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민은 영웅" 전두환 손자, 겉옷 벗어 5·18열사 비석 닦다
5·18희생자 유족과 동행 참배, 뜨거운 포옹도
참배 중 곳곳 "와줘서 고맙습니다"시민 응원
[광주=뉴시스] 김혜인 기자 = 고(故) 전두환씨의 손자인 전우원씨가 31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5 ·18민주묘지 내 김경철 열사의 묘소를 찾아 자신의 옷으로 묘비를 닦으며 넋을 위로하고 있다. 2023.03.31. [email protected]
[광주=뉴시스]김혜인 기자 = "광주 시민이 이 나라의 진정한 영웅입니다. 이제야 와 죄송할 뿐 입니다."
31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고(故)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27)씨가 전씨 일가 중 처음으로 나서 5·18민주묘지를 찾아 오월 영령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다.
검은 양복을 입은 그는 참배 내내 고개를 푹 숙인 채 두 손을 모으고 굳은 표정으로 참배에 임했다. 참배 과정엔 희생자 유족도 함께했다.
민주의 문 앞에 선 그는 '님을 위한 행진 곡'노래를 들으며 묘역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뗐다.
헌화·분향에 앞서 그는 '전우원'이름 석 자가 적힌 흰 국화 바구니를 제단에 바쳤다. 분향한 전씨는 두 손을 꼭 맞잡은 채 오월영령을 기리는 묵념을 했다.
전씨는 김범태 5·18묘지 소장의 안내에 따라 5·18최초 사망자인 고 김경철 열사의 묘역으로 향했다.
"5·18당시 제일 먼저 희생된 농아 분"이라는 설명을 들은 전씨는 자신의 장코트를 벗어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고 김경철 열사의 묘비를 닦았다.
전씨는 초등학교 4학년 당시 희생된 고 전재수 군의 묘역으로 향했다. 참배엔 희생자의 형 전재룡(62)씨도 함께했다. 유족은 "이렇게라도 와줘 참 고맙다"며 동생의 영정을 닦는 전씨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흰 소복을 입은 고 문재학 열사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의 묘역도 참배해 줄 것을 요청했다.
노모는 자신의 아들 묘역에 무릎을 꿇은 전씨를 향해 "너희 할아버지가 내 아들을 죽였다"며 한 맺힌 울음을 토해냈다. 아래를 향하고 있던 전씨의 두 눈동자는 순간 흔들렸지만 그는 더 힘주어 자신의 옷으로 묘비를 닦아냈다.
그는 참배 내내 소장의 안내에 짧게 "네" 정도로만 대답할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참배한 모든 열사의 묘역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코트로 묵묵히 묘비를 닦았다.
참배를 마친 그의 무릎과 코트엔 풀과 흙 먼지 자국이 선명히 남았다.
전씨는 시신을 찾지 못한 행방불명자의 묘역 무명열사, 고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 묘역도 들러 참배했다.
[광주=뉴시스] 김혜인 기자 = 고(故) 전두환씨의 손자 전우원(27)씨가 31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참배를 마친 뒤 문재학군 모친과 포옹하고 있다. 2023.03.31. [email protected]
유족과 시민들은 참배한 전씨를 향해 대해 따뜻한 응원과 포옹을 건넸다.
고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는 민주의 문 앞에서 참배를 마친 전씨를 향해 두 팔을 벌려 안았다.
일부 시민들은 참배하는 전씨를 향해 "전우원씨 힘내세요!", "광주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면서 응원을 했다. 한 시민은 눈시울을 붉히며 참배를 마치고 이동하는 전씨의 손을 꼭 잡았다.
전씨는 "광주 시민 모두 이 나라의 영웅"이라며 거듭 사죄와 감사의 말을 전했다.
전씨는 "너무 늦게 와 죄송하다"며 "이렇게 와 보니 제 죄가 뚜렷하게 보이고 죄송한 마음뿐이다"고 밝혔다.
어떤 마음으로 묘비를 닦았냐는 질문에 "제가 입었던 옷 따위를 사용해서 닦아드리지 않고 더 좋은 것을 이용해 사용해 닦아 드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어 "광주시민 모든 분들이 진짜 이 나라의 영웅이다"며 "넓고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주셔서 감사하다. 죄가 용서될 수 없다는 것도 알지만 감사하다"고 참배 소감을 전했다.
전씨는 이날 참배 전 민주의 문 방명록에 '저라는 어둠을 빛으로 밝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민주주의의 진정한 아버지는 여기에 묻혀 계신 모든 분들이십니다'고 적었다.
[광주=뉴시스] 김혜인 기자 = 고(故) 전두환씨의 손자 전우원(27)씨가 31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에 앞서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202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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