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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스위스 국민투표, 법인세 인하 부결…정부 "기업 이탈 우려"

등록 2017.02.13 15:5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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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버작센=AP/뉴시스】스위스 국민이 12일(현지시간) 오버작센에 있는 한 투표소에서 개표작업을 하고 있다. 스위스에서 이날 열린 국민투표에서 이민 3세대 귀화 요건 완화 법안이 통과됐다. 2017.02.13

【 오버작센=AP/뉴시스】스위스 국민이 12일(현지시간) 오버작센에 있는 한 투표소에서 개표작업을 하고 있다. 스위스에서 이날 열린 국민투표에서 이민 3세대 귀화 요건 완화 법안이 통과됐다. 2017.02.13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직접 민주주의를 실천해온 스위스의 국민들이 법인세를 낮춰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며 정부가 제출한 세제개혁안에 퇴짜를 놓았다. 

 스위스 정부는 법인세 인하가 국가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총력전을 펼쳤지만, 소득세 인상·복지혜택 감소를 우려한 '민의'를 마지막 순간 넘어서지 못했다.

 12일(현지시간)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스위스 정부는 연방 법인세 인하를 골자로 한 세제개혁안을 이날 국민투표에 부친 결과,  찬성 41%, 반대59.1%로 부결됐다고 밝혔다. 스위스는 당초 이번 법인세 인하안을 오는 2019년부터 시행한다는 계획이었지만, 막판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앞서 6일 스위스 여론조사 기관 타메디아가 지난 2∼3일 유권자 1만3997명을 대상으로 세제개편 법안을 놓고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반대와 찬성이 각각 43%와 40%로 나타났다.

 이번에 부결된 법인세 인하안은 ▲연방 세와 별도로 납부해야 하는 주(州)세(칸톤세)를 낮추고 ▲지적재산권으로 올린 수익에 대해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특허 박스제 도입 등을 뼈대로 한다. 스위스의 26개 주(칸톤)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은 연방 세와 별도로 주별로 12.3%∼24.2%에 달하는 이른바 '칸톤세'를 내고 있다.

 법인세 인하안 부결은 스위스 납세자들의 뿌리깊은 불만을 반영한 것으로 분석됐다. 스위스 정부가 개인 납세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기업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특혜를 베푼다는 것이다. 법인세를 낮추면 세수확보를 위해 결국 소득세를 높이거나, 사회보장(social services)을 줄일 수 밖에 없다는 게 반대론자들의 논리다.

 스위스 연방 법인세율( 21.2%)이 호주, 독일, 캐나다를 비롯한 경쟁국들에 비해 결코 높은 수준이 아니라는 점도 국민투표 부결에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주요 국가들의 법인세율은 ▲한국 22%▲영국 20% ▲캐나다 26.8% ▲일본 30% ▲호주 30% ▲독일 30.2% ▲프랑스 34.4% ▲미국 38.9% 등으로 대부분 스위스보다 높다. 

 스위스 연방 법인세의 실효세율은 8%에 불과하다. 하지만 연방세 외에 각 주가 부과하는 주세(칸톤세)까지 더하면 법인세는 주별로 최저 12.3%(루체른)에서 최고 24.2(제네바)%로 상승한다. 실효세율에 주세를 더한 뒤 계산한 스위스의 평균 법인세율은 21.2%다. 이러한 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3%에 비해서도 여전히 낮다.

 스위스 정부가 경쟁국들에 비해 낮은 법인세 수준에도 세제개혁을 추진해온 것은 ▲임금이 상대적으로 높은데다 통화(프랑화)가치가 높은 사정을 감안한 것이다. 경쟁국에 비해 높은 임금·통화 관련 비용을 감안할 때 법인세를 낮추는 쪽으로 세금제도를 대폭 손질해야 다국적 기업의 이탈을 막고, 새로운 기업을 유치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국민투표 부결의 후폭풍은 거셀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 정부는 유럽연합(EU)의 보복 압박을 더욱 강하게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는 EU회원국이 아니지만 EU집행위와의 오랜 줄다리기 끝에 지난 2014년 법인세 개혁을 약속한 바 있다. EU집행위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은 그동안 지주회사, 조인트 벤처 등에 낮은 세율의 세금을 매기거나 칸톤세 등을 면제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스위스에 세제 개혁을 압박해왔다. 따라서 이번 국민투표 결과로 EU와의 법인세 개혁 약속이 이행되지 못하게 되면서, 스위스 기업들은 EU로부터 보복조치를 당할 수있게 된다. 이렇게 될 경우를 피하기 위해 기업들이 스위스에서 이탈하는 것은 정부와 경제계는 가장 우려하고 있다.

 윌리 마우어 스위스 재무장관도 이날 국민투표가 부결된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스위스는 법인세제를 뜯어고치기로 약속했다”면서 “하지만 국민들이 표로 거부한 이 계획을 다시 고칠 여지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세제 개혁안을 다시 손질해 재상정할 수 있지만, 그럴 여지가 별로 없다는 뜻이다. 그 역시 기업들이 스위스를 빠져나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스위스 기계전기전자협회(Swissmem)도 성명을 내고 “이번 국민투표 부결은 기업들의 투자 환경에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서 “ 스위스의 산업 환경이 악화되고, 일자리 감소를 부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FT는 이번 스위스 세제 개편안에 대한 국민투표 부결의 원인은 ‘반(反) 기득권 기류(anti-establishment mood)’가 스위스까지 미쳤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스위스 세제 개편안에 대한 국민투표 부결 역시 영국의 브렉시트(EU 탈퇴) 국민투표 가결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의 당선 등 처럼 반 기득권 기류에 따른 결과라는 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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