

미 정부는 전쟁이 시작된 뒤 정책을 바꿔 우크라이나내 러시아군 이동 정보 전부를 제공했다.

지난해 10월 말 로마 주요20개국(G20) 회의장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영국, 프랑스, 독일에게 미국의 정보를 설명했다. 11월 중순 헤인즈 국장이 벨기에로 가 나토 북대서양위원회에 참석했다. 30개 회원국이 기본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당시 많은 참석자들이 푸틴이 대규모 침공을 준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회의적이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의도를 가장 잘 알지 않겠느냐는 의견들이었다. 영국과 발트해 국가들만 경청했다. 프랑스와 독일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거론했다. 또 아프가니스탄 철수 실패도 거론했다. 미국의 정보가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유럽국들의 의견이 세 갈래로 나뉘었다.

하나는 러시아가 "강압 외교"를 하고 있지만 침공은 미친 짓이라는 의견이었다.

동유럽 및 남동유럽 회원국들은 푸틴이 뭔가 일을 벌이긴 하겠지만 제한적일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2014년 크름반도 합병과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영국과 발트해 국가들은 전면 침공 가능성을 진심으로 믿었다.

미국은 보다 확실한 정보 제공을 요청받았지만 제공하지 않았다. 이는 비밀 누설을 우려한 조치였다. 영국과는 정보 공유폭이 컸지만 도청 자료와 인적 자료는 공유하지 않았다. 미국이 실제보다 상황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오래도록 의심해온 독일과 프랑스가 분통을 터트렸다.

일부 국가에서 자체 정보판단을 제공했다. 미국은 나토 회원국들과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오스틴 국방장관, 블링컨 국무장관, 밀리 합참의장이 동맹국 파트너들에 전화로 설득을 계속했다. 결국 동맹국들이 납득하기 시작했다.

마크롱과 메르켈은 푸틴을 오래 상대해 본 경험을 바탕으로 미친 짓을 벌이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G20에서 바이든을 만난 뒤 두 사람이 EU-러시아 정상회담을 열었다.

몇 달 뒤 미국이 새로운 정보를 제공했음에도 프랑스와 독일이 아직 외교를 통한 해결의 여지가 있다고 강변했다. 미국과 영국은 큰 기대를 걸지 않으면서도 두 나라가 성과를 낼 수 있으면 좋다고 생각했다.

12월7일 푸틴과 바이든이 화상 회담을 가졌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접경에 군대를 집결시키는 건 나토의 확장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바이든이 우크라이나가 조만간 나토에 가입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면서 유럽에 배치된 미국 무기에 대한 러시아의 우려를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 타협의 여지가 있어 보였다.

얼마 뒤 블링컨 장관이 나토 회원국들을 순방해 설득 노력을 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여전히 회의적 입장이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등은 침공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침공 전날 밤까지는 "이처럼 대규모 침공을 당할 것으로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미국만이 미사일 공격을 당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다른 모든 나라들이 이 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우리에게는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동부 지역 분쟁에 그칠 것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같은 생각이었다.

1월초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이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교차관을 만났다. 랴브코프 차관은 12월 중순 러시아가 제시한 입장을 반복했다. 나토가 1997년 이후 가입한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발트해 국가들과의 합동 훈련을 중단한다는 것을 조약으로 보장하라는 내용이었다.

셔먼 장관이 러시아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러시아 접경에 배치된 나토 무기의 재배치 등 여러 안보 분야에서 신뢰 구축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랴브코프가 실망감을 드러냈다. 백악관은 셔먼과 랴브코프 회담을 러시아가 문제를 외교로 해결할 의도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시금석으로 삼고 있었다. 러시아는 진지한 외교적 해결 의도가 없었다.

미국이 나토 방어 태세를 강화했다. 러시아와 유럽국들에게 진심임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거듭 우크라이나 파병 가능성을 부정했지만 미 국방부는 폴란드 무기 비축을 늘렸고 그리스에서 헬기 대대를 이동시켰다. 발트해 국가에 173 공정부대를 배치했고 이탈리아와 루마니아 동부, 헝가리와 불가리아에도 파병했다.

몇 달 만에 유럽주둔 미군이 7만4000에서 10만으로 늘었다. 기타 전투기 편대와 전투함 공중통제기 및 정찰기 활동도 크게 늘렸다. 우크라이나군과 유럽주둔 미군 사령부와 전용 통신선을 연결했다. 다만 특급비밀은 직접 만나서 전달했다.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도 늘렸다. 2억달러 규모의 추가 무기 지원을 승인했지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전면 침공에 대비하는 것으로는 크게 부족하다고 불평했다. 미국은 전쟁에 직접 개입하길 꺼렸다. 그 때문에 어떤 무기를 어떻게 지원하느냐를 두고 신중한 판단을 해야 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전쟁 발발 뒤 미국의 지원에 대해 크게 감사한다. 그러나 쿨레바 외무장관은 미국의 개입 회피 정책이 "전쟁을 막지 못한 이유"라고 말했다.

미 정부는 지난해말 민감정보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미 정보당국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군이 먼저 공격했다는 음모를 꾸며 자국 군대를 공격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를 공개함으로써 푸틴이 침공의 구실을 만드는 걸 막아야 했다.

우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접경에 집결한 군대의 규모부터 공개했다. 12월초 인공위성 사진과 러시아군 주둔지 지도와 미 정보당국의 판단을 공개했다. 100개 대대전술전투단 17만5000명이 집결했고 탱크와 대포 등 장비도 배치된 것을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설리번 보좌관이 러시아의 선전을 반박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선별하는 팀을 구성했고 여기서 공개 추천된 정보에 대해 정보당국이 공개를 판단했다.

1월말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이 이례적으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괴뢰정부를 세울 계획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2월초 미 정부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을 위장하는 장면을 촬영하고 있음을 공개했다. 이른바 가짜 깃발 작전이었다.

미국의 정보 공개 캠페인이 효과를 냈다. 세계가 러시아의 군대 집결을 주목했다. 푸틴이 2014년 크름반도를 합병할 당시 러시아군 파병을 부정했으나 현지에 군장 표시가 없는 녹색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등장한 것이 널리 알려져 푸틴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미국의 정보 공개로 푸틴이 허위 정보작전을 할 여지가 줄었다.

번스 국장이 1월12일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났다. 상세한 정보를 제시하면서 러시아군이 키이우 인근 호스토멜 공항부터 장악해 수도 공격 기지로 삼을 것이라고 밝혔다. 젤렌스키가 자신과 가족들이 위험하느냐고 물었고 번스 국장은 경호를 강화하도록 권했다.

젤렌스키에 대한 위협이 커지고 있었다. 러시아 암살단이 키이우에 침투해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정부 이동을 거부했다. 그로 인해 패닉이 발생하면 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뒤에 "러시아가 침공하기도 전에 혼란이 발생하면 러시아가 우리를 집어 삼킬 것이다. 혼란 속에서 사람들이 도주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자체 정보기관의 판단도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으로 변했다. 키릴로 부다노우 우크라이나 군정보 책임자는 3개월 전에 문서보관소를 옮기고 탄약과 연료를 비축했다고 했다.

블링컨 장관이 1월 19일 키이우를 방문해 젤렌스키 대통령과 쿨레바 외무장관에게 재차 경고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총동원령이 혼란을 촉발할 것이라고 거부했다.

블링컨 장관은 뒤에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크라이나에 두가지를 말했다. 원하는 것은 뭐든 지원하겠다. 스스로 정부 지속성을 유지할 방안을 마련하도록 권고한다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정부를 키이우에서 우크라이나 다른 지역이난 폴란드로 이전하는 것을 준비하라는 뜻이었다.

젤렌스키가 키이우를 사수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일부 서방 당국자들이 자신이 도주하도록 해 러시아가 괴뢰정부를 수립하도록 하면 나토 회원국과 협상을 통한 해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의심했다. 그는 "나와 가족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도 많지만 내게 전화하는 많은 사람들이 우크라이나가 버티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1월19일 바이든 대통령이 러시아가 침공할 것 같다고 밝혔다. 물러서기엔 너무 멀리왔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동맹과 협력국들이 큰 대가를 치르도록 할 준비가 돼 있다"며 침공은 러시아에 "재앙"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이 한 말중 가장 강력한 어조였다. 그러나 물타기도 있었다. 전면 침공이 아닌 "소규모 침공"이면 강력한 대응이 없을 수도 있다고 말이다. 바이든 발언은 미 정부는 물론 나토 내부에서도 러시아의 침공에 대한 대응을 두고 균열이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자 젤렌스키와 보좌관들이 신랄히 비판했다. "강대국들에게 소규모 침공과 소국은 없다는 걸 상기시키고 싶다. 소규모 사상자와 사상자들 가족의 작은 슬픔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강대국의 대통령으로서 이 말을 한다"고 했다.

그러자 미 당국자들이 미 대통령의 눈을 찌르고 있다고 화를 냈다. 한 당국자가 "그를 도우려 애쓰고 있는데 젤렌스키는 자신의 정치적 지위만 생각한다"고 했다. 이 글을 작성한 한 보좌관은 유머러스하게 넘기려고 한 표현이라고 했다.

1월21일 제네바 날씨는 매우 춥고 바람이 강했다. 블링컨 장관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양국 사이의 격랑을 진정시킬 수 있다고 말을 건넸다. 두 사람은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면서 이란 핵문제 등 많은 의제를 논의했다. 블링컨 장관이 재차 우크라이나 관련 미국 입장을 밝혔다. 푸틴의 안보 우려가 근거가 있다면 미국이 이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말이다. 다만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서방이 신속하고 가혹하게 제재를 가해 러시아를 고립시키고 경제에 타격을 가할 것이며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군사지원을 할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 군인 한 명이라고, 러시아군 미사일 한 발이라도 나토 지역을 건드리면 미국이 방어에 나설 것이라고도 했다.

라브로프 장관의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1시간반 동안의 회담 뒤 더 이상 할 얘기가 남지 않았다. 블링컨 장관이 라브로프 장관과 단독회담을 갖자고 제의했다. 두 사람이 작은 회의실로 옮기고 문을 닫은 채 회담했다. 18년 동안 외교장관으로 재임해온 라브로프는 미러 관계에 대해 종종 솔직하고 현실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블링컨이 물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거요?" 진짜 나토의 러시아 안보 위협이 문제인거요? 아니면 푸틴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조국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요?" 라브로프는 대답을 하지않고 회의장을 걸어나갔다. 이것이 두 사람이 만난 마지막이었다.

2월12일 바이든이 푸틴과 다시 통화했다. "미국이 외교 노력을 다하겠지만 다른 시나리오에도 완전히 준비돼 있다"고 했다.

하루전 벤 월러스 영국 국방장관이 모스크바를 방문해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을 만났다. 월러스 장관이 협상을 통해 러시아 안보 우려를 해소할 여지가 있는지를 물었다. 쇼이구 장관이 더이상 관심없다고 했다. 월러스 장관이 "어머니가 우크라이나인이다. 침공하면 우크라이나인들이 강력하게 저항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제재 가능성을 말하자 쇼이구가 "우린 누구보다 잘 견딜 수 있다. 그렇지만 누구도 고통을 당하길 원치 않는다"고 했다. 쇼이구는 우크라이나의 서구화를 인내할 수 없다고 했다.

월러스 장관이 떠나려하자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생각이 없다"고 눈을 바로 보며 말했다.

일주일 뒤인 2월18일 바이든대통령이 나토 회원국 정상들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의 최종 판단을 전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이 순간부터 푸틴이 침공하기로 했다고 확신한다.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가 여전히 위기를 가라앉힐 기회를 모색했다. 2월20일 마크롱 대통령이 푸틴에게 전화를 걸어 제네바에서 바이든과 회담할 것을 요구했다. 이 통화 뒤 마크롱은 푸틴이 협상을 통한 해결을 원한다고 확신했다. 푸틴은 "고려해볼 가치가 있는 제안"이라고 답한 것으로 뒤에 밝혀졌다.

그러나 마크롱의 거듭된 압박에도 푸틴은 약속을 하지 않았으며 다른 급한 문제들이 있는 것처럼 굴었다. "지금 아이스하키 경기장에 있다. 답을 하기전에 보좌관들에게 물어보겠다"고 하고 "대통령 각하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마크롱이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생각에 웃음으로 기쁨을 표시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다음날 푸틴이 공식적으로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 분리 반군 공화국 두 곳을 승인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분할하려는 생각임이 분명히 한 것이었다.

영국과 프랑스가 함께 마지막 외교적 노력을 펴기 위해 뮌헨에서 열린 연례 안보회의에 참석한 각국 지도자들을 모았다. 젤렌스키도 참석했다. 미국이 젤렌스키가 우크라이나를 비우면 러시아가 공격의 호기로 생각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지도자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것이라고 젤렌스키가 생각했다면 참석했겠나고 반문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연설에서 우크라이나가 이미 러시아와 전쟁중이라고 강조했다. 2014년부터 동부 반군들과 전투중임을 지적한 것이었다. 그는 우크라이나를 진정으로 돕고 싶다면 EU와 나토의 회원국으로 받아달라고 했다.

미국과 영국을 제외한 나라의 당국자들은 여전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프랑스의 안보 전문가 에이스부르는 "유럽인들은 푸틴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미국인들은 푸틴의 머릿 속보다는 자료에 근거해 판단하면서 그게 말이 되는지는 신경도 안썼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같은 혼란이 발생한 이유를 추정할 수 있다. 미 정보당국은 러시아의 전쟁 계획이 현장 지휘관들까지 전달되지 않았음을 봤다. 장교들이 명령을 받지 않고 있었다. 접경에 배치된 군인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갈 지를 몰랐다. 러시아군 내부 통신이 거의 없는 것에 미 정부 분석가들이 골치를 썩기도 했다. 러시아군의 나사가 풀린 것이라면 작전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일부 있었지만 소수에 불과했다.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이 2월 18일~20일 미국을 방문한 뒤 생각이 달라졌다. 러시아 A 공항에 수송기 5대가 공수부대를 언제라도 우크라이나 B 지점으로 투하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식의 구체적 정보가 제시됐다.

러시아의 키이우 공격 작전을 두고 일부 서방 당국자들은 러시아의 군사 능력을 과대평가했다고 말한다. 한 영국 당국자는 "우리는 러시아도 우리처럼 침공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2월23일 초저녁 백악관이 긴급 정보를 받았다. 침공이 시작됐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내용이었다. 군대가 이동하기 시작했고 러시아가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 보좌관들이 긴급히 상황실에 모였다.  

설리번 보좌관이 예르막 젤렌스키 비서실장과 통화했다. 불안감이 큰 것처럼 보였지만 통제력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예르막이 설리번에게 기다리라고 했고 젤렌스키 대통령이 직접 바이든과 통화하도록 해달라고 했다. 설리번이 대통령 거주 공간으로 전화를 연결해 바이든 대통령이 통화할 수 있도록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최대한 많은 나라 지도자들과 접촉해줄 것을 요청했다. 푸틴에게 직접 "전쟁을 끝내라"고 말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또 "당장 모든 정보를 달라. 우리는 싸울 것이다. 지킬 것이고 버틸 수 있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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