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익산 토성' 61년 만에 '익산 오금산성'으로 명칭 변경
[서울=뉴시스] 익산 토성 입구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4.07.1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전라북도 오금산에 자리한 '익산 토성' 이름이 사적 지정 61년 만에 바뀐다.
19일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문화유산위원회 산하 사적 분과는 최근 열린 회의에서 명칭 변경 검토 안건을 가결했다.
이 안건에 따르면 1980년부터 진행된 발굴조사로 익산산성이 백제시대 말 처음 지어져 통일신라 말 고려 초까지 사용됐음이 확인됐고 2017∼2023년 성벽에 대한 발굴결과 토축보다는 석축으로 조성됐음이 확인돼 명칭 변경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된 '익산 토성'은 무왕이 금 다섯 덩어리를 얻은 곳이라 이름 지어졌다고 전해지는 금마 오금산 정상부와 남쪽 작은 골짜기를 에워싼 산성이다. 오금산성(五金山城), 보덕성(報德城)으로 불리기도 했다. 현재 남문이 있던 자리, 성문 밑으로 개울물이 흐르도록 했던 수구자리, 건물이 있던 자리가 남아있다.
조선총독부 고적자료에 '토축성으로 그 둘레가 육정반(六町半)' 이라는 기록이 있다. 북쪽 성벽에 일제강점기에 설치된 표석에 ‘고적 제127 익산토성 (古蹟 第一二七 益山土城)’이란 문구가 기록되어 있어 일제강점기부터 '익산 토성'으로도 불리었음을 알 수 있다.
[서울=뉴시스] 익산 토성 전경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4.07.1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러나 익산 토성은 흙과 돌을 사용해 쌓았다. 조성 시기는 발견된 유물들을 볼 때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으로 추정하고 있다.
1980년대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유물 대부분은 흙으로 만든 그릇 조각과 기와 조각으로서 백제, 통일신라, 고려시대로 구분된다. 발견된 유물 중 백제 말 기와류와 토기류가 주종을 이룬다.
문화유산위원회는 "최근 발굴조사 결과로 보아 토축성이 아닌 소위 토심석축으로 된 석성으로 확인되고있어, 현재 지정 명칭과 부합되지않아 명칭 변경의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며 "유적이 위치한 산의 지명이 예부터 오금산으로 불리워왔던 것이 고지도에서 확인되고 있으므로 사적 지정 명칭 부여 원칙에 따라 지명을 차용해 ‘익산 오금산성’으로칭하는 것이 가장적절하다고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국가유산청은 이날 정부 관보를 통해 명칭 변경을 고지하고 예고 기간 30일 동안 각계 의견을 들은 뒤,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확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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