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장' 김기춘의 추락…1인자만 추종해온 40년 영욕
【서울=뉴시스】김병문 학생기자 =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작성관리를 주도한 것으로 거론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들어가고 있다. 2017.01.20. [email protected]
유신시절부터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무한 신뢰'
'초원복집 사건' 등 위기마다 회생해 최고령 비서실장까지
박 대통령 호위무사·정권 행동대장 노릇이 결국 족쇄로
【서울=뉴시스】임종명 기자 = 김기춘(78)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21일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다.
'왕실장', '기춘대원군' 등으로 불리며 박근혜 정권 실세로 꼽힐 정도로 위세를 자랑했던 김 전 실장이었지만 하루 아침에 구속 피의자로 전락했다.
김 전 실장은 거의 평생을 승승장구하는 삶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40여년 간 검사,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 국회의원 등을 맡으면서 늘 권력의 핵심으로 살아왔다.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인연은 박정희 전 대통령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김 전 실장은 1972년 최연소로 유신헌법 제정 과정에 참여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눈에 들었다. 1974년에는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 부장으로 활동하면서 박 전 대통령과 인연을 이어갔다. 정치검사·공안검사로 두각을 나타낸 것이다.
같은 해 8월15일 육영수 여사 총격 사망 이후에는 피의자 문세광씨를 수사하면서 묵비권을 행사하던 문씨의 자백을 받아냈다는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때부터 김 전 실장은 박 전 대통령이 총애하는 젊은 검사로 이름을 날렸으며 박근혜 대통령과도 신뢰를 쌓는 토대를 구축했다.
실제로 김 전 실장은 이후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딴 '정수장학회' 1기 장학생으로서, 장학회 출신 모임인 '상청회' 회장을 지냈다.
김 전 실장에게 닥쳤던 첫번째 위기는 일명 '초원 복집' 사건이다.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관리의 '설계자'로 거론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해 계단을 오르고 있다. 2017.01.20. [email protected]
이 사건은 결국 문제를 제기한 측 인사들만 구속되고 김 전 실장은 무사한 채로 마무리됐다. '법 기술자'로 불리는 그의 면모가 제대로 드러난 사례로 볼 수 있다.
이후 사회적 비판이 거세자 잠시 변호사로 활동하다 1995년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에 취임하면서 계속 권력의 주변부를 맴돌았다.
KBO총재에 취임하고 1년이 지난 1996년에는 15대 총선에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지역구는 새누리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의 텃밭이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지역구였던 거제였다.
2004년 3월에는 그의 두번째 위기가 왔다.16대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으로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을 적극 주도했다가 역풍을 맞은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같은 해 치러진 총선에서 생환하면서 16·17대까지 내리 3선에 성공했다.
이후 2008년 총선에서 공천 탈락했지만 18대 대선 때에는 박 대통령의 원로 참모진인 이른바 '7인회'의 중심 인물로 활동하면서 권력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2013년에는 박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역대 최고령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김 전 실장을 향한 박 대통령의 신뢰는 아버지 못지 않게 두텁다. 2015년 1월 신년기자회견에서의 박 대통령 발언은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당시 박 대통령은 "우리 비서실장께서는 정말 드물게 사심이 없는 분"이라고 김 전 실장을 치켜세웠다. 또 "청와대에 들어올 때도 다른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고 제가 요청하니까 마지막 봉사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있다"고 평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전폭적인 신뢰는 이제 김 전 실장에게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1인자 한 사람에게만 맹목적으로 충성해온 김 전 실장은 현 정권에서 사상의 자유를 옥죄는 등 사실상 유신의 부활을 꿈꾸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행동대장 역할을 했다. 과거와 달리 이젠 더 이상 그의 뒤를 봐줄 1인자가 없으니 그가 사법처리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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