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아버지 돌보다 하루가 훌쩍"…취업도 학업도 포기하는 청년들

등록 2022.10.03 10:00:00수정 2022.10.04 13:47:45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보살핌 받아야 할 나이에 아픈 부모 돌봐야

국내 '영 케어러' 규모 약 18만~29만명 추산

돌봄·삶 양립 제도 통해 학업·취업 지원해야

사회적 관계 형성 및 심리적 안전망 구축도

"청년마다 상황 달라"…공식 통계 마련 시급

[서울=뉴시스] 한 영 케어러가 치매 투병 중인 아버지의 식사를 돕고 있다.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사진=유튜브 '부모님연구소' 캡처) 2022.09.30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한 영 케어러가 치매 투병 중인 아버지의 식사를 돕고 있다.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사진=유튜브 '부모님연구소' 캡처) 2022.09.30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수정 기자 = "아버지가 술을 마시면 항상 실례를 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불 빨래부터 합니다. 다 치우고 나면 오전 시간이 다 가버릴 때가 많죠."

27살 서모씨는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올해로 17년째 '돌봄 노동' 중이다.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동생이 따로 살게 되면서 알코올 중독 아버지를 돌보는 일은 오로지 그의 몫이 됐다.

요즘엔 증세가 악화하는데 아버지는 치료도 거부하고 있다. 자신이 알코올 중독이라는 것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알코올성 치매까지 겹치면서 치료는 더 힘들어졌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생활비 지원을 받으며 지내는 서씨에게도 취업이라는 간절한 꿈이 있었다. 어렸을 적 한때 미용사, 교사를 꿈꿨던 서씨는 "이제 아르바이트 이력서 통과조차도 어렵다"며 고개를 저었다.

포기가 일상…"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난 22일 서울 양천구 서서울 생명의전화 사무실에서 만난 서씨는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있는 청년들에게 "힘들면 놔도 된다고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서울 생명의전화는 돌봄 청년을 대상으로 삶의 질 개선 사업을 진행하는 단체다.

서씨는 "불효자가 되기 싫어서, 천륜을 저버리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이렇게 살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창 보살핌을 받아야 할 나이에 아픈 부모를 돌봐야 하는 청년들을 '영 케어러(young carer·가족 돌봄 청년)'라고 한다. 이들은 대체로 학업을 중단하고 단기 일자리를 통해 생활비를 충당한다. 온 종일 간병에 전념해야 하는 경우 이조차도 어렵다.

충북 청주에 거주하는 김모(23)씨는 학교를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다. 김씨는 지난해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쳐 직장을 그만두게 되자 곧바로 휴학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어머니와 단둘이 생활하는 그는 치료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온 종일 생산직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김씨는 "하루 빨리 복학해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며 "공무원이나 공기업 같은 안정적 직장에 취업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영 케어러' 최대 29만명…공식통계 없어 지원 사각지대

3일 국회입법조사처의 '해외 영 케어러 지원 제도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영 케어러 숫자는 18만4000여명에서 29만5000여명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는 영국, 독일 등 해외 주요국이 청소년 인구의 5~8% 가량을 영 케어러로 보고 있는 것을 우리의 청소년 인구 규모에 단순 대입해 유추한 숫자다. 국내에선 아직 국가기관이 공식적으로 생산한 통계가 전무해 정확한 실태 파악이 어렵다. 지원 대상 규모조차 알 수 없어 젊은이들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노인 인구가 빠르게 불어났지만, 이를 공적 영역의 돌봄이 충분히 메꾸지 못하면서 자연스레 돌봄 부담이 청년세대로 넘어간 것이라고 분석한다. 향후 고령화가 더욱 가속화될 경우 이런 영 케어러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사회 초년생인 영 케어러들은 노동시장에서 이탈하거나 오랜 기간 실업을 경험하게 돼 이후 빈곤 상태가 지속되는 경향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또 대부분 일과 시간을 부모와 단 둘이 보내기 때문에 사회적·정서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

"일과 삶 양립, 청년으로 확대해야"…정부, 실태 조사 중

이에 정부가 1차적인 경제적 지원에 그치지 말고, 이들이 주체적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생애 주기에 맞는 지원을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높다. 일정 시간을 학업 또는 취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다.

이승민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육아를 병행하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일과 삶 양립 정책'을 부모 돌봄 청년들에게로 확대하는 등 돌봄과 삶이 양립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마련이 중요하다"며 "기존 지역사회 커뮤니티를 활용하거나 영 케어러 간 커뮤니티를 활용,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구성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정부는 뒤늦게 실태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4월부터 국내 영 케어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 올해 말 집계가 완료될 전망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기관 내 자체 조사와 더불어 지방자치단체·민간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회 서비스를 참고해 지원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돌봄 청년마다 상황이 다르고 필요한 도움이 다르다"며 "일단 통계가 마련되면 돌봄 청년에 국한하지 않고 가구 차원으로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