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 무기고 습격, 집단발포 전후 언제?' 5·18조사위 규명 못 해
5·18조사위 보고서 추가공개…전남 일원 무기고 습격 '규명 불능'
'습격 시점, 도청 발포 5월 21일 오전이냐 오후냐' 놓고 갑론을박
신군부 자위권 논리 악용 '오전 습격설' 여지 둬…"제대로 밝혀야"
[서울=뉴시스] 박태홍 기자 = 소총으로 무장한 시민군이 1980년 5월 23일 전남도청 앞에서 계엄군과 대치하고 있는 외곽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박태홍 뉴시스 편집위원이 1980년 당시 한국일보 사진기자로 재직 중 5·18 광주 참상을 취재하며 기록한 사진을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에 즈음해 최초로 공개한다. (사진=한국일보 제공) 2020.05.17. [email protected]
정확한 무기고 습격 시점을 규명하지 못하면 왜곡 논리의 확대 재생산의 불씨가 될 수 있는 만큼, 후속 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는 5일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남 일원 무기고 피습 사건' 제목 보고서를 공개했다. 앞서 17개 직권 과제 중 13개 개별 보고서를 발표한 지난달 29일에 이어 2차 공개다.
조사 결과 계엄군의 학살 만행에 분개한 광주 시민들은 1980년 5월 21일 전남 곳곳 파출소 무기고·탄광 등지서 총기류와 폭약을 탈취했다. 같은 해 5월 21일부터 23일까지 습격 받은 전남 일원 무기고 93곳 중 53곳에서 총기 5003정, 실탄 28만 9400여 발, 폭약 382.5㎏이 뺏긴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위는 시위대의 무기고 습격 과정에 사전 계획과 탈취 방법에 대한 전문성은 없었다고 판단했다. 무기고 습격을 둘러싼 북한군 개입설 역시 당시 사실무근으로 판명됐다.
다만 무기고 피탈 시점에 대해 조사위는 일치된 의견을 내지 못했다. 무기고 피탈 시점은 항쟁 직후 신군부가 줄곧 주장하는 자위권 발동 근거와 직결돼있어 중요한 진상 규명 과제로 꼽힌다.
그간 신군부는 5월 21일 오후 1시께 전남도청 앞 시위대를 향한 발포 배경이 '시위대의 무기고 습격·선행 무장 때문이다'라고 주장해 왔다.
집단발포 시점인 오후 1시 이후 시위대가 무기고를 습격·무장했다면, 그 자체로 신군부의 자위권 발동 논리는 허구임이 방증되는 셈이다.
당시 전남 일원 무기고 피습 시점은 '광주사태일지 집단사태발생 및 조치상황' 등 군 부대의 상황 일지, 경찰서 근무 일지, 정보기관 기록 등에 자세히 남아있다.
화순경찰서와 나주서 산포지서, 영암서 신북지서, 해남서 계곡지서는 21일 오후 1시 25분부터 오후 4시 사이 시위대 습격이 이뤄졌다.
이는 도청 앞 집단발포 이후 격분한 시민들이 광주에서 시외 무기고까지 이동한 시간 등을 고려하면 사실에 가깝다고 조사위는 결론 냈다.
[서울=뉴시스] 박태홍 편집위원 = 광주 시민군이 전남도청을 장악한 1980년 5월 24일 분수광장 앞에서 시민들이 “군사정권 타도”, “김대중 석방”을 외치며 집회를 하고 있다. 집회 중 신원 미상의 시신을 실은 트럭이 전남도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박태홍 뉴시스 편집위원이 1980년 당시 한국일보 사진기자로 재직 중 5·18 광주 참상을 취재하며 기록한 사진을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에 즈음해 최초로 공개한다. (사진=한국일보 제공) 2020.05.17. [email protected]
하지만 나주서 반남·남평지서 등지의 무기고 피탈은 정확한 시점을 두고 기록과 진술이 엇갈리면서 조사위 내에서도 의견 합치를 이루지 못했다.
나주서가 작성한 '경찰관서 피습 상황'에는 남평지서 무기고가 5월 21일 오후 1시 30분에 피탈됐다고 기록돼 있다. 나주서 생산 문서인 '업무 처리 상황' 내용과도 일치한다.
당시 나주서 경무과장도 5·18 직후인 6월 5일 치안본부 진술서에 "21일 오후 1시 50분 일반 전화로 남평지서 내 무기고 피탈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열흘이 지나 6월 14일 치안본부의 나주서 경무과장 징계의결서에는 '(21일) 9:50경 시위대의 남평지서 침입 무기 탈취'라고 돼 있다. 경무과장이 실제 진술 내용과는 다른 것이다.
결국 전문위원 전원이 '진상 규명 불능' 의견을 내놨다.
일부 위원들은 오전 시간대 무기 피탈은 사실로 봐야 하며 입증 기록 역시 신군부가 왜곡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근거로는 징계 기록 등이 신군부에 의해 조작됐다면 그들의 입장을 유리하게 대변할 수 있는 자료일텐데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점을 들었다. 특히 징계 기록에는 신군부의 자위권 발동 주장에 유리한 근거(오전 무기고 습격)가 담겼는데도, 조사위 활동을 통해 이제서야 공개됐느냐는 것이다.
공식 징계 기록에는 신빙성이 있고, 있는 그대로 해석해야 사실에 부합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서울=뉴시스] 박태홍 기자 = 광주 시민들이 1980년 5월 24일 전남도청 앞 상무관에서 계엄군 발포로 사망한 시민들을 추모하고 있다. 박태홍 뉴시스 편집위원이 1980년 당시 한국일보 사진기자로 재직 중 5·18 광주 참상을 취재하며 기록한 사진을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에 즈음해 최초로 공개한다. (사진=한국일보 제공) 2020.05.17. [email protected]
반면 다른 위원들은 특정자료 만을 근거로 무기고 피탈이 오전에도 있었다고 명시한 것은 또 다른 왜곡이라고 맞섰다.
조사 중 중요하게 인용한 '광주사태일지 집단사태 발생 및 조치상황' 문서에는 나주 산포 등 주요 무기고 탈취 시점이 오후 시간대로 기록돼 있다. 오전 시간 무기고 습격 내용은 없다.
일부 진술은 오락가락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나주 남평지서장은 2017년 전남경찰청 조사에선 '무기고가 오전·오후 총 2차례 피탈됐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조사위에는 '오전 1차례만 피탈됐다'고 진술을 뒤집었다.
결국은 다각적인 후속 조사가 이뤄져 실체적 진실을 제대로 밝혀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신군부의 자위권 발동에 의한 발포 주장의 단초가 되는 '5월 21일 오전 무기고 습격'을 일부 의견일지라도 보고서에 담으면, 5·18 왜곡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정수만 5·18민주유공자유족회 초대회장은 "나주 반남지서 무기고가 21일 오전 피탈됐다는 기록의 경우 문건 작성이 보안사 주도로 이뤄졌다. 오전 8시에 피탈된 무기에 대한 보고가 당일 생산 책자를 통해 정리돼서 나올 수 없다"며 "이런 왜곡된 주장을 보고서에 담아선 안 된다. 또 다른 왜곡이 우려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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