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150분은 흔하다…요즘 영화 왜 길지
최근 영화 러닝타임 150분 이상 많아져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평균은 약 140분
10년 전엔 125분 상영 시간 증가 추세
실제로 2009~2018년 증가 통계도 있어
IP 중요 세계관 형성에 소요 시간 커져
OTT 몰아보기 익숙한 길다고 안 느껴
[서울=뉴시스] 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후보에 오른 '드라이브 마이 카'의 러닝타임은 180분이었다.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에 오른 영화 10편의 평균 러닝타임은 140분이었다. 딱 10년 전인 2012년에 같은 시상식 같은 부문 후보였던 영화 9편의 평균 상영 시간은 125분이었다. 2012년과 비교할 때 2022년 작품상 후보작 러닝타임은 약 11.5% 늘었다.
올해 작품상 후보작 중엔 러닝타임 120분을 넘기는 영화가 8편 있었다. 이중 150분, 그러니까 2시간 30분을 넘긴 작품은 4편이나 됐다(최장 '드라이브 마이 카' 180분). 2012년엔 120분 이상인 영화가 6편이었다. 이중 150분보다 긴 영화는 없었다(최장 '워 호스' 146분). 영화가 점점 길어지고 있는 걸까.
실제로 최근 나온 영화들은 길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 주목받은 영화를 추려보면 '007 노 타임 투 다이'(163분) '듄'(155분) '드라이브 마이 카'(180분) '스파이더맨:노 웨이 홈'(148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56분) '나이트메어 앨리'(150분) '돈 룩 업'(140분) '더 배트맨'(176분) 정도가 될 것이다. 이들 영화를 보려면 아무리 짧게 잡아도 2시간 30분이 필요했다.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일주일에 한 편 이상 꾸준히 영화를 봐왔다는 직장인 이동원(35)씨는 최근 '더 배트맨'을 퇴근 후에 보려고 하다가 상영 시간이 너무 길어서 포기하고, 주말에 시간을 내서 봤다고 했다. 그는 '드라이브 마이 카' 역시 러닝타임 압박 탓에 주말에 봐야 했다고 했다. 이씨는 "작년부터 유독 긴 영화가 많다는 생각을 했다"며 "길 필요가 없는 영화도 길게 만드는 느낌"이라고 했다.
요즘 영화가 길다는 건 단순히 느낌이 아니다. 실제로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영화가 길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영화 데이터 분석가인 스테픈 팔로우스(Stephen Follows)가 1999~2018년 전 세계에서 개봉한 모든 영화의 러닝타임 평균을 낸 결과, 1999년에 약 97분이던 평균 상영시간은 2009년 약 93분으로 서서히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더니, 2009년을 기점으로 다시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해 2018년엔 약 96.5분으로 늘었다. 이 통계를 바탕으로 추측해보자면 2018년 이후에도 이 추세가 이어져 최근엔 긴 영화가 더 많이 나오고 있다고 분석해볼 수 있다.
일례로 과거엔 100~120분 정도였던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의 러닝타임은 140분을 넘기는 게 흔해졌다. 지난해 개봉한 '분노의 질주:더 얼티메이텀'은 142분, 지난 6일 개봉한 '앰뷸런스'가 136분이나 됐다.
영화가 길어진 이유는 공급과 수요 두 가지 면 모두에서 찾을 수 있다. 공급 측면에서 보면 최근 콘텐츠 업계 대세가 IP(Intellectual Property·지식재산권)가 됐다는 점이다. 수요 측면에서 보면 OTT 확대가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IP의 가장 흔한 사례가 마블 등 슈퍼히어로 영화다. 슈퍼히어로 영화는 더이상 단일 영화, 단일 스토리로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한 캐릭터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고 각 영화가 거대한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돼 있는 구조다. 마블이 2008년부터 내놓은 20여편의 영화가 '어벤져스:인피니티 워'(2018) '어벤져스:엔드게임'(2019)으로 수렴하는 이야기였던 게 대표적이다. 이런 영화들은 캐릭터가 워낙 많고, 이들 각자의 이야기를 하나씩 다 짚어줘야 하기 때문에 러닝타임을 많이 쓸 수밖에 없다. '인피니티 워'는 149분, '엔드 게임'은 181분짜리 영화였다. 마블이 지난해 새로운 슈퍼히어로를 그린 '이터널스'가 155분이 필요했던 이유는 이 작품에 주요 캐릭터 10명이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서울=뉴시스] 지난해 나온 마블 영화 '이터널스'에 10명의 슈퍼히어로가 등장한다. *재판매 및 DB 금지
국내 제작사 관계자는 최근 영화계의 이같은 제작 트렌드에 대해 "꼭 슈퍼히어로 영화가 아니더라도 최근 콘텐츠 업계는 세계관을 만드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고 했다. "특정 세계관을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는 전보다 더 다양한 캐릭터가 필요하고, 이 캐릭터들을 활용하기 위해선 그만큼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것이다. 155분짜리 영화 '듄', 176분짜리 '더 배트맨'은 모두 후속작이 예정돼 있다.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OTT) 이용자가 늘어난 게 영화 상영시간이 길어지는 데 영향을 줬다는 시각도 있다. 넷플릭스 등 OTT는 각종 드라마·다큐멘터리 시리즈 전편을 한꺼번에 공개하는 방식을 쓰고 있는데, 이로 인해 시청자가 6~8시간 몰아보는 데 익숙해졌고 긴 영화도 잘 견딜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또 OTT 드라마는 회당 40~50분으로 짧은 편이지만, 국내 TV 드라마가 한 편이 적어도 70분에서 길면 80분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영화 150분은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라고 보기도 한다. 영화계 관계자는 "최근 관객은 영화를 쓸데 없이 길게 만든 게 아니라면, 웬만큼 긴 영화엔 불만을 보이지 않는다"며 "오히려 특정 인기작은 더 길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다"고 했다.
다만 영화관 입장에선 긴 영화가 자꾸 나오는 게 그리 좋은 건 아니라고 말한다. 영화가 길면 회전율이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멀티플렉스 업체 관계자는 "영화가 길어지는 게 최근 트렌드라고 하면 어쩔 수 없다"면서도 "극장 입장에선 당연히 영화가 짧으면 상영 회차를 늘릴 수 있기 때문에 수익적인 면에서도 조금 더 좋은 면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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