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만에 범람해브렀어" 수마 할퀸 구례 양정마을

"39년 만에 천변이 범람해브렀어. 누런 강물이 읍내 전체를 한 바퀴 돌아브렀다니까." 10일 전남 구례군 구례읍 양정마을 일대는 '수마(水魔)'가 할퀴고 간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사흘 전부터 380㎜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섬진강 지류 서시천 제방이 붕괴됐는데, 이 마을은 홍수 피해의 직격탄을 맞았다. 마을 전체가 누르고 거무스름한 빛깔을 띠었다. 저지대인 마을 입구 도로 한 켠은 쩍쩍 갈라져 주저 앉았다. 마을명이 쓰인 비석은 두 동강 나 고꾸라진 채 흙탕물에 뒤범벅됐다. 장화를 신지 않으면 걷기 힘들 정도로 미끄러웠고, 쾨쾨한 냄새도 났다. 2~3층 규모 주택 지붕까지 물이 차오른 탓에 많은 주택의 벽과 지붕이 붕괴됐다. 각종 가재도구는 진흙을 뒤집어 쓰고 곳곳에 널려 있다. 18년간 이 마을에 산 김모(57)씨 집 내부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다. 쌀과 각종 음식, 조리 도구, 깨진 가전 제품이 주택 안팎을 뒤덮었다. 마을 115가구의 전기와 수돗물 공급도 끊겼다. 농가 50여 곳에서 기르던 소 200~400여 마리(잠정 집계)도 죽었다. 곳곳에 쌓인 가축들의 폐사 모습은 참혹했던 순간을 연상케 했다. 김씨의 집 옆 주택 3곳에는 소 8마리가 지붕 위에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갇혀 있었다. 마을에는 태풍 '장미' 영향으로 이날도 세찬 비가 반복됐고, 빗줄기 사이로 끝없이 울려 퍼진 소 울음소리가 더욱 애처롭게 들렸다. 축사 시설 곳곳도 깨져 아수라장이 됐다. 하우스농가 비닐은 갈기갈기 찢어졌고 지주대는 엿가락처럼 휘었다. 말라버린 과수는 누런색을 띠었다. 농작물 대부분은 눕거나 잠겨 있었다. 마을 주민·공무원·군인들은 각종 장비를 동원해 복구 작업에 구슬땀을 흘렸지만, 힘에 부친 모습이었다. 재난 현장은 가깝고 넓지만 복구의 손길은 아득했다. 막막해 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고인 흙탕물에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빗방울은 피땀 흘린 농민들의 눈물처럼 보였다. 마을 주민들은 "이런 물난리는 처음이다. 집과 농가 등 삶의 터전 전체가 수해를 입어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모르겠다"고 울상을 지었다. 이어 "태풍이 조용히 지나가 추가 피해가 없길 바란다. 하루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호소했다. 한편 구례는 이번 폭우로 5개 읍·면 가구·시설 1244곳이 침수 피해를 봤다. 농작물 421㏊가 물에 잠기고 소·돼지·오리 3651마리가 폐사했다. 잠정 재산피해 규모는 568억 원이다. 구례군은 호우 피해 상황 파악과 복구 작업에 행정력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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