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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좀 빠져, 왕도 히어로도 여자가 할테니까'

등록 2022.09.26 05:51:00수정 2022.09.26 07:3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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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OTT 업계 여성 서사 작품 내세워

프라임비디오·디즈니+·HBO맥스 공통

'힘의 반지' '쉬헐크' '하우스 오브 드래곤'

女 캐릭터 내세워 새로운 이야기 선봬

"평생 임신 반복하며 살 순 없어" 대사

[서울=뉴세스] 아마존프라임비디오 '반지의 제왕:힘의 반지' 속 한 장면.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세스] 아마존프라임비디오 '반지의 제왕:힘의 반지' 속 한 장면.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아마존프라임비디오 약 2억명, 디즈니+ 약 1억5200만명, HBO MAX 9200만명. 이 숫자는 해당 온라인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구독자수다. 모두 더해 구독자수가 4억5000만명에 달하는 이 세 업체는 업계를 대표하는 플랫폼이다.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이 회사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들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제작, 현재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 모두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이른바 '여성 서사'가 전 세계적인 흐름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여자들은 남자들이 비웃고, 남자들이 말리고, 남자들이 꺼리고, 남자들이 두려워하는 일에 과감히 몸을 던진다. 그렇게 그들은 스스로 평화를 쟁취하려 하고, 진정한 슈퍼히어로가 되려 하며, 왕이 되려 한다.

이런 경향은 아마존프라임비디오가 지난 1일부터 내놓은 드라마 시리즈 '반지의 제왕:힘의 반지'에 명확히 드러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2001~2003년 연달아 개봉한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후속작이다. 첫 번째 시즌에만 적어도 1조원 많게는 1조4000억원이 투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을 이끄는 여성 캐릭터들이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스핀오프 드라마인 이 작품은 영화 '반지의 제왕' 시점에서 수천 년 전에 벌어진 엘프와 사우론의 전쟁을 그리는 작품이다. 흥미로운 건 '반지의 제왕' 속 주요 캐릭터들이 모두 남성이었던 것과 정반대로 '반지의 제왕:힘의 반지'를 이끄는 건 여성 캐릭터라는 것이다.
[서울=뉴시스] 아마존프라임비디오 '반지의 제왕:힘의 반지' 속 한 장면.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아마존프라임비디오 '반지의 제왕:힘의 반지' 속 한 장면. *재판매 및 DB 금지


엘프 전사 '갈라드리엘'은 영생의 공간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던 삶을 포기하고 사우론으로 상징되는 악의 근원을 뿌리뽑기 위해 세상 끝까지 나아가는 인물이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모험을 떠나는 인간 '브론윈'이나 털발족 '엘라노르' 역시 여성이다. 엘라노르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프로도'나 '호빗' 시리즈의 '빌보 베긴스'와 유사한 캐릭터이다. 이들의 조상격인 엘라노르가 "바깥 세상이 궁금하지 않냐"고 말하는 대목에선 프로도와 빌보 베긴스의 모험 유전자가 여성 캐릭터인 엘라노르에게서 왔다는 걸 상상하게 된다. '반지의 제왕:힘의 반지' 1·2회는 갈라드리엘·브론윈·엘라노르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과감히 넘어서는 모습을 교차해 보여준다.

'반지의 제왕:힘의 반지'가 다소 진지하다면 디즈니+의 '변호사 쉬헐크'는 가볍고 유쾌하게 남성을 저격하는 작품이다. 마블 스튜디오가 디즈니+를 통해 선보이고 있는 드라마 시리즈 중 하나인 이 작품은 검사 '제니퍼 월터스'가 사촌인 헐크 브루스 배너의 피가 몸 속에 흘러들어가는 사고를 겪은 뒤 여성 헐크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월터스는 슈퍼 파워를 갖게 된 탓에 검사 자리에서 해고되고, 이후 변호사가 돼 슈퍼 휴먼을 변호하는 일을 맡게 된다.
[서울=뉴시스] 디즈니+ '변호사 쉬헐크' 속 한 장면.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디즈니+ '변호사 쉬헐크' 속 한 장면. *재판매 및 DB 금지


이 작품은 월터스가 헐크인데도 '여성'이라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자주 드러낸다. 배너가 자신과 달리 슈퍼 파워를 이끌어내는 분노를 자유자재로 통제하는 월터스의 모습을 보고 놀라자 월터스는 이렇게 말한다. "화를 참는 건 내 전문이야. 길거리에서 희롱을 당해도, 무능한 남자가 내 분야에서 훈수질을 해도 난 늘 참아. 안 그러면 여자라서 까다롭단 소리나 듣고 칼 맞을 수도 있으니까." 헐크가 된 월터스가 남성을 압도하는 신체 사이즈와 힘을 갖게 됐다는 것 자체가 상징적이다. 그런데도 월터스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자들에게 은근한 무시를 받을 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슈퍼 파워를 갖게 됐는데도 소개팅앱으로 만난 시시한 남자들 눈치나 봐야 된다는 게 말이 돼!"
[서울=뉴시스] 디즈니+ '변호사 쉬헐크' 속 한 장면.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디즈니+ '변호사 쉬헐크' 속 한 장면. *재판매 및 DB 금지


'변호사 쉬헐크'의 프로듀서이자 수석 작가인 제시카 가오(Jessica Gao)는 각종 매체 인터뷰 등에서 자신이 페미니스트라는 걸 드러냈고, 이번 작품에 페미니즘적 대사를 집어넣었다고 밝힌 바 있다.

현 시점에서 전 세계 가장 많은 시청자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작품은 역시 '하우스 오브 드래곤'일 것이다. 이 작품은 2011~2019년 8개 시즌을 통해 관객과 만나며 역대 최고 인기 드라마가 된 '왕좌의 게임'의 프리퀄 시리즈로, 에피소드당 제작비만 2000만 달러(약 280억원)를 쏟아부은 블록버스터 드라마이다. 이 작품은 왕이 되려는 공주의 이야기를 그린다.
[서울=뉴시스] HBO MAX '하우스 오브 드래곤' 속 한 장면.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HBO MAX '하우스 오브 드래곤' 속 한 장면. *재판매 및 DB 금지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왕좌의 게임' 시점에서 약 170년 전, 웨스트로스를 장악했던 타르가르옌 가문에서 벌어진 최악의 왕위 쟁탈전인 일명 '용들의 춤' 사건을 그린다. 주인공은 왕위 계승권을 인정받아 후계자가 된 '라에니라' 공주. 하지만 아버지 '비세리스'가 새 왕비 사이에서 아들을 얻게 되면서 철왕좌 자리를 놓고 라에리나를 옹립하려면 흑색파와 '아에곤 2세'를 내세운 녹색파가 맞붙게 된다.

지난달 21일부터 방송돼 현재 6개 에피소드가 공개된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현재까지 라에니라의 왕위 계승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라에니라는 자신이 왕이 되지 못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라에니라를 제외한 왕실 인사들은 한목소리로 그가 새로 태어난 남자 동생에게 왕위를 빼앗길 거라고 본다. "남자들은 대륙을 전부 불태워서라도 너를 왕좌에 앉지 못하게 할 거다. 그게 이 세계의 질서"라고 말하는 고모에게 라에니라는 "그렇다면 내가 여왕이 돼서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겠다"고 답한다. 그러면서 "평생 임신을 반복하며 아이만 낳는 존재로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서울=뉴시스] HBO MAX '하우스 오브 드래곤' 속 한 장면.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HBO MAX '하우스 오브 드래곤' 속 한 장면. *재판매 및 DB 금지


'하우스 오브 드래곤'에 여성 캐릭터가 라에니라만 있는 건 아니다. 아직 역할이 부각되지 않았지만, 아에곤 2세의 어머니이자 한 때 라에니라의 친구였던 '알리센트'의 비중 역시 앞으로 점차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작품 제작총괄을 맡고 있는 라이언 콘달은 이번 작품에 대해 "어린 라에니라와 알리센트가 남성 중심 정치판에서 성장하는 이야기"라며 "그들은 그들을 압박하는 가부장적 시스템을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겨내게 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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