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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100일]①158명 사라진 3.5m 골목…'잊지 않겠다' 메모지 빼곡

등록 2023.02.04 06:00:00수정 2023.02.04 06:4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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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지점 골목길 인근, 금요일 오후에도 텅텅 비어

벽면 가득한 추모글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상인들 "이태원은 더 이상 '놀러오는 곳' 아닌 '슬픈 곳'"

"금기시 말고 일상 곁으로 받아들이자…잊지 않도록"

[서울=뉴시스] 임철휘 기자 = 이태원 참사 발생 100일을 이틀 앞둔 지난 3일 오후, 사고가 발생한 거리 벽면에 시민이 쓰고 간 메모지가 붙어있다. 2023.02.03. fe@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임철휘 기자 = 이태원 참사 발생 100일을 이틀 앞둔 지난 3일 오후, 사고가 발생한 거리 벽면에 시민이 쓰고 간 메모지가 붙어있다. 2023.02.0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위용성 임철휘 기자 = "흐르는 세월 속에 만약 세상이 오늘을 잊어갈지라도 우리 가족 모두가 눈 감는 순간까지 널 기억하고 있을게. 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 모든 가족을 대신해 복돌이 삼촌, 이모가."(벽면에 붙은 한 시민의 추모 글)

이태원 참사 100일째를 이틀 앞둔 지난 3일 오후, 이태원역 1번 출구로 빠져나와 '세계음식문화거리'로 향하는 해밀톤 호텔 옆 골목길 곳곳에는 참사의 아픔이 배어 있었다.

지하철역 1번 출구 계단에서부터 참사 골목길 옆 벽면까지 시민들의 추모 글이 빼곡히 이어졌다. 그 위로는 비닐덮개가 씌여져 추모 글들이 비바람에 날리거나 젖어 찢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도 그날이 잊혀지지 않도록 시민들의 염원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선 모습이었다.

참사 원인을 조사한 경찰청 특별수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29일 저녁 세계음식문화거리로 향하는 이른바 'T(티)자형' 골목에는 핼러윈 축제를 즐기려는 인파가 이태원역과 녹사평역, 한강진역으로부터 꾸준히 몰려왔다.

사고가 발생한 오후 10시15분 기준 군중 밀도는 1㎡당 7.72~8.39명에서 10시25분까지 최대 9.07~10.74명까지 증가했다고 한다. 전도(넘어짐)가 발생한 시점엔 2200~5500뉴톤(약 220~550㎏)의 누르는 힘이 작용했던 것으로 분석됐다.

그날 밤 바로 이 골목에서, 사람들은 서로 엉켜 몸부림치는 와중에 가까스로 전화기를 붙들고 112 신고 전화를 눌렀다. 하지만 구조가 늦어지면서 그들은 계속 쓰러져갔다.

답이 없었던 국가를 대신하듯 시민들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같은 거리에 함께 있었는데 나는 살아 죄송하다',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하다',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어 미안하다'는 글을 메모지에 써붙였다.

[서울=뉴시스] 임철휘 기자 = 이태원 참사 발생 100일을 이틀 앞둔 지난 3일 오후, 사고가 발생한 거리 벽면에 시민이 쓰고 간 메모지가 가득 붙어있다. fe@newsis.com 2023.02.03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임철휘 기자 = 이태원 참사 발생 100일을 이틀 앞둔 지난 3일 오후, 사고가 발생한 거리 벽면에 시민이 쓰고 간 메모지가 가득 붙어있다. [email protected] 2023.02.03 *재판매 및 DB 금지


검찰은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을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기소하면서 공소장에 이 골목의 폭이 '해밀톤 호텔의 불법건축과 도로 무단 점용 및 용산구청의 방관으로 인해' 최소 3.199m, 최대 3.571m에 불과하다고 표현하고 있다.

많은 시민들이 여전히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는 사실에 황당해하고, 믿기 어려워 한다. 직접 현장을 찾은 뒤엔 이 골목이 이토록 좁은 곳이었냐며 다시 한번 놀란다고 했다. 한 시민은 메모지에 '내 생각보다, 기사 속에서 본 사진보다 길목이 너무너무 좁다. 얼마나 아팠을까'라고 적었다.

이날 골목 인근에서 만난 시민들은 한 목소리로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지 않느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경남 김해에서 100일 추모를 위해 직장에 휴가를 내고 이 골목을 찾았다는 김건표(53)씨는 "그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데 유가족들은 어떤 마음일까"라며 "(2차 가해를 보면) '감성팔이 한다', '놀러왔다가 그리 됐다'는 비상식적인 얘기를 하는 이들이 있는데, 정말 속이 끓어오른다"고 했다.

인근을 지나던 시민 이모(65)씨는 "젊은이들이 놀러 나왔다가 그렇게 됐다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픈 것 아니냐"며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고, 100일 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다 잊혀지는 것 같다"고 했다.

점심 약속차 근처에 왔다가 골목길을 지나칠 수 없었다는 직장인 남모씨는 "걸어도 보고 사진도 찍으면서 슬픔을 같이 느껴보려 했다"며 "그런데 여기 서 있는 것 만으로도 그 때 상황이 상상돼 마음이 안 좋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임철휘 기자 = 이태원 참사 발생 100일을 이틀 앞둔 지난 3일 오후, 시민들이 사고가 발생한 세계음식특화거리를 걷고 있다. fe@newsis.com 2023.02.03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임철휘 기자 = 이태원 참사 발생 100일을 이틀 앞둔 지난 3일 오후, 시민들이 사고가 발생한 세계음식특화거리를 걷고 있다. [email protected] 2023.02.03 *재판매 및 DB 금지


여전히 자신의 아이가 몇 시에, 어떻게 사망했는지 조차 모르는 유가족들은 4일에도 광화문 광장에서 100일 시민추모대회와 행진을 한다.

최근까진 100일 추모대회에 참여를 호소하는 159배를 했다. 2차 가해가 두려워 추모대회 전후 3일간은 포털 댓글창을 닫아 달라며 언론사에 요청까지 해야 했다. 그들은 지금도 계속 싸워나가고 있다.

그날의 상흔은 유가족 만의 몫도 아니다.

주말 밤마다 인파가 북적이던 이태원 거리 풍경은 이제 아주 먼 이야기가 됐다. 상인들은 "근근이 버티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인근 골목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 A씨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유명 가게 몇 곳 외에는 사람들이 찾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제 사람들이 이태원에 '놀러온다'는 생각을 못 하게 된 것 아니냐"며 "이태원은 슬픈 동네로 기억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곳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시민들은 이 골목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선 슬프다고 금기처럼 여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골목길 인근 상점을 운영하는 B씨는 "슬프고 끔찍하다 생각해 멀리할 게 아니라, 늘 우리 곁에 있는 것처럼 제대로 된 추모공간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며 "사람들 발길이 이어져야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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