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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클리야로프, 푸른눈의 몽룡···"예술에는 한계 없죠"

등록 2019.10.01 18:56:40수정 2019.10.02 18: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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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발레단 창작 발레 '춘향' 출연

블라디미르 시클리야로프

블라디미르 시클리야로프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제가 한국 몽룡의 이미지가 아닌 거 알아요. 하지만 예술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무용수로서 최대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푸른 눈의 러시아 발레리노에게서 '춘향' 속 몽룡의 모습이 겹쳐진다. 신중한 표정, 기품 있는 동작과 말투를 비롯 태도가 몽룡이를 빼닮았다.

'러시아 발레의 황태자'로 통하는 블라디미르 시클리야로프는 1일 서울 능동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몽룡 역 제안이 왔을 때 하나의 고민도 없이 이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라고 말했다.

시클리야로프는 유니버설발레단(UBC)이 4~6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이는 창작발레 '춘향'에서 몽룡을 연기한다. 5일 오후 3시 공연과 6일 오후 3시 공연에서 이 발레단의 객원 무용수로서, UBC 수석무용수 강미선과 호흡을 맞춘다.

'춘향'은 '한복 입은 발레'라는 수식이 있을 정도로 한국형 창작 발레의 대표작 중 하나로 통한다. 연습에 돌입한 시클리야로프는 몽룡이 손에 부채와 붓을 들고 다니는 장면이 많아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 소도구들에 미가 많이 담겨져 있더라고요. 클래식한 작품을 비롯해 여러 창작 공연을 많이 했는데 어느 작품과도 같지 않다"고 했다. "정말 특별한 작품인데 잘 보전이 됐으면 해요. 제가 출연해서 작품의 질이 낮아지지 않도록 애를 쓰고 있습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두 번째 창작발레인 '춘향'은 2007년 초연했다. 초대연출은 배정혜 국립무용단 전 예술감독이 맡았다. 2009년에 이어 2014년 대대적으로 개정했다. UBC 예술감독 유병헌, 디자이너 이정우, 무대미술가 임일진 등이 협력했다.

특히 유 예술감독은 초연에서 사용한 창작 음악을 차이콥스키 모음곡으로 전면 교체했다. 차이콥스키의 숨은 명곡을 선별하고 후미요 모토야마의 편곡을 거쳐 '사랑' '정절' '관능' 등을 표현할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었다. 여기에 맞게 안무와 연출도 수정했다.

풋풋한 봄과 단오 축제에 어울리는 '조곡 1번', 춘향과 몽룡의 사랑을 그린 '만프레드 교향곡', 변학도의 부임을 풍자하는 '교향곡 1번' 등은 춘향의 내용과 장면에 차지게 붙는다.
 
유 감독은 "차이콥스키의 '만프레드 교향곡'을 듣다가 굿거리장단을 들었어요"라면서 "동양의 음악과 서양의 음악은 뻗어나가는 것이 다른데 천재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음악에서 한국 정서를 느꼈다"고 했다.

시클리야로프 역시 유 감독의 안무와 음악에 깊은 교감을 했다. "한국의 정서와 내용을 담고 있는 발레지만 굉장히 높은 클래식 창작 발레"라면서 "유병헌 감독님이 차이콥스키의 음악에 맞춰 안무해 큰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기생, 장원 급제 등 한국적인 문화와 정서가 낯설 법도 한데 시클리야로프는 "한국에 있다 보니 음식부터 시작해서 점차 모든 것이 마음에 들기 시작한다"고 했다. 러시아어로 번역된 '춘향'을 읽은 것도 이해는 쉽지 않았지만 도움이 됐다고 했다. 한국계 러시아 작가 아나톨리 김이 춘향전을 러시아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발레 '춘향' ⓒ유니버설발레단

발레 '춘향' ⓒ유니버설발레단

시클리야로프는 "원본이 있더라도 발레 창작 작품은 안무가가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면서 "함부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무대에 서면 몽룡에 가깝게 되지 않을까 한다"고 기대했다.

시클리야로프가 UBC를 더 친근하게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과 절친한 친구인 콘스탄틴 노보셀로프가 이 발레단의 수석무용수이기 때문이다. 노보셀로프는 강미선과 부부 사이이기도 하다.

시클리야로프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한국을 제 집처럼 느끼고 있다"면서 "콘스탄틴과 미선이 많이 도와줘서 편하고 아늑해요. 제가 혼자 남겨두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잘 구경 다닐 수 있게 프로그램을 잘 짜서 즐겁게 지내고 있다"고 흡족스러워했다.

노보셀로프와는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 학교를 같이 다닌 사이다. 그에 관해 "멈춰 있지 않고 낙천적이며 열심히 해온 덕에 이렇게 좋은 배우자(강미선)를 만난 것 같다"며 웃었다.

2014년부터 춘향 역을 맡아온 강미선은 시클리야로프가 네 번째 몽룡 파트너다. "어느 순간 시클리야로프의 몸에서 한국 무용 춤사위가 나오더라"면서 "(한국 무용수보다) 감정 표현이 더 표출이 되는 것 같다"고 봤다.
 
강미선은 시클리야로프에 관해 "감정 표현이 너무 좋아요. 남편 친구라 남편과 함께 춤 영상을 미리 봤는데 너무 잘해서 부담이 있었다"면서 "워낙 경험이 많고 저를 친근하게 대해줘서 믿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시클리야로프는 2003년 발레 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러시아 최고 발레단으로 통하는 마린스키 발레단에 입단했다. 2007년 솔리스트를 거쳐 2011년 수석 무용수로 승급했고 현재까지 마린스키를 대표하는 간판스타로 통한다.

한국 팬들에게도 익숙하다. 2010년 '지젤', 2012년 '백조의 호수'로 내한공연했고 작년 유니버설발레단 스페셜 갈라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발코니 파드되'를 선보였다.

유니버설발레단 유지연 부예술감독은 "시클리야로프는 우리나라에서 알려진 것보다는 현지에서 정말 더 유명하다"면서 "마린스키에서 없어서는 안 될 주역무용수다. 테크닉이 좋고 드라마 발레에서 표현력도 너무 좋다. 팬층도 두텁고, 팬의 연령층도 다양하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시클리야로프는 벼락처럼 스타가 된 것이 아니다. 군무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왔다. 그는 "결과적으로 차근차근 올라온 것이 제 발레인생의 큰 받침돌이 돼 주는 것 같다"면서 “군무부터 성장해온 만큼 앞으로 더 좋은 기량을 보여줘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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