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트리·피터슨 목사 부인 "전두환 쿠데타로 5·18 발발"
5·18재단 찾아 기자회견…계엄군 만행·헬기사격 목격담 등 전해
"북한 특수군 개입 사실 아냐…광주시민 민주화 위해 운동·시위"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고(故) 찰스 헌트리·아널드 피터슨 목사의 부인 마사 헌트리(오른쪽)·바바리피터슨 여사가 15일 오후 광주 서구 치평동 5·18 기념재단 시민사랑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18.05.15. [email protected]
헌트리·피터슨 목사 부인 마사 헌트리·바바리 피터슨 여사는 이날 광주 서구 치평동 5·18 기념재단 시민사랑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광주항쟁 당시 전두환씨가 쿠데타를 일으켜 무고한 광주시민이 죽거나 다치는 것을 목격했다"며 이 같이 말했다.
이들은 북한 특수군 개입설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다. 광주시민은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위와 운동을 했다. 계엄군 총칼에 쫓기면서도 정말 용감하게 맞섰다"며 "전두환씨가 자기 집권을 위해 잔인한 무력을 써 희생이 많이 발생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로 선동하고 사형을 선고한 것도 5·18 발생의 한 배경"이라고 전했다.
5·18 당시 헬기 사격을 증언한 피터슨 목사의 부인 바바리 피터슨 여사는 "사택 2층에서 남편과 함께 헬기가 기총사격하는 것을 보고 두 아들(당시 5·8살)을 지하실로 대피시켰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전두환씨가 남편을 '사탄'이라고 한 것은 사실이 아니다"며 "남편은 광주를 사랑했다"고 덧붙였다.
마사 헌트리 여사는 5·18 당시 계엄군의 잔인한 무력 진압과 광주시민이 부상자를 옮기던 장면을 목격했던 일화, 미국 한 언론매체에 잘못 보도된 사실을 바로 잡은 일화 등을 소개하며 "남편은 항상 '빛과 진실은 어둠을 이긴다고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타계한 헌트리 목사는 1980년 5월 광주기독병원 원목실장으로 재직하면서 5·18 참상을 촬영했다. 사택 지하 암실에서 사진을 인화해 지인들을 통해 미국 등지로 보냈다.
부상자들 몸에서 나온 계염군의 총알과 엑스레이 필름을 챙긴 뒤 훗날 주한 미국대사관에 전했다.
헌트리 목사는 위르겐 힌츠페터 고 독일 기자와 사택에서 인터뷰를 했으며, 항쟁 기간 계엄군에 쫓기던 시민과 학생들을 보호했다.
헌트리 목사 유족은 고인의 뜻에 따라 유골 일부를 오는 17일 광주 남구 양림동 선교사묘지에 안장한다.
피터슨 목사는 1975년부터 광주에서 가족과 함께 선교사로 활동했다.
역사학 교수이기도 했던 피터슨 목사는 5·18 당시 "피신하라"는 미군의 제안을 거절하고 광주에 남아 계엄군의 만행을 사진과 수기로 남겼다.
또 사택 2층에서 계엄군의 헬기 기관총 사격을 목격한 뒤 1995년 5·18 회고·증언록을 통해 계엄군 헬기 사격을 공식화했다.
피터슨 목사는 증언록에 5월18일 '공수부대가 여성들에게 속옷만 입힌 채 구타했다', 5월20일 '대검으로 목을 찔렀다'는 내용 등도 담았다.
1989년 국회 광주특위 청문회에서 목격담을 증언했고 1990년 귀국했다. 2015년 9월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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