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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품가 140% 배상하라?"…현대중공업의 이상한 셈법

등록 2022.12.14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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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현대중공업과 에너지엔이 체결한 사우디아라비아 슈퀘이크발전소 급수가열기 공급 계약 중 '잠재 하자' 책임을 규정한 부분. (사진=에너지엔 제공) 2022.12.1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현대중공업과 에너지엔이 체결한 사우디아라비아 슈퀘이크발전소 급수가열기 공급 계약 중 '잠재 하자' 책임을 규정한 부분. (사진=에너지엔 제공) 2022.12.1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유희석 기자 = 현대중공업이 급수가열기 협력업체에 요구한 손해배상 금액이 당초 납품가격을 훌쩍 뛰어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외 발전소 건설 사업에서 급수가열기 설비에 하자가 발생하자, 제품 비용은 물론 운송 및 교체 비용까지 모두 협력업체에 넘긴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협력업체가 배상을 거부하자 중소기업이 대응하기 힘든 영국 국제중재재판소(ICC)에 제소하며 압박했다.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2013년 수주한 사우디아라비아 슈퀘이크화력발전소 건설을 위해 국내 발전설비 전문기업 에너지엔과 244억원 규모의 납품 계약을 체결했다. 에너지엔이 급수가열기 총 4세트(1세트당 11기) 44기를 공급하는 계약이었다. <관련 기사 12월 9일자 '무기한 하자보수' 요구…현대중공업 '갑의 완력' 참고>

현대중공업과 에너지엔은 이 계약을 체결하며 하자보증 기간을 납품 후 48개월 또는 완공 후 24개월로 정했다. 그러나 계약서 부속 조항에는 실제 발견되지 않은 숨은 결함을 뜻하는 '잠재하자(Latent defect)' 보증 기간을 '무기한'으로 하는 조항을 넣었다. 사실상 협력업체인 에너지엔에게 무한 하자보수 책임을 지운 셈이다.

슈퀘이크발전소는 지난 2018년 완공됐다. 이후 지난해 초 에너지엔이 공급한 급수가열기 중 4기에서 균열이 발생했다. 공교롭게도 급수가열기 11개 4세트 중 7번째 가열기 4기가 문제를 일으켰다. 현대중공업은 발주처인 사우디아라비아 전력청 요구로 국내 다른 기업에서 급수가열기 4기를 새로 조달해 균열이 생긴 급수가열기를 교체했다.
 


이후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8월 계약서 상 잠재하자 보증 책임을 이유로 급수가열기 4기 교체로 발생한 비용 3200만 달러(당시 환율 350억원)을 에너지엔에 청구했다. 한국에서 새로 급수가열기를 조달하고, 사우디아라비아로 운송해 교체하는 과정에 들어간 비용 전액을 요구한 것이다. 이 350억원 금액은 급수가열기 44기 납품 금액의 140%에 달한다.
[서울=뉴시스] 유희석 기자 = 서울 서초구 양재천로에 있는 에너지엔 본사. 2022.12.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유희석 기자 = 서울 서초구 양재천로에 있는 에너지엔 본사. 2022.12.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에너지엔이 배상을 거부하자 현대중공업은 전광석화처럼 법적 절차를 밟았다. 현대중공업은 에너지엔을 상대로 1차로 2000만 달러를 지급하지 않으면 ICC에 제소하겠다고 통보했다. 실제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0월 ICC에 에너지엔을 제소했다.

에너지엔은 중소 협력사로는 감당하기 힘든 막대한 소송 관련 비용을 지불하며 법적 대응을 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사우디아라비아뿐 아니라 쿠웨이트 등 에너지엔과 계약한 다른 사업장에서도 '잠재하자 무한 책임' 조항을 넣은 것으로 드러났다.

에너지엔 관계자는 "국내 고성·강릉·보령·당진 등의 화력발전소에 1000㎿급 급수가열기를 공급했지만 단 한 번도 균열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며 "만약 문제가 발생했더라도 EPC(설계·시공·조달)를 맡은 원청(현대중공업)이 외국 발주처 대신 중소 협력사를 압박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대중공업은 ICC 대신 국내에서 시비를 가리자는 우리 측 요구도 무시했다"며 "사우디 사업에서 발생한 막대한 손실의 일부를 중소 협력사에 전가해 보전하려는 대기업의 횡포"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후 협상 과정에서 현대중공업이 손해배상 금액을 50억원으로 낮추고 ICC 중재 취하를 제안했지만, 이마저도 중소기업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에너지엔과 계약은) 정당하게 체결됐다"며 "ICC 제소도 해당 계약이 영국법을 준거하고 있기 때문에 ICC에 제소한 것이지 협력사를 힘들게 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계약서에 따라 하자 발생시 교체 비용을 청구하는 것은 계약서에도 나와 있는 내용이다"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heesuk@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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