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남궁민 "연기는 애인, 보기싫다가도 없으면 못산다”
또 하나의 인생작 ‘닥터 프리즈너’ 열연
남궁민
작년 7월부터 지난 15일 막을 내릴 때까지 핸드폰으로 적은 메모만 100개가 넘는다. SNS에 공개한 극본도 고3 수험생이라고 착각할 만큼 메모로 가득했다. 첫 등장신은 3개월을 고민했다. 재벌 사모님 ‘오정희’(김정난)에게 판코니 빈혈을 설명하는 장면인데, 대사 양이 어마어마했다. 이 신 하나로 ‘‘나이제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예전부터 이렇게 메모하며 극본을 분석했다. 쉴 때도 다른 연기자들 모니터하고, 어떤 식으로 연기하면 좋은지, 발성 차이는 어느정도 둬야 하는지 등을 고민한다. 혼자 녹음하고 카메라로 영상도 찍어 본다. 핸드폰에 연기노트 엑기스가 있다. 연기하면서 느끼고 실수한 점 등을 써 놓는다. 이렇게 메모하고 계속 보다보면 좀 더 발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 처음 연기 시작했을 때는 일기 형식으로 적다가 스마트폰이 생긴 뒤로는 폰에 적는다. 난 연기 빼고는 잘 하는 게 없다. 다들 ‘너는 연기할 때가 제일 낫다’고 하더라. 하하.”
남궁민은 2017년 KBS 2TV ‘김 과장’ 이후 ‘또 인생작을 만났다’는 평을 들었다. ‘김과장’ 때는 일부러 과장된 느낌의 연기를 했다면, ‘닥터 프리즈너’에선 실제로 말하는 것처럼 호흡을 조절했다. 크게 혹은 작게, 던지듯 혹은 눌러서 말하며 호흡을 연구했다. 나이제는 아주 못되거나 착하지도 않지만, “냉정함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고 분석했다. 차갑지만 정적인 느낌을 준 까닭이다.
나이제는 돈도 없고 백도 없는 ‘흙수저’ 출신이다. 뛰어난 칼솜씨로 대학병원 응급의학센터에서 에이스로 활약했다. 2001년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감독 김대승)로 데뷔한 후 조·단역을 거쳐 주연으로 성장한 남궁민과 닮은 점이 많다. “처음 연기 시작했을 때 집이 부유하거나, 외모가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연기를 사랑했다”며 “주인공을 한 지 3년 정도 됐다. 나이가 들어서 주인공을 하다보니 여러 가지가 보인다. 제작사, 방송사도 돈 벌어야 하지 않느냐. 옛날에는 PPL(간접광고)하라고 하면 ‘저걸 들라고?’라며 싫어했다면, 요즘은 ‘어떻게 하면 상황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나이제의 개인 복수극으로 시작했지만, 부패 권력과 사회 부조리를 들추면서 시청자들에게 통쾌함을 안겼다. 대립각을 세운 교도소 의료과장 ‘선민식’ 역의 김병철(45)과 호흡이 빛났다. ‘닥터 프리즈너’는 두 캐릭터가 주축을 이룬만큼 ‘어떻게 하면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 ‘나이제가 선민식한테 당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등을 함께 고민했다.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었다. 형과 서로 주고 받으면서 연기하는 게 정말 좋았다”면서도 “선민식의 캐릭터 특징이 좀 더 살았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고 짚었다.
“처음 감독, 작가님 만났을 때도 ‘나이제가 3년 동안 어떤 일 때문에 복수하려고 마음 먹었고, 어떻게 복수 계획을 세웠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싶다’고 했다. 8회까지는 극본이 짜임새 있었는데, 시간이 촉박하다 보니 처음 기획한 방향에서 살짝 어긋났다. 처음에는 나이제의 감정에 의한 행동이 주를 이뤘는데, 나중에는 마치 상황을 풀어가는 셜록홈즈가 된 것 같았다.”
평소에는 어떨 때 악한 모습을 보이는지 궁금하다. “나이제처럼 악하지는 않다”면서도 “준비해서 나왔는데 촬영이 미뤄질 때 짜증을 좀 부리는 편”이라며 웃었다. “요즘은 연예인들이 악인이 되면 안 되는 세상 같다. 그래서 난 보통 집에 많이 있는다”며 “우리나라는 동양적 사고관이 강하니까, 연예인은 도덕적으로 완성된 사람이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일부 몰지각한 연예인들이 하는 행동이 마치 연예인 전체의 행동처럼 화두가 되지 않느냐. 공인이기 때문에 항상 조심하려고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데뷔 20년차가 됐지만 인생 캐릭터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며 연기 욕심을 드러냈다. 대상을 목표로 연기하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준다면 감사히 받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후배들이 가끔 ‘선배는 어떻게 그렇게 연기를 잘하느냐’고 물으면 항상 말한다. 나도 카메라 앞에 서면 긴장하는 건 똑같다. 연기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캐릭터를 잘 소화하느냐가 중요하다. 데뷔 초에는 욕도 많이 먹었다. 조명 쓰러지면 ‘저 새끼 때문에!’라며 혼나고, 내가 찍기만 하면 해가 떨어지곤 했다. (웃음) 차에서도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기대 있었던 적이 없다. 언제 부를지 모르니까. 연기는 애인 같다.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히기도 하지만, 또 이 사람 때문에 즐겁고 행복하다. 꼴도 보기 싫을 때도 있지만, 막상 없어지면 살아갈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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