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제 발등에 찍힌 세상 내려다보는 심정으로 지냈다"
신간 '아버지에게 갔었어' 출간 기자간담회
표절논란 6년만의 공식 사과..."불찰 뉘우쳐"
[서울=뉴시스]3일 오전 온라인으로 진행된 신작 장편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 출간 기자간담회에 참석 중인 신경숙 작가. (사진 = 창비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임종명 기자 = "젊은 날에 제가 저도 모르게 저지른 잘못 때문에 저 자신도 제 발등에 찍힌 세상을 내려다보는 심정으로 지냈습니다.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가슴이 매우 복잡했습니다. 다시 한번 제 부주의함에 대해 깊이 사과드립니다."
신경숙 작가가 2015년 불거졌던 표절 논란에 사과의 뜻을 전했다. 3일 오전 온라인으로 진행한 신간 장편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 출간 기자간담회에서다.
신 작가는 "과거의 제 흠과 불찰을 뉘우치고 앞으로 제 작품을 써가도록 하겠다. 제가 작가이다 보니 작품 쓰는 일로 (사과의 뜻을 전하고)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넘어진 땅을 짚고 또 일어설 수밖에 없다. 그것이 저한테는 작품 쓰는 일이기 때문에, 앞으로 다음 책, 또 다음 책에도 다 담겠다. 기다려줘서 정말 감사하다"고 전했다.
신 작가는 2015년 6월 표절 의혹에 휘말렸다. 그의 단편 '전설'이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과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소설 '엄마를 부탁해'로 밀리언 셀러에 오르고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지만, 이 표절 논란으로 대중들의 신뢰와 위상을 잃게 됐다.
논란이 거세진 후 사과문을 발표하긴 했으나 표절 인정에 대해선 모호한 입장을 취한 바 있다. 이후 칩거에 들어갔다. 이날 사과는 논란 이후 공식석상에서 처음 한 사과로 볼 수 있다.
신 작가에게 2015년 이후 6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묻자 "30년 동안 제가 써왔던 제 글에 대한 생각을 처음부터 다시 해봤다. 혼자 있었지만, 저한테는 문학과 가장 깊이, 문학 속에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제 일상을 지키려고 애쓰면서도 지냈다. 그간 제가 하지 못했던 것, 뒤로 미뤄뒀던 것, (이를테면) 고장난 것을 고치면서 보냈다"며 "쓰는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새로운 작가들의 작품을 부지런히 찾아 읽기도 했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한테는 다시, 그러니까 새롭게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시간, 디딤돌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지냈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3일 오전 진행된 신작 장편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 출간 온라인 기자간담회 참석 중인 신경숙 작가. (사진 = 창비 제공) [email protected]
논란 이후의 시간 동안 작가에게 작가로서의 글쓰기에 변화 같은 게 있었냐는 질문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제 심중의 말을 정확히 표현해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말로 다 할 수 없으니까 글 쓰는 일을 하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신 작가는 "아무리 말로 다 하려고 해도 마음 안에 있는 것을, 언어로 그 말이 무엇인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천착하고 있단 생각이 든다"며 "소설에서 아버지가 돌보는 친구 박무릉 아저씨가 등장하는데, 서로 상처를 줬지만 결국은 서로 상생하는 역할이다. 박무릉씨와 아버지의 관계를 쓰는 동안 저도 느꼈다"고 말했다.
"박무릉 아저씨가 이런 이야기를 해요. '새로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없어도 사람은 살아가야 한다'고. 이 말이, 저한테 한 말이기도 했어요."
신 작가는 "제가 생각하는 문학이라는 건 제 삶의 어떤 알리바이 같은 것이어서, 그게 하고 안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저는 이전보다 더 좋은 작품을 써야 한다는 것에 저를 옭아매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계속 쓸 것이다. 10년 후 누군가가 저에게 그동안 무엇을 했냐고 물으면 '나는 글을 썼다'고 답할 것이고, 20년 후에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그것이 지금 제 마음이다"라고 했다.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엄마의 입원으로 홀로 남은 아버지를 보기 위해 J시에 내려가는 딸의 이야기다.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고 둘을 결합해 풀어나가는 내용이다.
신작 곳곳에도 이러한 작가의 심정이 드러나 있다.
딸과 아버지는 마을을 산책하다가 고목을 마주하는 장면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고목은 과거 마을 사람들이 한 해의 풍요를 기원하고 저마다의 소원을 비는 나무다. 완전히 쓰러져서 죽은 나무로만 알고 있었는데 물가에 쓰러진 고목에서 새순이 돋아나고 있음을 깨닫는 장면이다.
신 작가는 "죽음과 새로 돋아나는 것은 한순간에 같이 있다는 것. 그걸 말하고 싶은 마음으로 썼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신작 장편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 출간 온라인 기자간담회 참석 중인 신경숙 작가. (사진 = 창비 제공) [email protected]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신 작가의 전작 '엄마를 부탁해'와 대비된다. '엄마를 부탁해'가 우리에게 다양한 어머니상을 전했다면 신작은 다양한 아버지상을 담고 있다. 이때까지의 소설에서 그려졌던 가부장적인 아버지와는 사뭇 다르다.
다정하지만 외로운, 자기 원칙이 있는 아버지. 자신이 뿌린 것 외에는 더 바라지 않는 아버지. 전쟁과 현대사회를 거쳐온 아버지. 정작 자신은 학교 문전에도 가지 못했으면서 자식들의 대학교육을 시키는데 일생을 건 아버지. 빚을 지지 않으려 하고 진 빚은 꼭 갚으려는 아버지.
이러한 모습들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를 다시 돌아볼 수 있게 한다.
신 작가는 "한국 사회에서 아버지라고 하면, 특히 문학 속에서는 가부장적이고, 어떤 상황에서는 굉장히 폭력적이기도 한 모습이 많이 나타나 있다. 저는 이 소설 속에서 아버지의 의미에 집중했다. 우리가 아버지라고만 생각하기 때문에 미처 듣지 못했던, 놓쳤던 내면들을 살펴보고자 했다. 다시 한번 더 자신이 제 아버지를 깊게 들여다보는 그런 마음으로 썼다"고 설명했다.
또 "아버지의 모습이 무궁무진하다는 것, 그 모습 속에서 긴 시간을 익명으로 살았던 아버지를 하나의 어떤 아버지로 묶을 수 없는 개별자 하나하나의 존재로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 작가는 끝으로 "오랜만에 서로 들여다보면서 이야기 나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시절이 그걸 가로막는 것 같다. 저는 새 작품을 쓰고 또 쓸 것이기에 또 다른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한다"며 "좀 더 인내심이 필요한 시간 가다. 어려운 시간을 서로 잘 극복해서 자기 자신이 어떤 새로운 지점에 가 닿는 시간들을 만들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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