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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통역 서비스' 제자리걸음...언어장벽에 범죄신고·수사 '막막'

등록 2022.12.10 08:00:00수정 2022.12.10 12:2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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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 연계 '3자 통화' 통역, 제대로 안 될 때 많아

통역 방식·급여·처우 등 법 개정 통한 개선 필요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지난 10월2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를 찾은 여행객들이 이동하고 있다. 2022.10.20. jhope@newsis.com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지난 10월2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를 찾은 여행객들이 이동하고 있다. 2022.10.20.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조성하 기자 = #. 방글라데시에서 온 A씨는 외국인 등록증을 돌려주지 않는 직장 업주를 신고하기 위해 지난달 18일 인근 지구대를 찾아갔다. 경찰은 A씨와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자 가해자로 지목된 업주에게 상황을 물었고, 업주는 경찰에 "A씨가 기숙사비를 납부하지 않아서 외국인 등록증을 임시 보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노동조합에 따르면 해당 업주는 A씨가 몸이 아파 결근하자 자의로 대체 인력을 부른 뒤 투입된 급여를 A씨에게 청구했다고 한다. A씨는 업주 결정이 부당하다고 판단해 납부를 보류한 상황이었는데, 경찰에게 이를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는 경찰에 통역 서비스를 요청했지만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고, 결국 신고를 포기했다.

A씨처럼 한국에 체류하는 다른 외국인들 역시 일반 시민들처럼 억울하거나 위험한 일을 당한 경우 경찰에 신고하지만, 언어 장벽에 부딪혀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10일 법무부 출입국의 '외국인정책 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약 220만명이다.

국내 체류 외국인 규모는 지난 2007년 100만명을 넘어선 이후 2016년 200만명을 넘어서면서 급격히 증가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국경이동이 제한돼 재작년부터는 감소 추세지만, 이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인구를 감안하면 우리 사회에서 약 25명 중 한 명은 외국인인 셈이다. 이에 경찰은 다양한 언어, 문화권간 의사소통을 위해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실효성은 떨어지는 모습이다.

이태원 희생자 중 다수인데 외국인 112신고 '0건'

경찰청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이태원 참사 당일(10월29일 오후 6시~10월30일 오전 1시) 현장에서 외국인이 직접 112에 신고한 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8명 중 외국인이 26명에 달한다. 참사 당일 적지 않은 외국인들이 이태원을 찾은 것으로 보이는데, 위기 상황에서도 단 한 건의 경찰 신고가 없었다는 점은 이들의 치안 서비스 접근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외국인의 경찰 신고에는 언어장벽이 주된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관련 기관 관계자들도 통역 시스템이 미비한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면 신고할 수 없고, 신고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우리처럼 통신 기술이 좋은 나라에서 112 세 번만 누르면 되는데 기계적, 기술적 문제가 없다면 언어적인 문제 외에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렵다. 기계적으로라도 통역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영섭 이주노동자평등연대 집행위원은 "신고했으면 피해자 얘기를 먼저 들어야 하는데 통역이 받쳐주지 않으니 한국 사람 이야기를 먼저 듣고, 그럼 먼저 인식이 생기는 부분이 있다"며 "이주 노동자가 신고했다고 하면 현장 출동할 때 최대한 그에 맞게 통역 준비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섹알마문 이주노동자노동조합 부위원장도 "태국 사람이 사건 접수를 해 경찰관이 현장에 출동하면 태국어를 모르니 문제"라며 "동시통역 통역망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23일 서울 건국대학교 학생회관에서 열린 2022년 2학기 외국인 교환, 방문학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참가 외국인 학생들이 학사일정을 듣고 있다. 2022.08.23. kkssmm99@newsis.com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23일 서울 건국대학교 학생회관에서 열린 2022년 2학기 외국인 교환, 방문학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참가 외국인 학생들이 학사일정을 듣고 있다. 2022.08.23. [email protected]


기관 연계 통역 서비스 제대로 안 될 때가 많아

경찰은 외국인들의 통역 수요가 늘면서 신고부터 수사 단계까지 기관과 연계한 통역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외국인 신고자에 의한 신고가 접수되면 통역 콜센터와 연계해 3자 통화를 실시한다"며 "경찰관·신고자·통역인 간 3자 통화를 통해 내용을 파악하고 신고를 처리한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활용하고 있는 통역 서비스에는 자원봉사자들로 운영되는 사단법인 비비비코리아(BBB), 한국관광공사와 양해각서(MOU)를 맺고 시행 중인 '1330 티티콜센터', 법무부의 '외국인 종합 안내센터', 그리고 여성가족부의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가 있다.

하지만 경찰 자체 통역 서비스가 아닌 만큼 통역인 연결이 보장되지 않는 등 한계점도 명확하다.

경찰이 통화를 시도해도 기관 상황에 따라 통역인과 연결이 어려운 경우가 많고 기관 소속 통역인들은 민간 통역사로, 수사 통역을 제공할 수준의 능력을 갖춘 전문 인력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높다.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2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를 찾은 여행객들이 이동하고 있다. 정부는 일본, 대만 등 8개국에 대한 무사증(무비자) 입국이 11월 1일부터 재개하기로 했다. 코로나19 해외유입 차단과 상호주의에 따라 2020년 4월부터 대한민국 국민에 대해 무비자 입국 금지 조치를 한 91개국을 대상으로 무비자 입국을 금지해왔으나, 최근 일본·타이완·마카오가 외국인 관광객의 무비자 입국과 개인 자유 여행을 허용한 데 따른 조치다. 2022.10.20. jhope@newsis.com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2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를 찾은 여행객들이 이동하고 있다. 정부는 일본, 대만 등 8개국에 대한 무사증(무비자) 입국이 11월 1일부터 재개하기로 했다. 코로나19 해외유입 차단과 상호주의에 따라 2020년 4월부터 대한민국 국민에 대해 무비자 입국 금지 조치를 한 91개국을 대상으로 무비자 입국을 금지해왔으나, 최근 일본·타이완·마카오가 외국인 관광객의 무비자 입국과 개인 자유 여행을 허용한 데 따른 조치다. 2022.10.20. [email protected]


"30분 통역해도 보수 못 받기도…전반적 시스템 개선해야"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2월 기준 전국 경찰에 등록된 통역 인력은 총 4347명이다. 민간인 통역이 3387명이며, 경찰관 등 내부 통역인력은 960명으로 집계됐다.

이지은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의 '경찰통역 실태와 경찰관의 인식 조사 사례 연구'에 따르면 10년 전인 2012년 경찰 통역 인력은 3820명(경찰관 763명·민간인은 3057명)이었다. 10년 새 통역 업무를 위한 인력은 다소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반적인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교수는 "통역인 선발부터 통역료 지급까지 통역인 운용 시스템 전반에 개선이 필요한 상태"라며 "경찰서에서는 조서 작성 시에만 통역료를 지급하고 있어 전화 통역이 30분가량 이뤄져도 (보수를) 지급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수한 통역인을 활용하고 전문 인력화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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