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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동의 간음죄 논란①]"폭력 피해 예방" vs "무고한 피해자 양산"

등록 2023.02.11 08:00:00수정 2023.02.11 08:2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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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 강간 구성요건 '폭행·협박'으로 규정

피해 사례 1030명 중 71.4% ,폭행 없이 발생

여성계 "입법적 공백…피해자 구제 방법 없어"

반대측, 악용 가능성·피의자에 입증 책임전가

【서울=뉴시스】이영환 기자 = 지난 2018년 3월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주최한 2018년 성차별, 성폭력의 시대를 끝내기 위한 2018분 말하기 대회가 진행되는 가운데 미투 대자보 게시판이 설치되어 있다. 2023.02.11. 20hwan@newsis.com

【서울=뉴시스】이영환 기자 = 지난 2018년 3월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주최한 2018년 성차별, 성폭력의 시대를 끝내기 위한 2018분 말하기 대회가 진행되는 가운데 미투 대자보 게시판이 설치되어 있다. 2023.02.11.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권지원 기자 = 비동의 간음죄 도입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여성가족부의 입장 번복이 도화선이 됐지만, 비동의 간음죄 도입은 사실 해묵은 논쟁이다.

지난 2018년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사건 등으로 '미투 운동'이 벌어지면서 정치권과 여성계에서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나 비동의 간음죄 도입으로 인한 부작용과 악용 가능성이 크다는 반론도 만만찮게 나오면서 도입 논의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여성계, 비동의 간음죄 주장…"성적 자기 결정권 보호"

비동의 간음죄는 상대방의 '동의 없이' 이뤄진 성관계를 강간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형법 297조는 강간을 '폭행 또는 협박'에 의한 성관계로 규정한다. 최근 강간죄의 구성요건인 폭행과 협박 기준을 완화하는 법원 판례가 나오기는 하지만 여전히 '최협의설'을 바탕으로 폭행과 협박을 좁게 해석해 범죄 여부를 따진다. 즉 저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정도의 폭행과 협박이 있는 경우에만 강간으로 인정된다.

여성계는 성적 자기결정권 보호의 실질적인 보장을 위해 비동의 간음죄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실제 폭행과 협박이 없었다고 해도 상대방의 '동의 없이' 성적 침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으며 피해자가 구제받을 방법이 없어 입법적 공백상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21년 발표한 '비동의 간음죄의 비동의 판단기준 마련을 위한 국내외 사례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1~3월 전국 성폭력상담소협의회 소속 상담소 66곳에 접수된 1030명의 강간 피해 사례 분석한 결과, 직접적 폭행·협박 없이 발생한 성폭력 피해 사례는 753명(71.4%)에 육박했다.

연구원은 협박 없이 발생한 성폭력 피해 사례로 상대방과의 성관계를 거절할 수 없는 맥락이 있는 경우, 무방비 상태에 있는 경우, 금전적인 이유로 가해자에게 의존하는 경우, 종교 지도자와 신도 간 관계처럼 가해자가 권력의 위치에 있는 경우 등을 들었다.

업무상 위계·위력에 의한 간음죄 조항으로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를 처벌할 수 있지만 '업무상 위력'을 입증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업무상'의 관계가 아닌 경우에서 발생한 성폭력 피해자를 구제할 방안이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사람들이 '위계관계'라고 바로 인지하기 어려운 관계는 (형법 297조에) 해당이 안 된다"면서 "강간죄 자체를 개정하고 폭행을 한 경우에는 형량을 더 높이는 대신 동의 없이 강간한 사람에게는 형량을 낮추는 식으로 조정하는 방안도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 김명원 기자 =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달 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3년 업무보고 사후 합동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3.02.11. kmx1105@newsis.com

[서울=뉴시스] 김명원 기자 =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달 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3년 업무보고 사후 합동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3.02.11. [email protected]

신중론 "과잉 형벌 문제…피고인에 입증 책임 전가"

강간죄의 구성요건 개정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비동의 간음죄 도입 반대 측은 '동의'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부작용을 우려한다. 특히 상대방의 주장만으로 처벌 여부가 결정될 수 있어 악용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성관계를 할 당시에는 동의했더라도, 이후 마음이 변했을 때 그 변심을 수사기관이 입증하기가 쉽지 않아 억울한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덴마크에서는 성관계 동의 여부를 서로 확인하는 어플리케이션(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성적 동의 플랫폼 '그래그래'가 출시된 바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8일 국회 사회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여러 생각이 있다는 것에 동의하고 저도 절대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라면서도 "범죄를 의심 받는 사람이 상대방 동의가 있었다는 것을 법정에서 입증하지 못하면 억울하게 처벌 받게 되는 구도가 된다"면서 "상대방의 내심을 파악하고 입증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동의에 대한 입증 책임이 검사가 아닌 피고인에게 전가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성호 국민의힘 대변인은 "검사에게 입증 책임이 주어지지 않고 피의자에게 입증 책임이 주어지는 방향으로 갈수 밖에 없다"며 "형소법상 큰 원칙 중 하나인 검사의 입증 책임이 잘 되지 않는다. 결국 법리적으로 상황을 증명할 역량이나 권한을 전혀 가지지 못한 사람이 (무죄를) 증명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다"고 꼬집었다.

전혜성 바른인권여성연합 사무총장은 "한 장관은 다른 나라와 우리나라는 사법 시스템도 다르고 사회 환경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무분별하게 들여올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해줬다"면서 "(비동의 간음죄 도입은) 충분히 논의가 있었어야 한다. 충분히 논의가 안 된 것 같다"고 밝혔다.

도입 여부를 놓고 찬반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만큼 주무 부처인 여성가족부와 법무부는 성폭력범죄처벌법 체계에 대한 사회적 논의부터 수렴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여가부는 지난달 26일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 발표를 통해 비동의 간음죄 도입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나 법무부가 개정계획이 없다고 반박한 데다 여권에서 거센 반발이 나오자, 같은 날 저녁 '개정 계획이 없다'며 입장을 철회한 바 있다.

여가부에 따르면 작년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법무부 등 관계 부처와 공문을 통해 관련 의견 수렴을 거쳤다. 법무부는 당시 '학계 등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고 해외 입법례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포함해 성폭력범죄처벌법 체계 전체에 대한 사회 각층의 충분한 논의를 거치는 등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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