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간 운영됐다는데 국민들은 모르는 '경찰인권센터'
【서울=뉴시스】심동준 기자 = 서울 용산구 갈월동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 위치한 경찰 인권센터 전경. 경찰은 2005년 7월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를 출범하면서 대공분실을 개조해 사무실로 삼았으며 내부에 '박종철 기념관' '구 조사실' 등 시민 대상 전시관을 만들어 운영해오고 있다. 2017.06.30 [email protected]
시민 접근 어렵고 활동 부실, 홈페이지마저 지난해 폐지
전시관 소극적 운영 문제…"전문가·시민 참여 통로 필요"
"인권센터, 경찰 조직 내 위상 약하고 강제성 없어" 비판
【서울=뉴시스】심동준 기자 = 새 정부의 '인권 경찰' 주문 이후 경찰은 인권특별보좌관을 두거나 인권보호국 신설을 검토하겠다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인권 조직 강화 방안을 모색하는 부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내부에 인권 전담조직인 '인권센터'를 두고 약 12년 간 운영해왔음에도 조직 내 위상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데다 홍보 및 관리에 소홀해 시민들과의 소통에도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한 실정이다. 이미 상당한 예산을 들여 설립한 조직도 실효성 있게 운영하지 못한 경찰이 청와대 코드에 맞춰 백화점식 방안을 나열하는 데 급급해서는 이번에도 '인권 경찰' 슬로건이 보여주기식 연출로 끝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인권 탄압 산실에 자리한 인권센터…"시민 접근 어렵고 정보 부족"
2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청은 지난 2005년부터 '인권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인권센터는 경찰 내부의 인권 정책 수립, 인권 관련 관계법령 정비, 경찰관 인권교육, 인권침해 관련 조사 활동, 시민 대상 홍보활동 등 인권보호 업무를 하고 있다.
인권센터는 과거 각종 고문이 자행된 서울 용산구 갈월동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 위치해 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1987년 박종철 열사가 경찰 조사 과정에서 물고문으로 숨진 곳이다.
경찰은 2005년 7월 수사국 소속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를 출범하면서 대공분실을 개조해 사무실로 사용했다. 이후 '박종철 기념관', '구 조사실' 등 시민 대상 전시관을 만들어 운영해오고 있다.
【서울=뉴시스】심동준 기자 = 서울 용산구 갈월동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 위치한 경찰 인권센터. 경찰은 2005년 7월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를 출범하면서 대공분실을 개조해 사무실로 삼았으며 내부에 '박종철 기념관' '구 조사실' 등 시민 대상 전시관을 만들어 운영해오고 있다. 2017.06.30 [email protected]
경찰이 인권센터를 통해 진행하는 시민 대상 활동은 인권영화제와 인권아카데미, 인권 로드 탐방 정도인데 일반 시민단체들이 하는 행사와 비교해 이렇다 할 차별성이 없고 오히려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해 11월22일에는 홈페이지마저 폐쇄됐다. 시민들은 인권센터가 어디에 있고 무슨 일을 하는지 일부러 알려고 해도 알기가 어렵게 됐다.
인권센터 홈페이지에서 다루던 내용들은 현재 사이버경찰청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경찰 측의 설명이지만 확인 결과 관련 정보는 매우 적었다.
경찰청 홈페이지 내부에는 갈월동에서 운영하는 '인권센터' 관련 별도 항목이 존재하지 않았다. 위치를 알기 위해서는 검색을 통해 별도의 파일을 내려 받아야 한다. 센터의 연혁이나 의미, 보유하고 있는 자료 또는 활동에 관한 정보도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정보공개센터)가 인권센터 홈페이지에 게시됐던 각종 정보와 자료를 정보공개 청구했을 때 경찰은 '이전 홈페이지에는 인권센터 홍보용으로만 활용됐으며 보관된 전자문서는 없다'고 답변했다.
정보공개센터는 인권센터 홈페이지를 폐쇄하면서 관련 웹문서가 폐기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사이버경찰청 홈페이지로 통합되면서 개별적으로 운영되던 홈페이지가 폐지됐던 것"이라며 "인권센터 홈페이지 또는 블로그 등 소통 창구를 다시 만들 예정이고, 7월 중 구체적인 계획이 마련될 것"이라고 밝혔다.
인권센터 전시관이 명목상으로만 운영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경찰 홍보관인 '경찰박물관'과 인권센터 전시관을 대조해보면 차이가 보다 뚜렷하게 드러난다.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에 위치한 경찰 박물관에는 각종 장비와 복식, 유물 등 홍보물들이 6층 규모로 전시돼 있다. 반면 인권센터는 시민공간으로 1층 역사관·홍보관·영상소개실, 4층 박종철 기념전시실·인권교육 전시관, 5층 구 조사실을 소규모로 두고 있을 뿐이다.
경찰박물관은 월요일과 명절을 제외하고는 시민들에게 상시 개방돼 있으나 인권센터는 별도 신청을 거치지 않을 경우 주말이나 휴일을 제외하고 평일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 사이에만 출입할 수 있었다. 경찰은 인권센터 전시관에 대한 시민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일자 토요일에도 개방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이 또한 정권 교체에 따른 뒷북 조치 아니냐는 지적을 받는다.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이철성 경찰청장이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경찰청 인권센터(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방문해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2017.06.09. (사진 = 경찰청 제공) [email protected]
◇인권 문제 불거져 개편했지만 침해 논란 지속…"조직 내 절대영역이 개선 걸림돌"
인권 침해 문제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를 때마다 경찰은 인권 조직에 변화를 주면서 개선 방안을 모색해 왔지만 보여주기식이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실제로 경찰은 2010년 10월 인권보호센터 이름을 인권보호담당관으로 바꿨고 소속을 수사국에서 감사관으로 변경했다. 2009년 8월부터 2010년 3월까지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이뤄진 이른바 '날개꺾기' 등 고문수사가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
당시 소속 변경은 감사의 주요 기준 가운데 하나를 '인권'으로 두겠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조치였다. 보다 광범위한 영역에서 독립적으로 인권 업무를 할 수 있게 된다는 면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로 평가 받았다.
그러나 경찰의 시도가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민간인 통신기록 사찰 의혹, 집회 참가자·대학가·노동조합 감시 의혹, 백남기 사망 사건 등은 경찰의 2010년 조치 이후 발생했다.
경찰 안팎에서는 인권센터의 조직 내 영향력이 약하고 취해진 조치에 강제성이 없는 것이 문제라는 견해가 있다. 최근 인권 침해가 주로 일어나고 있는 경비·보안·정보 부서와 인권센터 사이의 조직 내 역학관계가 개선을 방해하는 주된 요인이라는 것이다.
경찰의 인권 정책 방향이 정치적 상황에 따라 표변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점, 인권 부서가 내부 구성원들 사이에서 '기피 부서'로 여겨지는 점 등은 장기적 접근이 필요한 인권 정책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지목된다.
이런 상황에서 무늬만 다른 새로운 기구를 도입하고 옥상옥 조직을 신설하기보다는 나름의 오랜 활동 이력과 노하우, 담당 인력을 갖춘 인권센터를 개편 또는 강화해서 내실 있게 운영하는 방안을 먼저 검토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경찰인권위원 출신인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거 대비 인권 인식이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조직 내에 권고가 반영되지 않는 일종의 절대 영역이 존재하는 것이 인권 대책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라고 본다"며 "이에 대한 구조 개혁이 없다면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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