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를 혐오한다⑥]헤이트 스피치를 법의 심판대에 세워라
일상화한 혐오, 표현의 자유 대신 규제 필요성
일본, 혐한 시위 확산에 헤이트스피치법 도입
독일, SNS 혐오표현 방치 시 천문학적 벌금형
한국은 제도적 장치 등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혐오·차별 선동, 국가기관의 무대응에도 책임"
"사후적 형사처벌보다 차별금지법 제정 우선"
"차별 사안에 정부·지자체 적극적 조치 의무화"
"사회 의식·구조 바꾸는 과정, 처벌과 병행돼야"
【서울=뉴시스】조인우 기자 = 2007년 일본 온라인 상에서 ‘재특회’(재일 한국인의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모임)가 결성된 것을 시작으로 행동하는 보수를 표방하는 이들이 인터넷을 넘어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1주에 두 번 이상 일본 전역의 코리안타운에서 혐한 발언 및 인종차별이 담긴 헤이트 스피치를 외치는 재특회의 목소리가 점차 거세지자 그들을 막기 위해 육체적인 압력을 가하며 재특회를 봉쇄하는 일본의 또 다른 얼굴, ‘카운터스 행동대-오토코쿠미(남자조직)’가 나타났다. [email protected]
일본에는 혐한 표현을 확산시키는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 재특회라는 단체가 있다. 이들은 한국인 상점 등이 모여있는 도쿄 신오쿠보 등지에서 가두행진을 하며 헤이트스피치(혐오발언)를 내뱉거나 조선학교 근처에서 확성기를 사용해 욕을 하는 등 아이들을 상대로도 언어폭력을 자행한다.
재특회는 2009년부터 혐한 시위를 벌여왔고 비슷한 성향의 단체들이 우후죽순 늘면서 헤이트 스피치 집회가 급속히 증가해 사회 문제로 비화됐다.
이에 일본은 2016년부터 '본국(일본) 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의 해소를 위한 대응 추진에 관한 법률', 이른바 헤이트 스피치 억제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혐오표현을 형사처벌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그 효용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무대응 상태'에 머물 수는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서울=뉴시스】전신 기자 = 22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난민대책국민행동과 제주난민대책도민연대가 기자회견을 열고 이슬람 가짜 난민 추방을 촉구하고 있다. 2018.08.22. [email protected]
혐오표현 규제를 논할 때 항상 떠오르는 반론은 이로 인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위험이 있다는 측면이다. 이러한 딜레마 때문에 혐오표현에 대한 법제화가 이뤄진 국가에서도 처벌 강도는 천차만별이다.
일본의 헤이트스피치법은 차별 행위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사회에 던지고 있다. 하지만 어긴다고 해서 제재나 처벌은 없는 일종의 '이념법'이다. 이 때문에 법 조항만 있을 뿐 실제 혐오표현을 억제하는 효과는 미미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독일에서는 비교적 강력한 헤이트스피치법을 운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온라인 상의 헤이트스피치 콘텐츠를 규제하지 않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제재를 가하는 식이다.
독일 의회는 인종·성·연령·국적 등 특정 집단에 대해 선동적인 폭력 발언이 담긴 콘텐츠를 24시간 이내에 제거하지 않는 플랫폼에 대해서는 최대 5000만 유로(약 645억원)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지난해 6월 통과시켰다. 테러나 난민 유입 등으로 반(反)이슬람 정서가 확산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처벌을 한다고 해서 혐오표현이 감소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실증적으로 입증된 바 없다.
혐오표현 연구자인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자신의 저서 '말이 칼이 될 때'를 통해 "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혐오표현금지법을 시행하고 있지만 최근 반이슬람·반이민 정서가 커지면서 극우세력에 의한 강력범죄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며 "표현 단계에서 강력한 입법 조치를 취했음에도 파생하는 범죄행위를 막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혐오표현을 형사범죄화한다고 해도 형사범죄화할 수 없는 혐오표현은 다른 방법에 의해 규율해야 하고 근본적 문제 해결은 다른 형성적 조치들에 맡겨질 수밖에 없다"며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효과를 과장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14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성소수자 최대 행사인 제19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참가자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다. 2018.07.14. [email protected]
방법이나 성격은 다르지만 해외에서 혐오표현 규제를 위한 갖가지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제도적 장치나 움직임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최근 들어 성대결 성격의 혐오표현과 예멘 난민 문제 등을 통해 불거진 이방인에 대한 차별의 시선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차별시정기구 역할을 하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올해 안으로 혐오표현 가이드라인을 내놓겠다며 실태조사를 하고 있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혐오표현의 개념을 정의, 범주화하고 형사처벌 대상과 위원회 조사 등의 규제 대상을 명료화하는 작업이다.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긴 하지만 올 초 혐오표현 특별 대응팀을 꾸리겠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한 것과는 달리 9월에 접어든 현재까지도 팀도 만들어지지 않아 당초 발표와는 규모 면에서 거리가 있다.
차별금제법제정연대 집행위원인 박한희 변호사는 지난달 열린 '선거 과정에서의 혐오표현 대응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점점 더 노골적이고 조직화된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선동은 국가기관의 무대응에도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박 변호사는 "시민사회의 적극적 활동과는 달리 행정부와 입법부는 나날이 심해지는 혐오표현에 대해 적극적 대처를 하기는커녕 때로는 동조했다"며 "이러한 정부의 태도를 비판, 감시해야 하는 국가인권위 등도 지속된 혐오표현에 대해 구체적 대처나 예방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14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성소수자 최대 행사인 제19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진보 기독교 단체 참가자가 피켓을 들고 혐오를 멈출 것을 촉구하고 있다. 2018.07.14. [email protected]
전문가들은 혐오표현이 이미 터져나온 뒤 사후적으로 형사처벌을 하는 것보다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우리 사회에 깔려있는 차별의 구조를 타파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 법은 헌법의 평등이념에 따라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국, 학력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자 하는 법률이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차별을 예방해야 할 책무를 주는 법이기 때문에 사회에 차별 이슈가 생겼을 때 정부 등이 적극적 조치들을 수행할 수 있다.
혐오의 확산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면서 최근 정부에서도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법무부는 최근 내놓은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에 차별금지법 제정 추진 의사를 밝혔다.
다만 종교계, 특히 개신교의 반대가 거센 만큼 입법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2006년부터 추진돼 왔지만 동성애 반대단체와 보수적 개신교의 반대로 때마다 매번 법 제정이 무산된 바 있다.
기독교 단체들이 가장 앞장서서 법을 반대하고 있긴 하지만 기업들도 법 제정을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경총을 비롯한 재계는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막는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낸 바 있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성별이나 학력 등을 둘러싸고 채용 및 인사에서 여러 문제가 파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인 인권운동사랑방의 미류 활동가는 "혐오표현은 말을 예쁘게 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차별의 관습을 통해 터져 나오는 것"이라며 "표현 자체를 형사처벌한다면 어디까지 처벌할 수 있는지, 무엇이 혐오인지 등의 소모적인 논란을 겪느라 정작 중요한 차별의 문제는 도외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구조를 바꿔나가는 과정과 병행되지 않으면 혐오표현을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효과를 볼 수 없다"면서 "타인을 향해 모욕하는 발언을 공공연히 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사회적 분위기나 의식을 차별금지법을 통해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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