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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컬리 '특례상장', 개미들의 무덤 안된다 [데스크칼럼]

등록 2022.08.19 11:20:11수정 2022.08.21 13: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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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의 사진으로 보는 마켓컬리 상장 예비심사에 대한 '소고'

【서울=뉴시스】원종태 기자 = 이제부터 5장의 사진으로 하나의 사안을 보려 한다. 상장 예비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마켓컬리와 관련된 사진들이다.

(사진=한국거래소)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한국거래소) *재판매 및 DB 금지

첫번째 사진은 2016년 12월 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홍보관에서 신라젠 코스닥 상장을 기념해  5명이 포즈를 취했다. 

신라젠 문은상 당시 대표가 한 가운데 꽃다발을 들고 있고, 양옆으로 당시 김재준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위원회 위원장 등 신라젠 상장 관계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신라젠은 원래 코스닥 상장 자체가 힘든 기업이었다.

하지만 2005년 3월 도입된 기술 특례상장 제도 덕분에 상장이 가능했다. 기술 특례상장은 기술평가기관 2곳이 상장의 급소를 쥐고 있다. 2곳 중 1곳에서 기술평가 'BBB등급' 이상을, 나머지 1곳에서 'A등급' 이상을 받으면 상장 허용 조건을 갖춘다. 

신라젠은 상장 당시 영업이익은 커녕 눈에 띄는 매출조차 없었는데 기술 특례상장 조건에 부합한다고 평가 받으며 상장하게 됐다. 

정부는 이 기술 특례상장만으로는 부족했는지 2017년 특례상장 제도를 더 만든다. '성장성 특례상장'과 '테슬라 특례상장'이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2021년 4월에는 '유니콘 특례상장'까지 도입했다. 이렇게 다양한 특례상장 제도가 있으니 기업 덩치에 맞게 알아서 상장에 잘 활용하라고 길을 터준 것이다. 

그렇다면 특례상장 이후 신라젠은 어떻게 됐을까?

상장한 지 3년도 채 안돼 미국 데이터모니터링위원회의 임상 중단 권고 사실이 알려지며 2019년 8월 주가가 폭락했다. 2020년 5월에는 문은상 대표의 배임 혐의가 드러나며 주식 거래마저 정지 당했다. 문 대표는 기소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한때 특례상장 통과로 촉망 받았지만 신라젠은 끝내 소액주주들의 무덤이 됐다. 신라젠 때문에 17만명에 달하는 소액주주들은 가슴이 타 들어갔다.


(사진=마켓컬리)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마켓컬리) *재판매 및 DB 금지

두번째 사진은 마켓컬리 사업 초기 시절인 2017년 12월 13일 사진이다. 당시 마켓컬리는 새벽배송 제3자 물류대행 서비스인 '컬리프레시솔루션' 사업을 본격화 한다고 보도자료를 뿌렸는데 이때 위 사진을 썼다.

이 사진은 번듯한 상품 진열대도 아니고, 물류창고에서 쓰는 파렛트를 겹겹이 쌓아 올린 뒤 그 위에 포장된 식품과 빵 등을 올려놓고 찍었다. 여기에  부엉이 로고가 그려진 마켓컬리 전용 트럭을 배치해 마켓컬리 물류 사업의 특징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이 사진을 픽한 이유는 마켓컬리도 신라젠처럼 특례상장을 노리고 있어서다. 그것도 유니콘 특례상장이다.  마켓컬리는 지난해 매출 1조5579억원을 올렸는데 영업손실이 무려 2138억원에 달한다.

영업손실 비율이 매출의 13.7%다.  성장성이 좋으면 적자가 무슨 대수냐고 할 수 있지만 사업은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이 수준의 적자 기업은 상장을 허용해선 안된다. 나중에 적자폭을 크게 줄이거나 흑자가 나면 얼마든지 다시 상장을 허용해도 된다. 마켓컬리가 신라젠처럼 무슨 엄청난(?) 신기술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유니콘 특례상장은 '규모'를 갖추면 표면적인 상장 허들은 더 낮다.

수익구조가 상대적으로 부실해도 시가총액 '5000억원 이상'으로 전문평가기관 한 곳에서 'A등급'을 받으면 특례상장  요건을 갖춘다.

마켓컬리가 과연 유니콘 특례상장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판단은 전적으로 한국거래소와 전문평가기관의 몫이다.

그래도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 마켓컬리 같은 대규모 적자 기업을 함부로 상장해줬다가는 신라젠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마켓컬리 상장 이후 여기에 투자한 소액주주들이 흘릴 피눈물은 신라젠과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유니콘 특례상장은 그래서 한층 더 조심해야 한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로 살벌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벌어졌던 장면을 기억하는가?  사람들은 그 이전에는 왜 신용등급이 낮은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많은 대출을 해줬느냐고 지적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채담보부채권(CDO)를 거론하며 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이야 말로 정말 안전하다고 홍보했다. 대출이 안되는 사람들도 마음대로 돈을 빌려 집을 살 수 있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제도.  이게 바로 선진 자본시장의 백미라고 했다.

하지만 부실은 그 '방식'보다 그 '규모' 때문에 치명적이다.  마켓컬리의 기업 규모는 신라젠과 비교가 안된다.  따라서 상장될 수 없는 것을 상장해줬다가 감당해야 할 부담도 마켓컬리가 훨씬 더 크다.  이것이 기술 특례상장과 유니콘 특례상장의 다른 점이다. 파괴력 자체가 게임이 안된다.

'유니콘 특례상장'이라는 명분으로 잠재적 리스크를 짊어질 경우 '해악'과 '이득' 중 뭐가 더 클까.

(사진=예스24)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예스24) *재판매 및 DB 금지

세번째 사진은 '마켓컬리 인사이트'라는 책 표지 사진이다. 김슬아 대표는 2020년 5월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유명한 서울대 김난도 교수와 이 책을  펴냈다.

이 사진에는 마켓컬리의 상징인 보라색 배경으로 김 교수와 김 대표가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 책은 김 교수가 묻고, 김 대표가 답하는 대담 형식이 핵심이다. 사실상 김 대표의 생각과 입장을 소비자학의 대가인 김 교수가  쉽게 풀어냈다고 보면 된다.  마켓컬리와는 아무 연관도 없는 김 교수의 '객관성'을 빌려  마켓컬리의 성공 DNA를 보여주려고 한 것 같다.

이런 의도에도 불구, 나는 이 책의 특정 페이지를 읽고 눈을 의심했다.  김 대표가 김 교수와 대담을 나눈 내용들이 불과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내용이 있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단적으로 이 책에서 김 대표는 김 교수에게 "(마켓컬리는) 배송 지역을 수도권 너머로 확장할 계획은 없다"고 단언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인구밀도를 갖는 서울 수도권을 장악하려면 꽤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김 대표의 이 말은  1년이 채 안돼 '거짓말'로 바뀐다.

김 대표는 마켓컬리가 서울 수도권에만 집중하겠다고 책에서 강조한 내용을 번복하고 2021년 5월  충청권 진출을 선언한 것이다. 이 뿐 아니다. 이어 그해 7월에는 대구에, 12월에는 부산과 울산에 진출한다.

김 대표는 책에서 "회사를 키우기보다 고객에게 사랑 받는 브랜드가 되고 싶다"고도 했다.  그는 " 초대형 유통사보다는 나이키 같은 브랜드를 벤치마킹 하려 노력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말도 지금 과연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매출 1조원을 훌쩍 넘는 마켓컬리는 이미  초대형 유통사처럼 변한 지 오래다.  마켓컬리는  '컬리 온리(마켓컬리에서만 살 수 있는 제품들을 뜻하는 용어)'가 아니라 대형마트의 온라인 사업 부문처럼 바뀌었다는 얘기가 들린다.

실제 마켓컬리는 신라면이나 바나나맛우유 같은 가공식품 전반으로  판매 영역을 넓히고 있다. 초대형 유통업체들이 파는 것은 모조리 팔려고 달려드는 모양새다.

무엇이 김 대표를 1년도 안되는 시간 동안 이렇게 바꿔 놓았을까.

코로나19로 엄청난 사업 기회를 봤을 수도 있고,  2020년 5월 또 다시 2000억원 시리즈E 투자를 유치하며 생각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김 대표 스스로가 서울 수도권만으로는 사업에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  시장 파이를 키우지 않으면 안되는, 끝없는 성장을 위해 뭔가 계속 보여주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상황에 처했을 수도 있다. 멈추는  순간 쓰러지는 거대한 자전거처럼 마켓컬리는 움직이지 않는 것 자체가 두려울 수 있다.

그러나  1년도 채 안돼 뒤바꿀 생각들을 굳이 대학교수와 대담까지 나누며 왜 책으로 펴내려 했을까. 알다 가도 모를 일이다.

(사진=뉴시스)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뉴시스) *재판매 및 DB 금지

사실 김슬아 대표는  자신과 사업을 그럴듯한 스토리로 포장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내가 네번째로 픽한 사진은 이런 김 대표의 '포장 능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으로 2019년 9월 24일 마켓컬리 '올페이퍼 챌린지' 기자간담회 사진이다.

김슬아 대표는 당시 모든 포장재를 종이로 바꾸겠다며 올페이퍼 챌린지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국내 대기업들이 ESG 경영이라는 개념조차 못잡을 때였다.

김 대표는 "좋은 기업을  만들려면 당장은 괴롭더라도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며 이것을 '롱텀그리디(장기적 욕심, Longterm Greedy)'라고 표현했다.

마켓컬리가 모든 포장재를 종이로 바꾸는 획기적인 '올 페이퍼 챌린지'를 선언한 것도 김 대표의 롱텀그리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플라스틱 포장재가 난무하는 작금의 상황에서 마켓컬리는 종이 포장재를 3~4배나 더 많이 쓰는 한이 있더라도 올페이퍼 챌린지를 했다.  깨어있는 젊은 주부들에게 친환경 경영, ESG 경영을 누구보다 빨리 알린 것이 마켓컬리이고, 올페이퍼 챌린지는 그 상징이다.

하지만 계란 20알을 포장하는데 그토록 많은 종이 포장재를 2중 3중 쓰는 것이 과연 얼마나 친환경적인지 아무도 말하지 못한다. 그 많은 포장재들을 쓰면서 그것이 단지 종이이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 '보여주기식' 친환경 아닌가. 종이는 재활용하는데 환경 피해가 과연 없단 말인가.

그래도 마켓컬리는 '남들은 괴롭고 하기 싫어하니까' 자신들이 올페이퍼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당장 힘들더라도 바꾸기 힘든 것을 바꾸는 것. 김 대표가  그토록 강조하는 마켓컬리의 장기 기업 이념, '롱텀그리디'다.


(사진=뉴시스)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뉴시스) *재판매 및 DB 금지

마지막 다섯번째 사진은 다시 신라젠으로 돌아가보자. 올해 2월 10일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 자택 앞에서 신라젠 소액주주들이 피켓 시위를 벌이는 사진이다.

앞서 말했 듯 손 이사장은 신라젠 소액주주들이 자신의 집 앞에서 이런  시위를 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손 이사장의 사생활 침해보다 소액주주들의 집회의 자유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마켓컬리는 유니콘 특례상장을 통해 2177억원에 달하는 적자 기업인데도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일부에선 마켓컬리의 이 상장을 지금까지 마켓컬리에 투자했던 글로벌 거대 자본의 '엑시트' ,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본다.

지난해 12월 기준 컬리의 6대 핵심 주주는 힐하우스캐피탈(11.89%), 세콰이어캐피탈(10.19%), DST글로벌(10.17%), 아스펙스캐피탈(8.48%), 오일러캐피탈(6.73%), 김슬아 대표(5.75%)다.

증시 상장은 이런 거대 자본의 힘이 응집된 결과물이다.  이 상장 속에서 소액주주들은 투자 손실에 고스란히 노출 당할 수 있다. 신라젠이 바로 그런 경우다.

물론 한국거래소나 손병두  이사장은 상장폐지를 감당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소액주주들의 몫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례상장 주식의 투자 가치를 그만큼   잘 가려서 소액주주가 알아서 투자해야지, 어떻게 거래소가 일일이 신경 쓰느냐고 할 수도 있다. 백번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특례상장이 아닐 때 얘기다. 특례상장이라는 판을 깔아준 이상 누군가는 그 주식을 팔고 사기 마련이다.

손 이사장은 그런 관점에서 자신의 집 앞에서 시위하는 소액주주들을 막아 달라고 법원에 요청할 것이 아니라, 그 소액주주들이 어떻게 그 지경까지 내몰렸는지 더 근본적으로 짚어보는 게 맞다.  그래서 본질적인 개선책을 내놓는 게 맞다. 국민 세금으로 녹을 먹는 한국거래소 이사장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마켓컬리 같은 불완전한 적자 기업의 상장은 심사숙고 해야 한다. 그것이 특례상장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또 다시 주식 투자로 피눈물을 흘리는 소액주주들이 한국거래소 이사장의 집 앞에서 시위하는 일은 나오지 말아야 한다.

김슬아 대표는 앞서 언급한 책 '마켓컬리 인사이트'에서 이런 의미 심장한 말을 했다.

"(마켓컬리가)공모시장에 나가는 건 전문 지식이 없는 개인 투자자에게 투자 기회가 생기는 건데 회사가 예측 불가능하면 안된다".

그렇다면 김 대표에게 묻는다. 현재 마켓컬리는 전문 지식이 없는 개인 투자자에게 정말 예측 가능한 기업인가?

개인투자자들이 과연 2177억원에 달하는 영업적자가 앞으로 어떻게 줄어들며, 어떻게 흑자 전환할 지 예측 가능한가?

마켓컬리는 주요 주주들이 상장 후 1년간 주식을 팔지 않겠다는 보호예수 따위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이 불확실성 자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설명해야 한다. 왜 이런 중요한 대목은 책을 내서 해설해주지 않는가.

이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마켓컬리에 투자한 거대 자본의 엑시트와 소액주주들을 함부로 엮지 말라. 거대 자본의 엑시트를 위해 소액주주들이 희생 당해선 안된다. 마켓컬리는 상장을 하지 않아도 현금 여력이 충분하다고 자신 있게 밝힐 정도다.

소액주주들이 흘릴 피눈물은 마켓컬리 인사이트 같은 책이나 올페이퍼 챌린지 따위로 해소할 수 없다. 유니콘 특례상장이라는 명분으로 이런 소액주주들을 거대 자본의 엑시트와 함부로 엮지 말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힘들어도 반드시 해내야 할 한국 자본시장의 '롱텀그리디'다. 롱텀그리디는 마켓컬리만 가져다 쓰라고 생긴 말이 아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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