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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가 0원인 무급노동"…인디음악계 '카운팅 공연' 시끌

등록 2023.02.02 19: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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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가 0원인 무급노동"…인디음악계 '카운팅 공연' 시끌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인디 음악계가 홍대 앞 일부 클럽에서 관례적으로 해온 '카운팅 공연'을 두고 시끌시끌하다. 카운팅 공연은 두 팀 이상이 참여한 클럽 공연에서 관객의 선호도에 따라 각 뮤지션에 대한 정산 비율이 달라지는 걸 가리킨다. 

2일 대중음악계에 따르면, 싱어송라이터 해파(Haepa)가 최근 '카운팅 공연'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며 해당 건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해파는 지난달 31일 소셜 미디어에 "최근 공연한 곳 중에 정산을 아직 못 받은 것 같아서 연락했더니 정산은 완료됐고, 내 관객은 한 명도 없었단다"면서 "나는 분명 뮤지션 페이가 n분의 1인줄 알고 공연했던 것인데. 그날 참 춥고 힘들었는데 무급노동 한 것이 돼 버렸다"고 썼다.

"해파 예매 관객이 없었으면 공연 당일에 안 와도 된다고 알려주지.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뮤지션들 정산했을 때 내게도 0원 정산 됐다고 연락을 주지. 기다리다 기다리다 혹시나 해서 물어봤더니 이런 답변이라니"라고 덧붙였다.

해파는 지난달 초 서울 마포구 한 공연장에서 다른 두 팀과 함께 공연했다. 그녀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해당 공연장에서 절 먼저 섭외했고 '카운팅 공연'에 대한 사전 고지도 없었다"고 말했다.

2018년 '제29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동상을 차치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한 해파는 포크 듀오 '시옷과 바람' 멤버이기도 하다. 특히 지난해 6월 내놓은 솔로 정규 1집 '죽은 척 하기'는 바닥을 쳐본 자들이 뒤늦게 알아채는 희망의 특권(特權)을 노래해 호평을 들었다.

지난해 말 문을 연 해당 공연장 대표는 뉴시스에 "카운팅 정산에 대한 사전 고지를 하지 않은 것이 맞다. 그래서 해당 부분에 대해 해파 씨에게 사과했다"고 확인했다. 다만 "카운팅 공연'이 관행적이라고 여겨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라고 착각했다. 다음부턴 그 부분에 대해 고지하겠다"고 해명했다.

홍대 앞에서 두 팀 이상 함께 출연을 기획하는 일부 공연장에선 실제 카운팅 공연이 관행이다. 관객이 입구에 들어설 때 누구의 공연을 보러 왔냐고 묻고 이를 따로 명기한다. 온라인 예매 때부터 설문조사 툴로 미리 선호 뮤지션을 파악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한편에선 카운팅 방식이 무조건 나쁜 공연기획이라고 몰아붙이는 건 곤란하다고 목소리를 낸다. 뮤지션마다 모객력이 다른데 무조건 N분의 1로 나누는 것이 더 부당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카운팅 공연을 기획한 한 공연장 관계자는 "팀마다 티켓파워도 다른데 홍보 활동도 제각각이다. 티켓파워도 약하고 홍보도 덜한 팀에게 티켓파워도 강하고 홍보 노력도 많이 한 팀과 같은 액수의 출연료를 주는 게 맞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카운팅 공연이 마치 공연장에게 더 이익이 가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도 있는데 N분의 1 공연이든 카운팅 공연이든 공연장에게 주어지는 수익은 같다"고 주장했다.

또 N분의 1로 출연료를 나누게 되면, 오히려 인지도가 낮은 뮤지션이 설 무대가 줄어들 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다. "공연장이나 기획자가 관객을 불러들일 수 있는 비슷비슷한 팀만 섭외를 하려고 할 테니, 오히려 인지도가 낮은 뮤지션들에겐 섭외 자체가 가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서울=뉴시스] 해파. 2022.08.01. (사진 = 해파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해파. 2022.08.01. (사진 = 해파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사실 카운팅 공연은 홍대 신(scene)의 열악한 구조를 반영한다. 우선 여윳돈이 없으니, 뮤지션들 출연료 액수를 처음부터 보장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또 인디 신 공연계 역시 K팝처럼 팬덤 위주로 돌아가게 됐다는 점도 톺아봐야 할 부분이다. 우선 인기 팀을 섭외했더라도 라인업 구색을 맞추려면 인지도가 낮은 팀도 섭외를 해야 하는데 여기서 차별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공연장 관계자는 "두 팀 이상이 공연해도 자신이 좋아하는 팀만 보러 왔다고 생각하는 팬덤이 꽤 많다. 그들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카운팅 공연' 방식으로 정산을 한다고 해도 출연 뮤지션에게 소정의 금액을 주는 건 당연한 예의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공연을 위해 연습하고 당일 이동하고 무대에서 노래한 노동 자체가 무시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공연장 관계자는 "공연장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공연을 해도 적자가 나는 공연장이 많다. 운영비 등을 생각하면 그런 최소한의 금액도 책정하기 힘들다. 일단 공연장이 돌아가야 하지 않겠냐"고 주장했다.   

해파의 이번 카운팅 공연 건은 공연장 측에서 해파에게 해당 내용을 사전 고지하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하지만 이 기획 방식에 대한 '비인간적인 얼굴'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주를 이루고 있다. 과거 시옷과 바람으로 카운팅 공연을 경험한 뒤 다시는 이런 형태의 공연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해파가 다짐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해파는 "팀별 카운팅 정산 방식이 누군가에게는 합리적일지 모르겠지만 제게는 정의롭지 않게 느껴진다"면서 "모객력의 차이로 뮤지션들이 불균형한 정산을 받을 때 하우스·기획 측은 리스크를 지지 않고 모든 관객의 티켓값의 일정 비율을 가져간다"고 짚었다. "어떤 팀들을 묶어 공연을 기획했다는 건 그 조합이 만드는 시너지를 고려한 것"이라면서 "하나의 공연을 만든 뮤지션들이 정산을 받을 때 고립된 기분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하박국 대표가 이끄는 음악레이블 '영기획'의 경우 이미 카운팅 공연 기획 형태엔 참여를 하지 않고 있다. 해파에게 사전고지를 하지 않은 해당 공연장에서 영기획 소속 싱어송라이터 김새녘이 이달 중 공연 예정이었는데 이 역시 영기획과 김새녘에게 '카운팅 공연' 사전고지를 않아서 가능했던 섭외였다. 이에 따라 영기획은 김새녘의 공연을 취소했다. 해당 공연장 대표는 이와 관련 영기획에게 사과했다.

영기획은 지난 1일 소셜 미디어에 "공연을 기다려주신 분께 죄송하다는 말씀 드린다. 인디 음악 계의 모든 구성원은 소중하고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 앞으로도 김새녘과 영기획은 카운팅 공연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는 "클럽마다 공연기획은 자유라 막을 수 없겠지만 '카운팅 공연'은 뮤지션을 존중하지 않고 자존감을 생각하지 않는 능력주의의 자본주의적 발상"이라면서 "물론 땅 파서 장사하는 건 아니지만 두 팀 이상 공연할 경우 비슷한 장르를 묶거나 시너지를 생각하는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이슈가 소셜 미디어에서 주목 받는 건 공정과 관련해 불합리하거나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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