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독일 사진작가 칸디다 회퍼, 韓 4번째 개인전
'깨달음' 가능하게 공간...국제갤러리서 26일 개막
【서울=뉴시스】 칸디다 회퍼, Van Abbemuseum Eindhoven VI 2003, <van 2003="" vi="" eindhoven="" abbemuseum="">C-print, 103.8 x 88 cm, Courtesy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세계적인 독일 사진작가 칸디다 회퍼(74)의 개인전이 서울 삼청로 국제갤러리에서 26일부터 열린다.
국내에서 네 번째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Spaces of Enlightenment'를 타이틀로 1990년대 말부터 최근까지 촬영된 ‘공연장(Theatre, Opera House)’, ‘도서관(Library)’, ‘미술관(Museum, Collection)’ 등 특정 기관의 공간에 주목한 작품을 선보인다.
작품들의 내부 공간은 다양한 시대와 지역을 아우르는 동시에 모두 인간의 ‘깨달음(Enlightenment)’을 가능하게 한 장소다.
18세기 서구 계몽주의 사상으로 알려진 “Enlightenment”는 인간을 포함해 자연, 사회, 정치에 대한 객관적 관찰과 보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근대 철학, 정치, 문학, 건축, 예술 등 사회 전반에 폭 넓은 영향을 미친 계몽 사상은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힘, 즉 이성의 빛에서 출발한다.
‘Enlightened(깨우친, 계몽된, 개화된)’라는 단어의 의미와 더불어 불교의 돈오(頓悟)로 해석되거나 빛으로 도상화되기도 하는 ‘깨달음’은 단순한 지식의 축적에서 비롯되기 보다 연역적 사고와 경험을 통한 인식의 변화, 일종의 ‘깨어나기’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들 속 공간은 사유의 단초를 제공하고 인식의 변화를 일깨운 사회적 장소들로 읽힌다.
국제갤러리 K2의 1층은 뒤셀도르프 시립극장(Düsseldorf Schauspielhaus)을 시작으로 독일, 이탈리아, 포르투갈, 아르헨티나의 극장과 오페라 하우스의 내부 공간을 담은 작품을 전시한다.
이들 공간은 다양한 건축 양식은 물론 시대적, 사회적 변화를 가늠하게 한다. 예컨대 명문가의 사유지에 마련되었던 개인 극장(Teatro di Villa Aldrovandi Mazzacorati, Bologna), 닫힌 공간을 더 넓고 깊게 보이도록 원근법을 이용한 설계 방식(Teatro Olimpico Vicenza), 공공 기금을 통해 건립되고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공설 극장(Teatro Communale di Bologna)은 이전 왕족과 귀족에 국한되었던 음악과 청중의 존재가 계몽시대 중간계급의 부상과 맞물려 확대되고, 공적 기관의 설립 및 대중화로 이어진 일련의 역사를 대변한다.
귀족들이 독점하다시피 한 박스석, 일반 청중들이 대부분 서서 관람하던 파르테르(오늘날의 스톨석)의 구성과 비교해, 이후 파르테르에 의자가 설치되고 나아가 공간의 계급적 분할이 사라지는 변화는 특히 주목할 만 하다.
【서울=뉴시스】 칸디다 회퍼, <düsseldorfer 1997="" i="" schauspielhaus="">Düsseldorfer Schauspielhaus I 1997, C-print48.2 x 47 cmCourtesy the artist and Kukje Gallery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düsseldorfer>
K2 2층에서는 인간의 지적, 심미적 추구의 장으로 한데 묶일 수 있는 도서관과 미술관의 공간들이 소개된다.
중세 수도원 내 바로크 양식의 도서관, 프랑스국립도서관, 뒤셀도르프 아카데미 내 복도에 놓인 작은 서가, 빌라 보르헤스, 에르미타주미술관과 율리아 슈토셰크 컬렉션 등 작품속 공간은 특권계층을 위한 곳에서 민주화된 문화의 장소로 바뀌게 된 공간들이다.
칸디다 회퍼의 사진 속 공간들은 인간의 자취를 담고 있다. 영국 리버풀의 도시 풍경(Liverpool, 1968), 유럽 도처에 핀볼 기계가 놓인 공간의 모습(Flipper, 1973)과 1970년대 후반까지 진행된 독일 내 터키 이주민들(Turks in Germany), 그리고 자국 내의 터키인들(Turks in Turkey) 등 시기상 초기작으로 분류되는 작품들은 공간과 인간의 물리적, 사회적 상호 작용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방증한다.
작가는 1980년대부터 동물원,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과 같은 ‘공적 공간’으로 시선을 옮기는데, 이는 인간의 문화 활동이 이루어지고 그 산물로 존재하는, 나아가 사회 구성원들에 의해 형성된 공간이다.
칸디다 회퍼는 주어진 시간 내에 장소 자체에 깃든 자연광과 인공 조명으로만 작업하며 일체의 추가 조명을 사용하지 않는다. 공간을 탐색하고 구도를 잡은 뒤 셔터를 누르고, 여러 차례의 인화와 선별 작업을 거쳐 최종 프린트를 선정하며, 이 프린트의 촬영이 이루어진 지명, 기관, 년도, 동일 장소일 경우 로마자로 그 순서만을 기입하는 등 최소한으로 개입한다.
【서울=뉴시스】 칸디다 회퍼, Teatro Cervantes Buenos Aires I 2006,C-print184 x 222 cm Courtesy the artist and Kukje Gallery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칸디다 회퍼는 1976년 베른트 베허(Bernd Becher)가 개설한 사진학과에 입학하여 1982년에 졸업 전까지 “베허 학파” 1세대로 일컬어지는 악셀 휘테(1976-81), 토마스 스투르트(1976-1980), 토마스 루프(1978~1985), 타타 론크홀즈(1978~1985), 페트라 분더리히(1985~1988), 안드레아스 구르스키(1981~1987) 등과 함께 수학했다.
이미 1970년대 후반부터 갤러리 전시를 가졌던 칸디다 회퍼는 다양한 공적 기관의 공간들은 물론 온 카와라(On Kawara)의 회화 및 로댕의 칼레의 시민(12, The Burghers of Calais) 12개 에디션과 같은 특정 피사체가 소재한 공간, 헤르조그 앤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이 설계한 건축물 내, 외부를 담으며 작업의 반경을 넓혀왔다.
2002년 제 11회 카셀 도큐멘타, 2003년 제 50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마틴 키펜베르거와 공동으로 독일관을 대표했으며, 2018년 소니 월드 포토그래피 어워드의 사진공로상(Outstanding Contribution to Photography)을 수상했다.
현재 쾰른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의 작품은 프랑스국립도서관,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뉴욕현대미술관, 메사추세츠 공과대학, 루벨 컬렉션, 프릭 컬렉션, 퐁피두센터, 루트비히 미술관, 스톡홀름 근대미술관, 레이나소피아국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8월2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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