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통령 파면]광주 촛불집회 승리로 이끈 숨은 시민들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박근혜퇴진 광주시민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 관계자들이 지난 4개월 간 '촛불집회의 판'을 이어가며 구슬땀을 흘렸다. 사진 왼쪽부터 황성효(44) 운동본부 상황실장, 사회자 백금렬(44)씨, 박시영(57) 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 임추섭(74) 공동대표. 사진은 지난 10일부터 11일까지 금남로에서 만난 이들의 모습. 2017.03.12. [email protected]
지난 10일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8명 전원 일치로 박 전 대통령에게 파면 결정을 선고했지만 '광장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이 진정한 선고자'라는 평가다.
이에 시민들의 분노를 광장으로 모으려는 노력을 한 이들에게도 관심이 쏠린다.
광주에서는 박근혜퇴진 광주시민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 관계자들이 지난 4개월 간 촛불집회를 주최하며 구슬땀을 흘렸다.
◇ 기획·신고·섭외…'끝없는 헌신'
황성효(44) 운동본부 상황실장은 본부가 꾸려진 이래 광주 촛불집회의 실무를 전담했다.
지난해 10월29일부터 올해 3월11일까지 금남로와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19차례의 촛불집회를 신고하고, 무대 설치 업체와 가수 등을 섭외했다.
매주 월~목요일 집행위원·공동대표단, 상황실 회의에서 시민들의 분노와 열망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집회 주제를 기획했다.
'부역자 하옥' '청와대 모형 무너뜨리기' '416개 노란 풍선 날리기' '사드 부지 제공 롯데 현수막 찢기' 등 각종 퍼포먼스와 행진 코스를 꼼꼼히 준비했다.
운동본부 소속 시민사회단체 89곳의 의견을 조율하는 것도 황 실장의 몫이었다.
밤낮없이 옛 전남도청 농성장에서 노트북 앞에 앉아 시국 관련 성명을 쓰고, 언론에 집회 일정을 알렸다.
그의 이 같은 노력은 54만여명이 금남로를 찾는 것으로 이어졌다.
다양한 연령의 시·도민뿐 아니라 외국인들까지 거센 눈발과 한파 속에도 '민주주의'를 외쳤다.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과 경북 성주군민·김천시민들도 광주를 찾아 연대를 호소했다.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4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18차 박근혜 퇴진 광주시국 촛불대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대통령의 조속한 탄핵 인용을 촉구하는 촛불을 밝히고 있다. 2017.03.04. [email protected]
◇ '금남로를 축제의 장'으로 만든 소리꾼
"박근혜를 감방으로, 최순실은 옆방으로, 김기춘은 독방으로, 우병우는 죽빵(얼굴을 가격하는 행위를 뜻하는 은어)으로"
지난 11일 오후 금남로에 한 남성의 걸쭉한 목소리가 울려퍼지자 시민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구호를 따라 외쳤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모 공립중학교 한문교사인 백금렬(44)씨다. 육아휴직 중인 백씨는 19번의 촛불집회 중 15번 사회를 맡았다.
각종 국악경연대회에서 수차례 입상한 '소리꾼'인 백씨는 집회 현장에 나온 시민들과 소통하는 데 재능을 한껏 발휘한다.
구수한 사투리로 시국을 풍자하는 그의 입담에 시민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사진·카메라 기자들에게 "생중계되냐" "1면 사진으로 쓸거냐"라는 질문을 던지고, 시민 현장 인터뷰에서도 번뜩이는 재치를 선보인다.
지난달 11일 탄핵보름굿 집회에서는 강강술래를 하는 시민들 앞에서 판소리를 하며 흥을 돋웠다.
그는 최근 어깨를 다쳐 수술을 받고 2주만에 깁스를 한 채 사회자로 복귀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백씨는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전남 신안 지도에서 집회에 매주 참여한 일가족·시교육감·코스타리카 교민·자원봉사에 앞장선 이들을 보고 힘이 났다. 축제의 장은 정의로운 시민들이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 광장 민주주의의 승리…"새 시대 열자"
박시영(57) 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과 임추섭(74) 공동대표도 광주 촛불 항쟁의 숨은 영웅들이다.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4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18차 박근혜 퇴진 광주시국 촛불대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박근혜와 부역자 처벌'을 뜻하는 청와대 모형을 무너뜨리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2017.03.04. [email protected]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회의 안건으로 다뤘고, 지난 대회를 평가하며 행사를 다양화시켰다.
이들은 "광장 민주주의가 대한민국을 바꾸는 원동력이 됐다"며 "시민들은 법과 상식을 지켜며 촛불을 들어 혁명을 이뤄냈다"고 평가했다.
또 "불공정한 사회 체계에 품었던 불만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봇물처럼 터져나왔다"고 덧붙였다.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짚으면서 단일화된 목표를 향해 광장에서 직접 외치는 민주주의를 실현했다는 설명이다.
실제 광장에 나온 시민들은 검찰·재벌·정치·언론·공직 등 각 분야에서 개혁이 필요한 부분들을 들춰내며 민심을 국가 시스템에 반영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적폐를 청산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게 촛불 혁명의 완성이라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상식에 어긋나는 국가 시스템을 바로 잡기 위해 광장의 촛불은 일상에서 계속돼야 한다"며 "공정한 사회 체계를 구축해 새 시대를 열자"고 말했다.
임 대표도 "'봄꽃 대선'에서 민심을 받들어 정경유착을 뿌리뽑을 수 있는 민주 정부를 세워야 한다"며 "정권 교체도 촛불의 목표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한편 운동본부는 오는 25일과 세월호 참사 3주기를 하루 앞둔 4월15일 금남로에서 촛불 집회를 열기로 했다.
또 매년 3월10일(탄핵 선고일)을 '촛불 혁명의 날'로 제정, 집회를 이어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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