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가난은 죄인가, 그렇다···연극 '철가방 추적작전'
두산아트센터의 기획 프로그램 '두산인문극장'은 올해 주제로 '아파트'를 선정했는데, 그 문을 여는 작품이다. 작가 김윤영(48)의 소설집 '루이뷔똥'(2002·창비)에 실린 동명 단편소설이 원작이다.
겉보기에 멀쩡한 평범한 중학교가 배경. 이 학교는 얼핏 균일해 보이는 아파트들에 둘러싸여 있다. 하지만 아파트도 브랜드에 따라 계급이 나뉘는 시대다. 학생이 어느 아파트에 사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리 매겨진다.
극중 임대 아파트에 사는 '정훈'은 최저 등급이다. 자신을 좋아한 여학생 '다연'의 돈을 훔쳤다는 누명을 쓴 뒤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 그림에 재능이 있지만 이를 사치로 여기고 자신을 구박하는 부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가출도 한다.
벽화 아르바이트를 하며 꿈을 키우지만 이마저 무산된다. 어느 날 벽화가 망쳐졌는데 가난하다는 이유로 주범으로 몰린다. 좋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벽화를 망친 사실이 확인됐음에도 매정한 어른은 정훈과, 역시 임대아파트에 사는 '희찬'이 원인을 제공했을 것이라고 오히려 몰아붙인다.
객석의 관객은 속절없이 무너진다. 가난하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정훈과 희찬에게 세상은 겹겹의 감옥이 된다. 임대아파트에서라도 살기 위해서는 최저소득을 넘기면 안 된다. 무능력한 정훈의 아버지는 하릴없이 이 보금자리에만 매달릴 뿐이다. 누군가에게 안식처이자 재산증식 수단인 아파트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절박한 피신의 장소에 불과하다.
'철가방 추적작전'은 이 부조리한 면을 정훈의 담임교사 '봉순자'를 통해 톺아본다. 그녀는 평소 아이들을 엄격하게 통제한다. 무조건 대학을 가는 것이 우선이다.
정훈을 다시 학교로 데려오기 위해 철가방을 든 청소년들의 행방을 좇는다. 이 과정에서 순자는 신념처럼 지켜온 교육관이 흔들리는 것을 경험한다. 그동안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외면해온 차별과 불공정한 경쟁의 이면들을 목격한다. 그녀도 정훈이 다연의 돈을 훔쳤다고 지레 짐작했다. 다연이 그 돈을 찾고도 정훈에게 사과할 생각을 못하자, 뒤틀린 사회구조에 충격을 받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CJ크리에이티브마인즈 등을 통해 계급 문제를 다룬 창작희곡을 써온 박찬규 작가가 각색했다. 박 작가가 극의 배경인 수서 지역 중학교 현장을 찾아 학생들과 교사들을 인터뷰하는 등 약 1년간의 리서치를 한 덕에 사실적이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극 전체의 분위기가 어둡지는 않다. 신명민 연출은 순자가 정훈을 추격하는 장면을 비롯, 곳곳에 리듬감을 부여한다. 학생들이 사용하는 말들을 낚아 생동감도 넘친다. 순자 역의 강지은, 정훈 역의 이종찬 등 배우들도 호연한다.
그래도 마지막 장면은 먹먹하다. 정훈이 일하는 중국집으로 찾아온 순자는 정훈에게 말 없이 장갑을 건넨다.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할 때 과속하지 말라고 타이른다. 정훈은 작은 집을 얻을 때까지만 중국집에서 일하겠다며 옅은 미소를 짓지만, 극의 마지막이 품고 있는 정서는 밝지 않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이제 쓸모 없는 레토릭에 불과하다.
그가 배달을 떠나고 순자는 주문한 자장면을 열심히 비빈다. 자장면은 면발이 그릇에 부딪히고 장이 버무려져야 맛을 내지만, 정훈은 삶에 의해 긁히고 두드림을 당하고 깨져도 시답지 않은 삶을 보낼 가능성이 크다. 자장면 비비는 소리가 유독 슬픈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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