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
'헬기사격' 국과수보고서
5.18 진실찾기 큰 첫걸음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 여부를 규명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보고서는 최초의 정부 기록이라는 의미와 함께 5·18의 역사를 새로 써야 할 정도로 획기적인 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계엄군은 1980년 5월21일 오후 1시께 전남도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군중을 향해 집단발포를 했다. 같은 시각 공중에서 헬기 사격이 이뤄졌고 지상과 공중에서 동시 사격으로 저항할 수도 없는 상태의 시민들에게 무자비하게 총격을 가해 살상했다면, 이는 치밀한 작전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자위권 발동 차원에서 발포를 했다"는 계엄군의 주장은 설득력을 완전히 잃고 거짓이 된다. 더욱이 국과수는 헬기에서 기관총을 난사하는 행위인 '기총소사'가 이뤄졌을 가능성도 열어뒀다. 국과수는 "일부 '탄환'이 전일빌딩 10층 천장 공간에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다. 탄환이 발견되면 사용 총기류에 대한 규명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기관총 탄환이 발견되면 군이 민주화 시위에 나섰던 시민들을 사실상 적으로 규정하고 작전에 나섰다는 것을 입증하게 된다. 광주시는 진실규명을 위해 국과수에 추가 발굴 조사를 의뢰할 계획이다. 5·18기록관도 광주은행으로부터 기증받은 본점 10층의 '구멍 뚫린 유리창 3점'을 국과수에 감식 의뢰하며 진실 규명에 나섰다. 지난 1997년 11월 금남로에 있던 본점을 옮기는 과정에서 광주은행 측은 '5·18 당시 총알에 뚫린 유리창 3점'을 광주시에 기증했다. 유리창은 지난 2015년 금남로에 5·18기록관이 개관하자 옮겨졌고 줄곧 전시실과 수장고에 보관됐다. 5·18기록관은 전일빌딩 건물 10층에서 국과수가 발견한 150여 점의 탄환이 헬기 사격에 의한 것이라는 가능성이 크다는 보도가 이어지자 국과수에 감식을 의뢰했다. 결과에 따라 5·18 헬기 사격 등의 의혹을 풀어줄 또 하나의 증거가 될 수 있다. 완전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앞으로 풀어야할 과제도 뚜렷하다. 베일에 가려져 있는 집단발포 명령의 전모를 밝히고, 발포 명령자를 찾아내는 것이 시급하다. 발포 명령자를 밝혀내 역사의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 5·18 진상규명의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다. 사실 5·18 진상규명 운동은 1987년 6월 항쟁을 계기로 불붙기 시작했다. 노태우 정부가 민주화합추진위원회를 꾸리고 여소야대 국회이던 1988년 7월부터 1989년 12월 말까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 소위 '광주청문회'가 열렸다. 하지만 관련자들의 진술 거부와 자료 부족, '국민 화합을 해칠 수 있다'는 논리 등이 진실의 길을 가로막았다. 김영삼 정부 들어서는 '선 진상 규명, 후 명예 회복'을 촉구하는 국민적 요구 속에서 '12·12, 5·18 고소·고발사건'이 이어졌지만 검찰과 국방부는 훗날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결정했다. 그러던 중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정 축재 사건이 터지면서 12·12, 5·18 특별수사가 이뤄졌다. 그 결과 전두환·노태우·허화평 등 5공 실세 15명이 처벌을 받았지만 핵심 문건인 군부대 이동 상황과 작전 일지, 계엄군수 등은 끝내 공개되지 않았다. 당시 '5·18 학살자 재판 회부를 위한 광주·전남공동대책위원회'는 "검찰 수사가 가해자 중심으로 진행돼 학살과 만행 자체가 축소됐다"며 ▲ 도청 앞 집단발포의 사전 계획과 최초 발포 상황 ▲ 헬기 기총 소사 ▲ 대검 양민 학살 ▲ 시외곽 양민 학살 ▲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등을 미해결 의혹으로 지적했다. 이후 5·18특별법이 제정되고 계엄군이 양심 선언을 하고, 국방부 내에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까지 설치됐지만 최초 발포 명령자, 사망자와 실종자, 행방불명자 수, 헬기 기관총 사격, 암매장 등 핵심 의혹들은 밝혀지지 않았다. 오히려 3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5·18 사망자 수는 제대로 정리되지 않고 있다. '5·18 기록자, 걸어 다니는 5·18백서'로 불리는 정수만(71) 5·18연구소 비상임연구원(전 5·18 유족회장)이 정사 편찬을 위해 최근 정리한 5·18 사망자(1980년 5월18~27일 사망)는 165명, 부상 후 사망자(5월28일 이후 사망) 561명, 실종자는 67명 등 793명이다. 반면 광주시와 전남도가 올해 발간한 '민주장정 100년, 광주·전남 지역 사회운동사'에는 '5·18 유공자 5517명 중 사망 155명, 행방불명 81명, 상이 후 사망 110명' 등으로 기록돼 있다. 정 전 회장은 "광주시는 보상을 해준 숫자로 집계한다. 가족 없이 시체만 있는 사람은 뺀다. 시 통계와 다른 이유"라고 설명했다. 암매장도 마찬가지다. 2001년 이후 공수부대원 등의 증언이 이어졌지만 유골 발굴 탐사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고, 검찰의 수사 기록 공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암매장 문제도 십 수 년째 짙은 안개 속에 파묻혀 있다. 그러는 동안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정권에 들어서며 5·18은 '폭동', '북한군 개입' 등 왜곡과 폄훼에 시달리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수년째 되풀이되고 있다. 계엄군의 헬기 사격 여부를 규명한 국과수의 최초 보고서가 더욱 중요한 이유다. 이를 계기로 5·18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일고 있다. 정치권은 "국과수 감정 결과로 37년간 이어졌던 헬기 기총소사에 대한 광주시민들의 증언이 사실이었다는 게 증명됐다"며 "국방부는 헬기 기총사격에 대한 실상과 작전의 일체 내용, 더 나아가 진압 발포명령자도 밝혀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윤장현 광주시장도 "정부는 서둘러 5·18 진상을 완벽하게 규명하고, 당사자들은 역사 앞에 양심적으로 고백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수만 전 회장은 17일 "5·18 민주화운동은 밝혀진 게 아니라 아직도 한참 멀었다"며 "중요한 것은 역사는 더디지만, 진실을 향해 흐르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격명령을 한 것은 당시 육군참모차장이라는 증언이 있었다"며 "국과수의 보고서가 역사의 실체적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단초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guggy@newsis.com

섹션별 기사
세종
부산
대구/경북
인천
광주/전남
대전/충남
울산
경기동부
경기남부
경기북부
강원
충북
전북
경남
제주

뉴시스 초대석

"올해는 '부모교육의 원년'...
 저출산 극복에도 한몫 할 것"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