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구병모 "아이 키우려면 온 마을? 현실과 안 맞지요"
장편소설 '네 이웃의 식탁' 출간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민음사 장편소설 '네 이웃의 식탁' 구병모 작가가 19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8.06.19. [email protected]
소설가 구병모(42·정유경)가 19일 장편소설 '네 이웃의 식탁' 출간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구씨는 2008년 '위저드 베이커리'로 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다. 장편소설 '아가미' '파과' '한 스푼의 시간'과 소설집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빨간구두당' 등을 냈다.
'네 이웃의 식탁'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구병모'하면 특수한 질병이나 로봇 메커니즘 등 비현실적인 세계관을 많이 떠올릴 것이다. 그간의 장편소설과 톤이 많이 다르다"고 소개했다.
"이번에는 비일상적인 요소들을 완전히 배제했다. 개인적으로 큰 도전이었다. 그 어느때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서 썼다."
'이웃'이라는 이름의 공동체로 묶이면서 공동 육아를 시도하는 이들의 삶에 균열이 일어난다. 은근히 수작을 부리는 이웃집 여자, 매사를 가르치는 듯한 태도인 여자, 집안일을 수수방관하고 아내에게 손찌검까지 하는 남자, 합리적인 척하지만 허영이 가득한 남자 등이 등장한다.
이들의 민낯을 통해 돌봄 노동의 허무, 공동체의 허위를 짚었다. "비슷한 세대의 젊은 부부들이 우연히 필요에 의해서 공동체를 이룬다"며 "이 공동체의 목적을 돌봄 노동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런 과거의 낡은 공동체 의식이 지금의 현실에 적용이 될까 싶었다. 현재의 사회 문화·경제적인 상황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돌봄 공동체에 관한 환멸과 절망을 갖고 쓴 소설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민음사 장편소설 '네 이웃의 식탁' 구병모 작가가 19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8.06.19. [email protected]
"산부인과의 검사대에 올라가는 여자라면 누구라도, 자신의 몸이 어떤 자극이나 모욕에도 반응하지 않는, 동요나 서글픔 따위를 제거한 무생물에 가까운 오브제라는 사실을 철저히 인식하지 않고 지나갈 수 없었다. 그 과정을 흔히 정상 내지는 보편이라고 간주되는 경로를 거쳐 통과한 이는, 타인과의 어지간한 신체적 접촉 정도로는 눈을 부라리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일일이 그래 봤자 성격 까다롭다는 조소를 감당하고 비참함을 곱씹는 쪽은 자신이라는, 차라리 스스로를 오브제로 간주했을 때 피로의 역치가 그나마 높아진다는 사실을 몇 번이나 확인한 자로서의 체념, 그 끝에 마침내 일말의 안식처럼 찾아드는 무감각 같은 것이었다."(82~83쪽)
"핵심은 시간을 보내는 데 있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면서 체세포의 수를 착실히 불리는 거야말로 어린이의 일이었다. 그 어린이를 바라보는 어른의 일은, 주로 시간을 견디는 데 있었다. 시간을 견디어서 흘려보내고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일. 그곳에 펼쳐진 백면에 어린이가 또다시 새로운 형태 모를 선을 긋고 예기치 못한 색을 칠하도록 독려하기. 그러는 동안 자신의 존재는 날마다 조금씩 밑그림으로 위치 지어지고 끝내는 지우개로 지워지더라도."(67쪽)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민음사 장편소설 '네 이웃의 식탁' 구병모 작가가 19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8.06.19. [email protected]
"이 소설 속에 나타난 여성들의 단점이 얼핏 보기에는'여성의 적은 여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나는 여성의 적이 여성이 아니라 인간의 적이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성격적인 결함이 있다. 누가 잘했고 못했고 편드는 게 아니라 결점이 있는 인간 군상에 대한 이야기다."
구씨는 "어떻게 보면 아줌마 수다로밖에 안 보인다"며 "나와 같이 자녀를 키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정말 내 이야기 같다'며 공감할 것이다. 좋은 쪽으로 많이들 읽어주면 좋겠다"고 청했다.
"선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니 요진이 어느 순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싸늘하게 자르거나 거절해도 그만이었다. 요진이 불편하고 불쾌하면 곧 그것이 선을 넘는 일이었다. 그러나 요진은 가능한 한 '누가 봐도 이상하며 그럴듯하지 않은' 일에 반응하고 싶었다. 해석의 방식과 범위에 따라 불쾌지수가 널뛰는 일에 낱낱이 발끈함으로써 서로에게 개운치 않은 뒷맛을 초래하고 싶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피곤한 여자로,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달려드는 예민한 이웃으로 간주되기 싫었다. 좋은 게 좋은 줄 알며, 사소한 농담에 호응해 주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회인이 되는 게 바람직했다."(119쪽)
196쪽, 1만3000원,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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