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안병훈 "7인회, 박 전대통령 출마때 선 그었다"

등록 2017.04.12 09:30:27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서울=뉴시스】안병훈 회고록 '그래도 나는 또 꿈을 꾼다'. 2017.04.11 (사진= 기파랑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안병훈 회고록 '그래도 나는 또 꿈을 꾼다'. 2017.04.11 (사진= 기파랑 제공) [email protected]

■ '나는 또 꿈을 꾼다' 회고록 출간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안병훈(79) 통일과나눔재단 이사장(전 조선일보 대표이사 부사장)은 '한국 현대사와 함께 한'이라는 수식어가 마땅하다.  

 조선일보사에서 편집국장, 편집인, 대표이사 부사장을 지내며 평생을 언론 일선에서 보낸 그는 한국의 현대사를 면밀히 톺아봐왔다.  

 노련함을 갖춘 그는 여전히 청년의 때를 보내고 있다. 한국나이로 팔순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출근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회의를 하고 일을 꾸민다. 일과 후에도 미팅을 겸한 저녁 식사라든가, 지인들과 하루를 정리하는 술자리를 반드시 가진다. 소주 한두 병쯤은 거뜬하다. 일주일에 5, 6일을 이렇게 보낸다.

 신체적인 청춘은 물론이요, 정신적으로도 청춘이다. 안 이사장이 최근 펴낸 '그래도 나는 또 꿈을 꾼다'라는 제목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그는 여전히 꿈을 꾸며 일을 한다. 군더더기가 없이 핵심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만든다. 그가 명명한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21세기는 정보화의 시대', '정보화에 앞선 나라가 미래를 지배한다' 같은 구호는 이후에나 나왔다.

 안 이사장이 했던 일은 국가적 어젠더였거나 또는 그에 준하는 규모가 큰 사업들이었다. 또한 그가 했던 일에는 사람과 성금이 모였다.

 회고록에 정리된 것처럼 그가 해온 일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제1부는 기자 안병훈, 편집국장 안병훈을 다룬다. 납북된 아버지의 대(代)를 이어 조선일보에 입사한 그는 박한 봉급을 이유로 조선일보 최초의 스트라이크를 주동한 기자였다.

 '김대중'이라는 이름을 신문에 내지 못해 '동교동'이라는 단어를 썼지만 그렇게라도 그의 존재와 역할을 한 줄이라도 내주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중앙정보부 시절에는 장영자 사건 기사화로 연행됐고, 국가안전기획부 시절에는 김일성 사진을 신문에 냈다는 이유로 남산으로 연행돼 고초를 당했다.

 편집국장으로서 '김일성 사망'이라는 세계적인 오보를 냈고, '벤 존슨 약물 복용'이라는 세기의 특종을 냈다.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 관련보도로 한국 언론의 신기원을 이끌었다는 평을 받았다.

 제2부는 편집국장 퇴임 후 국가적 어젠더를 설정하며 환경, 정보화, 역사 바로 세우기 캠페인에 주력한 안 이사장을 그린다.

【서울=뉴시스】신태현 기자 = 안병훈 통일과 나눔 이사장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서울언론인클럽 언론상 시상식에서 이름 빛낸 언론인상을 수상한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2016.11.10. holjjak@newsis.com

【서울=뉴시스】신태현 기자 = 안병훈 통일과 나눔 이사장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서울언론인클럽 언론상 시상식에서 이름 빛낸 언론인상을 수상한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2016.11.10. [email protected]

 제3부는 10년 넘게 출판사 기파랑을 이끌며 책을 만들고 통일을 꿈꾸는 안 이사장의 모습이 담겼다. 그가 기파랑을 차린 이유는 보수적 가치를 이론화하고 확산시키기 위해서였다.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배회하는 마르크스의 유령들', '사진과 함께 읽는 대통령 이승만' , '혁명아 박정희 대통령의 생애' 등을 펴냈다.  

 2015년 3월 조선일보로부터 강권을 받아 통일과나눔재단 이사장을 맡게 됐다. 그 해 6월 '나눔, 통일의 시작입니다' 캠페인을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 이사장은 "우리 사회의 한 귀퉁이에서나마 통일을 위해 남은 생애를 바쳐보자고 다짐했고, 내 인생의 마지막 봉사라는 각오를 하며 조선일보의 제의를 수락했다"고 말했다.  

 고(故) 방우영 조선일보 회장은 안 이사장의 진가에 대해 "궂은일을 떠맡아 솔선수범하는 데 있었다"고 짚었다. "어려운 일, 잘 안 되는 일이 생기면 거기엔 어김없이 그가 나타났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화의 보스였고, 타협과 조정의 명수였던 그가 있었기에 나는 늘 든든했다"는 것이다.

 한편, 안 이사장은 이번 회고록에서 2007년 이명박 전 대통령과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경합한 박근혜 경선 캠프에 참여했던 이유와 소위 언론이 만든 '7인회'에 대한 오해를 해명해 눈길을 끈다.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이후 7인회에 대한 관심도 급상승했다.

 7인회는 안 이사장을 비롯해 강창희 전 국회의장, 김기춘 전 대통령비실장, 김용갑 전 의원, 김용환 전 재무부 장관,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현경대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을 일컫는다.  

 안 이사장이 당시 박근혜 경선 캠프에 참여했던 가장 큰 이유는 도와달라는 부탁을 차마 뿌리칠 수 없어서다. 박 전 대통령은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안 이사장이 조선일보 정치부장 자리에서 물러날 위기에 처했을 때 도와준 사람이었다. 안 이사장은 "비록 손해를 보더라도 도와주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아울러 박근혜 경선 캠프에 참여했던 7명은 박 전 대통령이 2012년 다시 대통령 선거에 나서게 됐을 때부터 박 전 대통령과 명확히 선을 그었다고 했다. "박 후보 주변에 우리 같은 '늙은 사람들'이 기웃거리면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안 이사장은 "7인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더러 박 전 대통령도 참석한 것은 사실이니 모임을 갖지 않았다고 부인할 수는 없었다"면서 "아무 소리 안 하는 것이 상책이었고 그 때부터는 정기적인 모임을 가질 수 없게 됐다. 이것이 7인회의 실체라면 실체"라고 했다.

 1938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한 안 이사장은 조선일보사에서 평생을 언론인으로 보냈다.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회장, LG상남언론재단 이사장, 방일영문화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재단법인 통일과나눔 이사장, 서재필기념회 이사장, 서울평화상 심사위원, 조선일보 이사, SBS문화재단 이사, 한림대학교 이사 등을 맡고 있다.  

 대한민국 동백장(1988)과 한림과학원 일송상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제5회 일송상(2010), 통일문화연구원과 매경미디어그룹이 주최하는 '올해의 통일문화대상'(2016), 서울언론인클럽의 '이름을 빛낸 언론인상'(2016),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관악대상'(2017)을 수상했다. 612쪽, 3만원, 기파랑.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