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샘 피해 여성은 왜 성폭행 이후 'ㅎㅎ' 카톡을 보냈나
양측 메신저 대화 공개 이후 여성 '태도'에 의문·비난
"싫다는 의사표시 어려운 것은 전이나 후나 마찬가지"
"가해자들이 피해자에게 다정한 말 건네는 경우 많아"
"특히 직장 상사는 암묵적 힘의 행사 작용하는 관계"
"근무지 한계 속 피해자들 대응 미숙한 점 고려해야"
【서울=뉴시스】남빛나라 기자 = '한샘 사건'을 시작으로 직장 내 성폭력 경험을 폭로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성폭력 피해를 주장하는 측과 가해자로 지목된 측 간 주장이 엇갈리면서 진위 논쟁도 치열하다.
성폭행 이후 피해자의 태도를 둘러싸고 일부 누리꾼이 "일방적으로 당한 게 맞느냐"는 식의 의문을 제기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피해자가 사건 직후에도 평소와 같은 모습을 외부적으로 보였다는 점을 들어 섣불리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피해자를 이른바 '꽃뱀'으로 모는 등 논의의 방향을 왜곡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샘 사건은 신입 여사원 B씨가 같은 회사 남성 3명으로부터 몰래 카메라 촬영, 성폭행, 성폭행 시도를 차례로 겪었다는 내용이 골자다.
그중에서도 사내 교육 담당자 A씨가 연루된 두번째 사건이 가장 주목된다. 사건 중 가장 죄질이 심각한 데다,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이 온라인을 통해 본인 입장과 당시 정황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지난 4일 한 인터넷 사이트에는 '한샘 논란의 교육 담당자'라고 자칭한 사람이 기존에 올라온 피해자의 글에 반박하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작성자는 B씨와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텍스트 파일 형태로 글에 첨부했다. 해당 대화는 B씨가 성폭행이 발생했다고 주장한 1월14일 새벽 전후인 1월 12~13일과 14일 아침과 낮에 이뤄졌다.
【서울=뉴시스】남빛나라 기자 = 한샘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이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글 작성자는 피해자와 친밀한 사이라고 주장하며 메신저 대화 내용을 텍스트로 입력해 글에 첨부했다. 본문에서 A씨는 본인, B씨는 피해자를 지칭한다. 위 사진은 양측이 지난 1월14일 낮에 나눈 대화. (사진캡쳐=온라인 커뮤니티)
해당 글이 게시된 이후 논쟁은 '피해자 태도'의 적정성을 논하는 방향으로 치달았다. 특히 문제의 강압적인 성관계가 있었다는 시점 직후인 14일 낮의 카톡 대화가 지탄의 대상이 됐다. 일부 누리꾼은 A씨를 대하는 B씨의 태도가 '성폭행 당한 여자 같지 않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전반적으로 A씨를 향한 B씨의 어투가 적대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B씨는 피곤하지 않으냐는 물음에 "넹 괜찮은뎅ㅎㅎㅎ"이라고 답한데 이어 피곤하다고 하소연하는 A씨에게 "푹자요ㅎㅎ"라고 하는 등 전반적으로 친근한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 사건의 가해-피해 관계를 현재까지 드러난 증거나 정황만으로 확정하거나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피해 여성의 이 같은 사후 반응은 통상적인 것으로, 사건을 연속성 있게 봐야 이런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성폭행 전후 피해자의 태도가 180도 달라질 것으로 짐작하거나 기대하지만, 전후 상황을 칼로 무 자르듯 나눠서 판단하긴 어렵다는 의미다. 따라서 사건 직후의 단편적인 언행만을 놓고 속단하는 것은 피해야한다고 지적한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직장에서 부당한 야근 지시를 받았다고 (말단직원이) 바로 '부당노동행위'라고 항의할 수 있느냐"라며 "권력 관계로 인해 성폭행 전이나 도중에 싫다고 말하기 어려웠다면 그 상황은 성폭행 후에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김 부소장은 "많은 경우 가해자들이 성폭행 이후 피해자에게 몸 상태를 묻는 등 다정한 말을 건넨다"며 "그럴 때 '성폭행해놓고 왜 이러느냐'라고 바로 대응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임명호 단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충남 해바라기센터 자문위원)는 "성인끼리라고 해도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은 약자라는 뜻"이라며 "특히 직장 상사의 경우 승진 문제 등 암묵적인 힘의 행사가 분명히 작용하는 관계다. 성폭행 이후라고 이러한 강압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성범죄 사건을 주로 담당하는 이재용 변호사(JY법률사무소)는 특히 직장 내 성폭력의 경우 피해자가 전혀 싫은 기색을 내비치지 않다가 문제를 제기하면 '꽃뱀'으로 몰려 상처받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 변호사는 "근무지라는 한계 때문에 피해자들이 대응에 익숙하지 않아서 싫다고 말 한마디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싫으면 싫다고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직장 문화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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