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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부마항쟁 당시 절차 무시하고 군 부대 투입해 시위 진압"

등록 2018.02.19 15:3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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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뉴시스】 하경민 기자 = 부마민주항쟁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절차에 따르지 않고 군 부대를 투입을 명령해 시위를 진압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 및 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는 19일 그동안 진행한 부마민주항쟁 진상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부마민주항쟁은 1979년 10월 16일부터 같은 달 20일까지 부산, 마산, 창원 등 경남 일대에서 유신체제에 대항해 발생한 민주화운동이다.

위원회에 따르면 박정희 대통령이 마산 지역에 위수령에 의거한 절차에 따라 병력출동 명령을 하지 않고, 특전여단 투입을 지시한 사실이 확인됐다.

박 전 대통령은 부산지역 계엄사령관 박찬긍에게 '마산지역 소요 사태를 파악해 재량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하고, 공수특전여단 1개 대대를 마산으로 이동시켜 39사단장을 지원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박찬긍 계엄사령관은 부산에 주둔하고 있던 계엄군 공수특전사 1개 여단을 위수령에 의거한 경남도지사의 병력출동 요청이 없었음에도 19일에 마산으로 급파했다.

또 부산지역의 비상계엄과 마산지역에서의 위수령에 의한 병력출동 명령은 헌법과 법령이 정한 적법 절차를 무시하고 발동됐으며, 부산지역에서는 비상계엄이 선포되기 이전에, 그리고 마산지역에서는 공식적으로 위수령에 의거한 병력출동 명령이 발해지기 전에 군이 출동해 시위를 진압하고 시위대를 체포했다고 위원회는 밝혔다.

비상계엄이 임시국무회의에서 의결되기도 전에 차지철 경호실장을 통해 부산시장, 군수사령관 등에게 비상계엄이 통보됐으며, 비상계엄 선포 이전 17일 오후 11시께 군이 이미 투입돼 시위를 진압했다는 것.

위수령에 의한 병력출동도 경남도지사가 군의 출동을 요청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위수사령관이 육군 참모총장에게 승인을 얻지도 않고 병력출동 명령을 내리는 등 법적 절차를 무시했다고 위원회는 설명했다.

더불어 위수령 제17조에 의하면 출동한 병력이 시위참여 민간인을 체포할 권한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군이 시위대를 체포·연행했다. 이와 같이 위법한 비상계엄과 위수령에 의한 병력 출동은유지 존속하기 위한 것으로서 당시 정권의 위기의식을 엿볼 수 있게 한다고 위원회는 전했다.

합동수사단은 부마민주항쟁 배후로 북한, 야당, 김영삼 등을 연계시키기 위해 7가지의 주요 사건을 선정해 수사를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배후 세력을 철저히 조사하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합동수사단은 비상계엄이 선포된 후 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인 10월 19일 개최된 1차 회의에서 부산대 데모 주모자 이진걸 사건, 동아대 데모 주동자 이동관 사건, 신민당 한의명 사건, 통일당 권삼쾌 사건, 남민전 사건, 불순 종교인 사건, 양서협동조합 사건 등을 중요사건으로 선정하고 북한, 신민당, 통일당, 부산지역 재야단체 인사, 양서협동조합 관련자들이 부산민주항쟁 배후라는 내용으로 수사를 진행했다.

더불어 수사 과정에서 허위 진술을 자백받기 위한 고문, 폭행 등 가혹행위가 이뤄졌고, 마산의 사제총기 사건도 이러한 배후 세력을 만들기 위해 조작됐다고 위원회는 밝혔다.

이어 부마민주항쟁으로 검거된 사람들은 불법 구금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군법회의법이나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48시간 이내에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했지만, 부마민주항쟁 연행자들은 대부분 구금된 후 3~15일이 지나 구속영장을 발부받았기 때문에 7~15일의 기간 동안 불법 구금됐다.

특히 부산과 마산 지역에서 시위에 참여했다가 검거된 시위 인원은 총 1564명 이상인 것으로 확인했다.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지역 경찰과 계엄군은 총 1058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지만, 공식 통계 확정 이후 연행된 사람까지 포함하면 연행자 수는 당국에서 발표한 1058명보다 훨씬 더 많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부마민주항쟁 당시 마산지역 경찰은 총 505명을 검거(구속 59명, 즉결심판 125명, 훈방 321명)됐다고 발표했지만 군법회의 공소장, 형사사건부 등 관련 자료를 확인한 결과 실제 마산지역 구속자는 60명으로, 총 506명이 검거된 것으로 밝혀졌다.

또 경찰과 군의 폭행으로 인해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한 것은 확인했지만 사망자 발생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위원회는 밝혔다.

생사 및 행방불명자 대부분 인적사항이 특정되지 않아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고, 특정되는 경우에도 확인한 결과 부마민주항쟁과 관련이 없거나 이를 인정할 객관적 자료가 없었다고 위원회는 전했다.

위원회는 명확한 진상규명을 위해 군, 경찰, 국가정보원 등에서 생산한 다양한 공적 기록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치안일지(경찰서), 부산사태(국방부 합동참모본부), 정보보고(법무부 검찰국), 해군사, 계엄사, 부산사태 수사상황 등의 자료를 발굴하고 이를 통해 유신 정권의 대응 방침, 군의 출동 현황, 지휘·명령권자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의 경과로 인해 관련 문서가 폐기되거나 소실돼 더욱 많은 자료를 수집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위원회는 밝혔다.

이 보고서는 부마항쟁보상법의 목적에 따라 진상규명과 관련자 및 유족의 명예회복에 중점을 두고 작성됐으며, 보고서를 토대로 다양한 연구가 이뤄져 부마민주항쟁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더욱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고 위원회는 밝혔다.

위원회는 "앞으로 부마민주항쟁 기념 재단을 설립하고 정부는 과거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많은 피해를 끼친 점에 대해 공식 사과해야 한다"며 "더불어 부마민주항쟁 기념일을 제정하고, 부마민주항쟁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5·18민주항쟁 유공자와 같이 민주유공자로 대우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위원회는 오는 23일 오후 2시 부산시의회 대회의실에서 그동안 진행한 부마민주항쟁 진상조사결과를 발표하고, 부마항쟁 관련 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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